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갓텔`은 `다다이즘` 작품에 'yes'를 할 수 있을까?
마르셀 뒤샹은
1887년 태생의 프랑스 예술가이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같은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작품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자전거 바퀴>, <샘>, <L.H.O.O.Q>,
<그녀의 총각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조차도>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마르셀 뒤샹-
다다이즘은Dadaism
전쟁, 권위, 전통에 반대하고 예술, 이성, 전통적 문명을 부정하고
무목적, 무이상의 생활과 예술을 주장하는 등 허무주의적 태도를 취했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고 한다.
심지어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이 말 한
나는 심지어 나 이전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고 싶지 않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를 다다이즘의 명언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생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다다이즘을 추구하던 `다다이스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보고
인류 문명이 참혹하게 유린당하는 것을 보면서
미래가 막막하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느꼈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라고 말하는 것에서
이들이
무목적, 무이상의 생활과 예술을 주장하는 등 허무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다다이스트들은
`다다dada`는 결코 예술이 아니라 일종의 `반예술`이라면서
당대의 예술의 기준이 무엇이든 무조건 그것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고 한다.
여기서 다다dada란
독일어로 '취미'라는 뜻인데 선구자였던 `후고 발`이
칼로 독일어 사전을 찔러서 명칭을 무작위로 선택했다는 설이 있고
프랑스어로 어린이들이 타고 노는 목마를 가리키는 말이나
작가들의 태도 그 자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다만 다다이즘의 어원은 '까까', '빠빠', '쬬쬬'처럼
애들이나 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출처] 나무위키 -다다dada-
고 한다.
후고 발은
1886년 태생의 독일의 작가이자 시인이고 다다dada운동의 창시자이다.
[출처] 위키백과 -후고 발-
아무튼 다다이스트들은
일정한 양식이나 기법은 없이
추상주의, 콜라주, 기성품을 이용하는 등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 형식을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선택하여 창작하였다고 한다.
위의 작품은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이다.
이 작품은 뒤샹이 초기에 입체파와 미래파의 영향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누드인 여성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해체된 사지의 인체와 앞뒤로 중복된 선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움직임을
하나의 화면에 나타내어 속도의 아름다움을 표현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파리의 전시회에 보냈는데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입체파`가 득세하고 있었는데
뒤샹의 작품에는 `미래파`적 요소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 한다.
이에 뒤샹은 예술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는데
파벌 다툼의 추악함으로
과거 예술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이 모두 거짓임을 깨달았다며
이때부터 뒤샹은 모든 유파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자유로운 창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느 곳이나 기존의 권력에 대한 욕망은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이러한 권력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재에도 뒤샹이 겪은 파벌 다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직접 겪은 이야기인데
조카가 한국의 **대학교 입학시험에 바이올린 실기 테스트를 보았는데
2000년 초기에는 블라인드 테스트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된다.
조카가 실력보다는 지방의 모 고등학교라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바이올린을 지도하신 선생님으로부터 들었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독일로 가기로 결정하고 쾰른에 있는
** 대학교에서 실기 테스트를 받았는데 당당하게 합격했었던 것이다.
지금 현재 독일의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으며 큰일을 하고 있다.
만일 한국에 있는 대학교에 계속해서 지원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실력보다 어떤 스펙과 인맥에 따른 결과였다는 것을 직접 겪으니
공정한 실력의 판단을 위해서는 한국을 떠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것을 안타깝지만 느끼게 된다.
위의 작품은 우리가 익히 보고 들어서 알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 <샘>은
1917년 마르셀 뒤샹이 제작한 레디메이드
즉 기성품에 미적 의미를 부여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세라믹 제 소변기에 'R.Mutt 1917'이라고 서명되어 있다.
[출처] 위키백과 -샘, 마르셀 뒤샹-
뒤샹은 이 작품을 통해서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샘, -마르셀 뒤샹-
라고 말한다.
작품의 제목이 <샘>인 것을 보면
무언가 흘러내리는 것을 개념화한 것이겠다.
특히 이 작품은 레디메이드ready made 곧 기성품을 최초로
예술로 만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개념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사태에 대해서 철학을 입힌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나의 어떤 말과 행위에 대해서 당위성을 내세우는 것이다.
어찌 보면 변명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어필이 되면 작품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난을 들을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일상이 예술이라고 본다면 말이다.
이것도 최초로 내세웠기에 가능할 것이다.
만일 지금 누군가가 세면기, 싱크대, 샤워기를 작품으로
내세운다면 모두가 반기를 들 것이다.
누구를 따라 하고 흉내 내고 있다면서 말이다.
아마 예술은 최초이어야 생명력을 가질 것이다.
이 작품 <자전거 바퀴>에 대해서 뒤샹은
난로 속의 춤추는 불꽃을 바라보는 게 재미있듯이 그것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출처] 위키백과 -자전거 바퀴 뒤샹-
고 말했다고 한다.
영감일까, 광기일까.
이름을 얻기 전에도 가능한 것일지 생각해 본다.
이름을 얻지 못한 사람이 변기와 자전거 바퀴를 전시했다면
....................
이름을 얻었기에 가능한 작품일 수도.
아니면
변기와 자전거 바퀴를 내세울 정도로
어떤 무언가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그것이 철학이든 그의 형편없는 삶이든
이러한 철학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이 작품 <그녀의 총각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조차도>는
두 장의 큰 유리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상단부의 신부는 X선으로 투사한 뼈처럼 묘사되어 있고
하단부에는 경찰, 군인, 우체부 등 유니폼을 입은 9명의 총각들과 초콜릿 분쇄기가 있다.
욕망으로 부풀어져 있으나 기계화된 총각들은
상단의 여인과는 결코 맞닿지 않는 고통 상태에 있다고 한다.
작품을 완성하는데 2015년~2023년까지 약 10년이 걸렸는데
뒤샹의 작업 중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작품이다.
[출처] 국민일보 2012.11.18 -[예술 속 과학읽기] (45) 뒤샹, 20세기의 다빈치-
이런 작품은 제목을 보고 그림의 각 요소들을 끼워 맞춰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림만 보고서는 경찰, 군인, 우체부인지 알 수가 없고
9명의 남자들이 있다는 것도 애매하다.
어떤 것은 사람이 아니라 어떤 사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가운데 있는 원통형 장치가 초콜릿 분쇄기라는 것은 더더욱 알 길이 없다.
전문가들의 설명이 없으면 말이다.
그저 제목에 맞춰 나만의 해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제목도 난해하다.
철학자들의 난해한 용어와 문장들보다 더 난해하다.
이 작품 <L.H..O.O.QQ>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나리자 작품에 수염을 덧붙인 작품이다.
이 <L.H.O.O.Q>는
일종의 말장난으로, 각 알파벳을 프랑스어식으로 읽으면 '엘 아슈 오 오 퀴'가 되는데,
이는 곧 '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라는 뜻의
'엘 아 쇼 오 퀴유' (Elle a chaud au cul)로 읽히게 된다고 한다.
또 프랑스어에서 '엉덩이 (아랫도리)가 뜨겁다'라는 말은
성적으로 안달 나 있는 여자를 뜻하는 속된 표현이라고 하는데
뒤샹 본인도 후대의 인터뷰에서 제목의 뜻에 대해 "아래쪽에 불났다"라고
말한 바 있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L.H.O.O.Q-
한편으론
예나 지금이나 곧 동서고금 통틀어
성性적인 요소를 표현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가 싶다.
하기야 사람들의 삶이 성性을 배제할 수 없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모나리자의 여인이 어떠한지 각설하고
감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에 수염을 덧붙이다니......
이런 생각을 누가 감히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이 작품을 보고
요즘 핫 한 '아갓텔`에 이러한 작품을 보인다면 우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진정한 것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진정한 것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진정한 것은 아마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과의 교감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 당시에는 충격일 수도 있는 표현의 한 형태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도 무언가
충격적인 무언가를 만들어야만
하지 않을까 싶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가기 위해 분주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화성에 가기 전에 지구에서의 삶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