`돈맥 경화`를 뚫는 첫 번째 방법
`성장`이라 함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장 곧
GNP나 GDP의 숫자에 의한 성장을 말하는 것이다.
1%의 성장이니 0.8%의 성장이니 하는 것은
드러난 성장의 결과를 평균화하여 수치로 내세운 것이다.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성장이라고 할 수 없는 수많은 부작용이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곧 성장을 하려면 동전의 양면처럼 부작용은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부작용은
성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성장의 함정이다.
이렇게 발달한 과학 기술 문명 속에서
물건을 만들고 일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불의의 사고 같은 것을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토록 성장한 사회 속에서
이렇게 가난하고 열악한 사회 속에서 나 볼 수 있는 부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을 누가 생각을 할 것인가.
그런데도 이렇게 성장한 사회 속에서
이런 열악한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 과연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쩌면 이러한 부작용을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성장은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이러한 성장은 올바른가?
성장이라 함은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면서 지금과 같은 성장을 이룰 때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고 이때는 성장만을 향해 달려가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비용이라는 돈이 들기 때문에
이런 부작용은 숨기고 밝히려고 하지 않고 또 개선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는 성장의 과정 속에서 일어난 불운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부작용에 대한 보상과 대책은 전무후무한 상황인
이러한 성장은 성장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이런 성장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이러한 성장은 우리들 대다수를 위한 성장이 아닌 저들만의 달콤한 성장일 뿐이다.
노동 현장에서의 불의의 사고
노동시간을 넘어선 과로사
노동 시간에 생리현상조차도 제대로 못하게 하는 착취
내로남불식 경제개발
소득격차
자원 소모와 환경파괴
폐수를 무단 배출하는
폐기물을 무단으로 땅에 묻어 버리는
산사태, 싱크홀, 하수구 역류, 폭우에 의한 물난리
사고가 발생하고도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는 행정
이런 부작용에 대해 나를 포함하여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나의 일이 아니므로 관심도 가지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에서도 사후 약방문식으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그러면서 다른 성장을 하기 위한 투자는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런 성장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성장하고 사고가 나고 또 성장하고 난리가 나는 이런 성장도 성장인가.
사고가 나지 않도록 먼저 대처하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조금만 검색해서 찾아보면
이보다 더한 경제 성장의 뒤안길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성장의 이면을 지금 들추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단지 이러한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는 것이 성장의 한 면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바로 이러한 부작용을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작업이 있는 성장을 바랄 뿐이다.
이러한 부작용에 대한 대처가 완전할 때 비로소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GNP와 GDP 같은 숫자 놀음으로 성장을 말하는 것은
성장이 아닌 '착취의 성장'인 것이다.
이런 부작용들이 제대로 해결됐다는 뉴스가 언제 방송된 적이 있는가.
부작용을 들추어내기만 했지 해결한 것은 기삿거리가 되지도 않지 않은가.
수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사고 원인을 밝혀달라는 목소리와
제대로 된 보상을 받게 해 달라는 목소리가 있지 않은가.
이런 부작용에 대한 목소리들을
성장 이전에 해결하자는 것이 '이대로의 경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은 누가 이루었는가?
우리들 같은 노동자들이다.
이러한 우리들이 없다면 성장이 일어났겠는가.
그런데 왜 저들이 가져가는 파이가 더 많은가?
창출한 파이 모두 재투자했을 때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아담 스미스`가 말하지 않는가.
자본주의의 제일 조건이 바로 이것인데
이것을 지키지 못하니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말하자면 창출한 파이의 절반을 저들의 뒷주머니에 넣고
그 반을 나머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후
그 나머지를 재투자하고 있으니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의 부작용 중 한 가지 원인이
저들의 뒷주머니에 절반의 파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저들도 변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아수라 백작처럼 한 얼굴로 두 가지 말을 하면서
좋은 얼굴만 비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울어진 저울을 수평으로 먼저 만든 후 성장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울어진 저울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s://brunch.co.kr/@52168600bfee4e5/56
니체가 르상티망에서 시작하여 권력에의 의지를 가지라고 한다.
그런데 권력에의 의지를 가지고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올라갈 곳은 어디인가?
파이가 균등하지 않은 상황에서
게임의 결과는 보지 않아도 당연한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 A가 멋진 아이디어가 있어서
투자자들로부터 자본을 투자받아 멋지게 상품을 만들었다고 하자.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자본을 가진 B가 그 상품을 만들어
전 세계 곳곳에 뿌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 A는 B의 자본력을 이길 수가 없어 파산의 절차를 밟을 것이다.
이처럼 성장은 모두를 위한 성장이 아닌
B와 같은 자본을 가진 자들을 위한 성장인 것이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고른 성장이기 위해서는
과거가 아닌 `지금 시점`에서 해야 할 가장 첫 번째는
기울어진 저울을 수평으로 만드는 작업
곧 '이대로의 경제'를 통해 파이를 옮겨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진 자`들의 이익을 나누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 곧 자신들의 돈을 풀어야 하는 이유는
첫째는 아담 스미스가 말한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이 창출된 이익을 전부 투자해야만 자본주의가 작동한다는 원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부작용들이 나타난 것이다.
둘째는 혈액이 한 곳에 응어리져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병이 나는 것처럼
경제가 원활하기 위해서는 돈이 순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기울어진 저울에서 기울어진 곳에 고여 있는 돈으로 인해
수평이 되지 않아 한쪽으로만 흐르고 있고
이렇게 한쪽에 몰려 있는 돈이 순환하지 않고 고이게 되고
나머지 극히 적은 양의 일부만 순환하게 되므로 경제가 막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진 자`들의 돌리지 않고 한 곳에 응어리처럼 모아 놓은 돈을
순환시키지 않고서는 `돈맥 경화`가 더욱 심화되어 경제가 원활해질 수가 없을 것이다.
https://brunch.co.kr/@52168600bfee4e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