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입체파 VS 인상파]

처절함과 분노를 나타낼 때는 '인상파'를 찾아야 하는 이유

파블로 피카소는

1881년 태생으로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나 주로 프랑스에서 미술활동을 한

20세기의 대표적 입체파 작가이다.

대표작으로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파블로 피카소-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04%EF%BC%BF225112%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파블로 피카소-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을 빛에 따라 그대로 재현해 내는 '인상파'에서

실제 모습을 단순화하고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나타내는 '야수파'를 거쳐서

점, 선, 면, 도형을 이용하여 주제 없는 어울림을 표현하다가

바야흐로 시점의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나의 그림에 나타내는 '입체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입체파는


물체의 면의 구조 관계를 통해 물체를 분석하여
물체의 면의 중첩과 교차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입체파의 목표였다고 한다.


입체파도 야수파처럼 아프리카의 조소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입체파는 아프리카의 전통 법칙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통적인 투시의 속박에서 벗어나 이질적인 공간을 창조함으로써
각기 다른 각도에서 대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고 말하며 전통을 `해체`한 것이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04%EF%BC%BF231854%EF%BC%BFChrom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아비뇽의 처녀들-


위의 <아비뇽 처녀들>은


사물의 실체를 좀 더 복합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여러 시점(視點)’에서 바라본
대상의 단편들을 하나의 평면 위에 연결하는 방식을 시도한

[출처] 한경 2015.11.2.-[그림이 있는 아침]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그림이라고 한다.


피카소는

원근법과 3차원적인 그림 구성에서 되도록 벗어나려 했는데


3차원의 그림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처] 한경 2015.11.2.-[그림이 있는 아침]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라고 그 이유를 말하며 <아비뇽의 처녀>들의 작품은


원근법이 느껴지지 않게 그렸으며
인물은 기하 형체의 조합으로 표현하고
여성들의 모습을 왜곡시켰지만
여성들의 기세등등한 눈빛과 희롱하는 듯한 자세가
강력하게 나타나도록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표현했다고 한다.


시점이 다양한 우리 삶을
피카소처럼 입체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겠다.

공이 항상 물리적인 법칙에 따라 튀어 오르지 않고
불규칙하게 튀어 오르는 것처럼 삶은 입체적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정다면체가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로
다섯 개뿐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정다면체 외의 모든 입체는 모두 일정하지 않고 제각각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모나지 않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삶도 일정하지 않고 제각각이다.
그런데 삶은 모가 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주역에서 말하는 음과 양의 위치에 따라
추진해야 할 때가 있고 내려와야 할 때가 있는 것이 삶이라면
그때에 맞춰서 살아야만 조화를 이룬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삶은 추진해야 할 때 추진하지 못하고
내려와야 할 때 내려오지 못하기 때문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삶을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방향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사람에게는 역부족일지도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방위적으로 바라보는 입체적인 시각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삶이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또한 피카소는 독일이 스페인의 게르니카를 침공하여 저지른 만행을 그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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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게르니카>이다. 가로 7m, 세로 3m인 대작이라고 한다.


침대 길이가 보통 2m이므로 침대를 3개 반을 놓은 것만큼의 길이로 매우 길다.
높이는 아파트 거실의 높이가 보통 2.4m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 높다.
한마디로 미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이로운 작품이다.


작품 <게르니카>에는 황소와 말과 울부짖고 쓰러진 사람들이 나온다.

`황소는 전체주의인 독일이고, 말은 핍박받는 스페인이다`라고도 하는데


이에 대해 피카소는


소는 소고 말은 말이다.

[출처] 나무위키 -게르니카-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더하여 피카소는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들은 학살을 당한 짐승들일뿐이다.
나에게는 그게 전부다.

[출처] 나무위키 -게르니카-


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

원인과 이유가 어떠하든 결과가 한쪽의 이익으로만 흘러가고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는


오직 검은색, 흰색, 회색만 존재한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입체파의 기법, 신고전주의의 섬세한 선,
자유분방한 형체의 변화로 강렬한 고통, 공포, 슬픔, 발악과 절망을 표현하고 있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라고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피카소의 대답이 더 걸작이다.
이 말의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학살하는 자와 학살당하는 자가 있을 뿐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독일군 장교가 피카소에게
"이 그림을 당신 그렸냐"라고 다그칠 때

피카소는
"아니, 당신이 한 거지"라며 응수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대화가 사실이든 아니든 통쾌한 대답이다.


아무튼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제대로 보여주는 그림이고


죄 없는 민간인을 학살한 나치의 만행을 세상에 널리 알린

반전(anti-war) 회화의 대표작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피카소의 입체적인 그림을 한 번 감상해 보자.


구글 이미지 -피카소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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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05%EF%BC%BF025000%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피카소의 작품들-
구글 이미지 -피카소의 작품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05%EF%BC%BF025008%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피카소의 작품들-
구글 이미지 -피카소의 작품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05%EF%BC%BF025042%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피카소의 작품들-


바라보는 시점이 다양하고 단순하면서 색채가 아주 강렬하다.
무언가 추상적이고 주제 없는 어떤 일그러짐이 뚜렷하다.
이 일그러짐이 무언가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다섯 번째 그림은 6·25의 참상을 그린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그 참상이 처절하게 다가오지 않는 듯하다.


이에 반해 피카소에게 영향을 미친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을 한번 살펴보자.


프란시스코 고야는


1746년 태생의 스페인 낭만주의 화가이고 인상파의 시초를 보인 천재 화가이다.

[출처] 위키백과 -프란시스코 고야-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05%EF%BC%BF003358%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프란시스코 고야-


고야는 인상파 화가이다.


고야가 그린 전쟁의 참화를 보면


구글 이미지 -고야 전쟁의 참화-
구글 이미지 -고야 전쟁의 참화-
구글 이미지 -고야 전쟁의 참화-
구글 이미지 -고야 전쟁의 참화-


전쟁의 참혹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의미에서는

고야의 그림 곧 인상파의 그림이 더 사실적이고

그 잔인함과 처절함이 피카소보다 더 처절하게 느껴진다.


입체적인 그림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왜곡해서 표현하기 때문에


무언가 불분명한 것을 찾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고 있음을 나타내므로
존재하지 않고 명확하지 않은 마음속 갈등과 욕망 같은 그 무엇을 찾을 때는
큰 울림을 줄 듯하다.

하지만
어떤 틀에서 벗어나려고 처절하게 아우성치는 외침과
분노와 두려움, 긴장감 같은 긴박한 상황을 나타낼 때는
다소 전달이 부족한 듯하다.

[출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반면 인상파인 고야의 그림은


침략한 자의 잔인함과 몰지각함을 바로 느낄 수 있고
피가 거꾸로 흐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또한
침략당한 자의 슬픔과 두려움, 분노와 처절함을 몸으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당장 달려가서 저 짐승 같은 침략자를 몰아내고 싶은 심정이다.

[출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다양한 시점과 창의력이 필요할 때는
`입체파 피카소`를

분노와 두려움, 슬픔과 처절함을 표현할 때는
`인상파 고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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