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츄파춥스 VS 코카콜라]

끊임없는 담금질이 필요한 이유

츄파춥스


엔리크 베르나트는

1923년 태생의 스페인 과학자이며 사업가이다.

유명한 츄파춥스 회사의 창립자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엔리크 베르나트-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09%EF%BC%BF193737%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엔리크 베르나트-


츄파춥스는


1958년에 만들어진 스페인의 막대 사탕 브랜드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막대 사탕이다.

정확히는 스페인 카탈루냐의 지방 중소기업에서 시작했으며
현재는 본사가 바르셀로나시에 있고

이름은 "빨다"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 동사 추파르(chupar)에서 유래했다.

[출처] 나무위키 -츄파춥스-


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농심그룹이 유통하고 있으며

츄파춥스의 로고는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가 만들었다고 한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08%EF%BC%BF214149%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츄파춥스-



츄파춥스는

아동용 막대 사탕에만 집중하여 대박이 난 대표적 사례인데

사탕을 가판대에 올려놓고 판다는 아이디어만으로

전 세계를 석권했다고 한다.


베르나트의 선조부터

3대째 카탈루냐 제과점을 운영해오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전까지는 막대 사탕이 너무 커서 다 먹기가 곤란하고

색소로 예쁜 무늬를 내는 것은 좋은데

먹다 보면 침에 녹아내려 보기에 매우 좋지 않아 지고

녹아내린 설탕물에 옷이 더러워지는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여기에 착안하여 엔리크 베르나트가 츄파춥스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그랑하 아스투리아스(Granja Asturias)' 회사를 인수하여

이름을 '춥스'로 바꾼 뒤 막대 사탕을 출시하였는데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대박을 쳤다고 한다.


광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추파'라는 이름을 덧붙이게 되었고

처음에는 나무 막대를 썼다고 하는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흰색 플라스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베르나트는


가게 주인들에게 카운터 뒤에 사탕을 배치하지 말고 어린이의 손이 잘 닿는 곳
즉 계산대 근처에 사탕을 배치하도록 지시했다.

[출처] 나무위키, 위키백과 -츄파춥스-


고 한다.


츄파춥스는


1963년에는 스페인의 30만 매장에서 팔리게 되었고
1970년대에는 일본,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호주로
1980년대에는 한국과 아시아, 유럽, 북미시장으로
1990년대에는 중국까지 확대됐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츄파춥스-


3대째 이어 온 기술이 1958년 막대를 달면서 5년 만에 스페인을 휩쓸고

10~20년 만에 아시아와 유럽, 북아메리카까지 휩쓸었고

30년 만에 중국까지 사탕에 막대를 붙여서 성공한 것이다.


처음 3대째 이어오는 동안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탕으로 전 세계에 진출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탕에 막대를 붙인다는 아이디어가 혁신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렇다고 해외로까지 뻗어갈 것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츄파춥스는 자신의 나라 스페인에서도 5년이 걸려서야 성공했다.

짧다면 짧겠지만 막상 준비하고 도전하는 입장에서 5년이라는 시간은 엄청 길게 느껴질 것이다.


아마 누군가는 안 된다고 말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들은 결과만 보고 이겨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될 때까지 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가 따라주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될 때까지 할 수 있도록, 믿음과 용기와 인내를 잃지 않도록 하는 자금력이다.


코카콜라


존 펨버튼은

1831년 태생의 미국의 약사이자 발명가이다.

코카콜라의 창시자이다.

[출처] 나무위키 -존 펨버튼-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09%EF%BC%BF235810%EF%BC%BFGoogle.jpg?type=w966 나무위키 -존 펨버튼-


코카콜라는


1886년 애틀랜타 카운티에 금주법이 시행되어 포도주를 탄산수로 대체해서
새로운 음료를 만들었는데

[출처] 나무위키 -코카콜라-


첨가물 없이 순수히 코카잎 추출 성분과 콜라나무 씨앗 추출물과

탄산수로만 만들었는데 독특한 맛이 나지 않아

첨가물을 더 넣고 만든 것이 오늘날의 코카콜라 음료라고 한다.


1886년 당시 판매할 때의 로고이다.

구글 이미지 -코카콜라 1886년 로고-



1886년 당시 코카콜라를 개발하고

템버튼 자신이 운영하는 약국에서 판매했는데 판매량이 좋지 않아


2년 뒤인 1888년에 모든 권리를 2,000달러에 팔았다고 한다.

현재 우리 돈의 가치로 5,500만 원이라고 한다.

2년 뒤 템버튼은 위암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 코카콜라의 모든 권리를 산 사람이 '에이사 캔들러'이다.


에이사 캔들러는

1851년 태생의 미국의 기업인이자 정치인이다.

코카콜라의 공동 창립자이며 제42대 애틀랜타 시장이었다.

[출처] 나무위키 -에이사 캔들러-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10%EF%BC%BF004438%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에이사 캔들러-


캔들러는 4년 뒤인

1892년에 코카콜라 회사를 창립하고

1893년에는 코카콜라의 상표권을 등록했다고 한다.


그 후 캔들러는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는데


1895년부터 1913년까지 850만 장의 무료 쿠폰을 뿌렸고
사람들이 많이 보는 잡지에 쿠폰을 싣고
집집마다 편지와 쿠폰을 보내고
세일즈맨을 고용해 쿠폰을 뿌리는 등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쳤고

코카콜라 로고가 새겨진 달력, 시계 등
다양한 기념품을 만들어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하였다.

소비자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찾아오게 만들자는 의도였다고 한다.

[출처] 반디뉴스 2024.6.23. -[광고 잡학사전] 최초의 코카콜라 광고들-


이러한 공격적인 마케팅 결과

코카콜라는 미국의 ‘국민 음료’가 된 것이다.


마케팅한 시간이 무려 18년이고
코카콜라가 탄생한 지 27년 만이다.


츄파춥스에 비하면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그냥 브랜드가 된 것이 아니다.

시간 속에서 엄청난 담금질을 했기에 된 것이다.


담금질은

높은 온도에서 달군 금속 재료를 물이나 기름에 넣어 급격하게 식히는 일을 말하는데

이런 과정을 수없이 많이 반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코카콜라가 한 마케팅을 보면 그냥 브랜드가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지금 현재 2025년에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끊임없는 담금질이 있어야만 브랜드가 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카콜라도 18년 동안 마케팅 곧 홍보를 하였고

그 결과 27년 만에 미국 전역을 휩쓴 것이다.


말이 18년이고 27년이지 이를 버틸 수 있는 믿음과 용기와 인내가 없다면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될 때까지 할 수 있도록, 믿음과 용기와 인내를 잃지 않도록 하는 자금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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