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존 방식 VS 새로운 방식]

인풋이 있으면 반드시 아웃풋을 해야 하는 이유

조르조 데 키리코는

1888년 태생의 이탈리아 화가이자 작가이다.

키리코는 초현실주의 예술의 초기 단계 중 하나인 형이상학파(metaphysical art)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작품으로 <거리의 우울과 신비>, <불안한 뮤즈들>, <불안한 여행>, <출발의 우아함>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조르조 데 키리코-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06%EF%BC%BF202335%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조르조 데 키리코-


`미래파`의 뒤를 이어 키리코가 `형이상학파`를 창립하고 발전시키는데


키리코는


정신분석학의 직관, 환각과 잠재의식에 대한 응용을 구현하면서
형상의 철학적 의미를 추구했으며

투시의 비합리적인 조합을 이용하여 비현실적 공간을 창조해
단순하고 우중충한 색조로 냉담하고 고독한 신비감과 몽환적 효과를 표현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하기 위해 사람이 없는 건물, 탑, 텅 빈 아케이드, 늘어진 그림자, 마네킹 등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06%EF%BC%BF203751%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조르조 데 키리코, 거리의 우울과 신비-


위의 작품 <거리의 우울과 신비>에서 키리코는


철학적 환상으로 강화된 형상을 표현했는데
황혼이 내린 대지
백색의 아치형 건축물
길게 늘어진 음영
그림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 초록색 하늘
등 일부 요소들은 비논리적인 질서의 공간 속에서 조합시켰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고 한다.


이 그림에서 빛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으며

조용하고 쓸쓸한 공간은 예측할 수 없는 위협과 신비감으로 가득하다고 평하며


치밀하게 배치된 투시 공간에 위기의 그림자가 잠복해 있는데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이 그림자를 통해 키리코가 적막함과 고독, 신비, 공포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그림자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떠오르게 한다.
무언가 실체가 보일 때까지는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가는 소녀에게 어떤 무언가가 엄습할 것만 같아
달려가서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다.

소녀 앞에 있는 바퀴 달린 창고에 문이 활짝 열려 있어
누군가 내려올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처럼 `미래파`가 공업 기계 문명에 대한 예찬을 표현한 것에 비해

키리코의 `형이상학파`는 서양 사회의 조용하고 쓸쓸한 병태를 표현하고 있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06%EF%BC%BF204819%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조르조 데 키리코, 불안한 뮤즈들-


위의 작품 <불안한 뮤즈들>은 뒤의 배경이 고전시대의 장엄함이 나타나는 듯한데

고대 그리스의 숭고한 장엄함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이지만 그림을 보는 사람은 공허함과 황당함을 느낄 듯하다.


즉 그림 속의 분위기는 사람들에게 무언인가 발생할 것만 같은 기대와 불안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철학적 사고를 드러내고 있으며
내재된 불안감과 초조함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 그림 속의 뮤즈는 재봉용 마네킹이라고 한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마네킹이 일으키는 이미지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런데 위의 그림 속에서 붉은 조명을 받으며 뒷짐을 지고 서 있는 가장 왼쪽의 마네킹은
어느 순간 갑자기 뒤돌아 볼 것만 같고 무언가 말을 던질 것만 같다.
또한 뒤돌아 본 마네킹의 얼굴은 과연 어떠할지 더 두려워진다.

그리고 가운데 앉아있는 마네킹도 가슴 품으로 숙이고 있는 얼굴을 서서히 들면서 일어날 것만 같다.

제일 오른쪽 마네킹은 당장 내게로 다가올 것 같은 자세이다.
뮤즈들이 불안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바라보는 이가 더 불안해진다.

저 멀리 있는 성으로 가려면 이곳을 거쳐야만 하는데 지나갈 수가 없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처럼 키리코는


관찰 방식을 새롭게 변화시킨 것


뿐이라며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미래파들의 시각을 완전히 깨뜨려 버린다.


키리코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프로이트 사상에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후에 키리코의 그림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미래파, 형이상학파들은 결국
기존의 관점을 새롭게 변화시킨 것뿐이다.

철학자들의 이론을 자신의 분야에 녹여내는 창조의 힘이 그들을 만든 것이다.
인풋을 통하여 아웃풋을 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 아웃풋이 말은 쉽지 참 힘겨운 것이다.
이 아웃풋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고 지식과 능력이 해결해 줄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그 과정은
아픔일 수도 있고 성장일 수도 있고 몰입일 수도 있고 즐거움일 수도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존의 관점을 새롭게 살짝 바꾼다는 것은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길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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