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성주의 VS 철학]

작품에 작가의 철학을 입혀야 하는 이유

구성주의는

러시아에서 일어난 예술 운동으로

1917년 마르크스주의의 자극을 받은 러시아 혁명 이후에 시작되어

1922년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구성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엔지니어`라 부르며


현대의 기계, 대량 생산, 공예 기술 및 플라스틱, 철강재, 유리 등
현대 공업재료에 열광했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고 한다.


구성주의자들은 `반예술`의 기치를 높이 들고


유화, 안료, 캔버스 등 전통 예술의 재료를 회피하고
그들의 작품은 목재, 금속판, 사진, 종이 등 기성품 혹은 기성 재료로 제작했으며

원, 직사각형, 직선을 주요 예술언어로 삼고
조소 영역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후
회화, 예술, 음악, 건축디자인, 제품 디자인 등으로 확장했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고 한다.


구성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로


카지미르 말레비치, 블라디미르 타틀린, 나움 가보, 리시츠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등이 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1879년 태생의 러시아 화가이다.

인상파, 야수파에서 시작하여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다.

작품으로 <검은 사각형>, <검은 원>, <검은 십자가>, <절대주의 구성>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카지미르 말레비치-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12%EF%BC%BF211228%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카지미르 말레비치-



말레비치는 `야수파`와 `입체파`의 새로운 양식을 흡수하여

절대주의 또는 예술지상주의라고 불리는 '슈프레마티즘'의 순수 추상회화로 발전시킨다.


말레비치는


1913년 백지에 검은 정방형만 그린 작품을 발표하여 화제를 일으켰고
이 작품을 계기로 하여 감각의 궁극을 탐구하는
`슈프레마티즘Suprematism`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출처] 위키백과 -카지미르 말레비치-


`슈프레마티즘Suprematism`을 `절대주의`라고도 하는데


순수한 형태에 의한 화면 구성을 목적하였고
그러기 위하여 모든 시각적인 대상을 버리고 이것을 조금도 상기시키지 않는 추상적 도형을
가장 간결하게 응축시킨 형태로써 화면에다 배치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검은 정방형을 기조로 하여 여기에 원·삼각형·십자형 등을 조합한 단순한 화면인데
말레비치에 의하면 이 화면은 어떤 상징도 기하학도 도안도 아니며

내면의 질서에 따라서 스스로 형성되고 구성된, '자연을 훨씬 초월한 순수한 감각'의 표현이라면서

[출처] 위키백과 -슈프레마티즘-


이러한 감각 곧 내면의 질서에 따라서 스스로 형성되고 구성되는 것들을 그리는 것을

'절대주의' 또는 `슈프레마티즘Suprematism`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회화에 순수한 감정 혹은 직관적인 절대성을 표현해야 한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는 말인데


예술이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인상파, 야수파, 그리고 입체파까지도 대상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재현할 대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회화는
회화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

[출처] 한국경제 2023.8.23. -말레비치의 1140억짜리 사각형…러시아 최고가 그림의 비밀-


는 뜻이다.


이 때문에 말레비치의 그림은

대부분 간단한 기하 형체의 색채와 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순수 조형 연구를 표방하고 있다고 한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12%EF%BC%BF211546%EF%BC%BFChrom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


위의 작품 <검은 사각형>은


흰색 종이 위에 정사각형을 그리고 연필로 검게 칠한 것으로
두 가지 색채의 극단적인 대비는 연상적인 면에서나 객관적인 형태에서나
이전의 어떤 구성회화와도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으며 절대적인 자유를 표현한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고 평하고 있다.


감상자들이 좋아하는 모든 형상이 사라지고


흰색 바탕과 검정 구멍만 남아 있지만
이 간단한 흑백의 조합은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그림의 상황에 대해 사유를 확장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고
완벽하게 `허무의 세계`로 진입하도록 한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ㅍ


고 평하고 있다.


말레비치는


절대주의 이전의 모든 회화, 조각, 문학, 음악은 자연의 형태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대상을 재현한다’는 짐을 지고 있는 예술을
해방시키기 위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위의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레비치의 캔버스 위에는 사각형만 남게 되었고

정사각형은 무언가를 상징하거나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그만의 유일한 조형 언어가 된 것이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12%EF%BC%BF211620%EF%BC%BFChrom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들-
구글 이미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들-
구글 이미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들-



이처럼 말레비치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형태를 관람객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순수하게 회화를 바라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말레비치의 그림은 역사적으로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보다
훨씬 앞서 기하학적 추상의 한 국면을 전개한 것으로서 의미가 깊다고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절대주의-


특히 아래의 말레비치의 작품 <절대주의 구성>이라는 작품은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돼 8,580만 달러(약 1,140억 원)에 낙찰되었다.

[출처] 한국경제 2023.8.23. -말레비치의 1140억짜리 사각형…러시아 최고가 그림의 비밀-


고 한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12%EF%BC%BF214806%EF%BC%BFChrom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카지미르 말레비치, 절대주의 구성-


이러한 슈프레마티즘의 절대적인 추상기하학 형태의 그림은


훗날 `미니멀리즘` 등 여러 새로운 사조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고 한다.


구글 이미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들-
구글 이미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들-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미래파, 형이상학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파리파에 이어
구성주의가 등장하고 그 속에서 슈프레마티즘이라는 한 형태가 탄생한다.

권력이 힘 → 부 → 지식 → 정보 → 데이터로 이동해 왔지만
기존의 권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 것처럼

미술의 사조 역시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면서 주목을 받지만
기존의 미술의 사조가 사라지지 않고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겠지만
작품을 만든 작가의 철학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물론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을 말한 것처럼
저자보다는 독자들이 작품에서 해석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

작품을 완성하기까지는 작가의 철학과 의도가 있어야만 작품이 생명력을 갖게 되므로
작품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철학을 파악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새로운 사조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철학과 의도를 먼저 밝혀야만
독자 또는 감상자들이 작가의 철학과 의도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작가가 기존의 미술 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품에 철학을 입혀야만 소위 `히트` 또는 `유행`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작품에 있는 하나하나의 요소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작가가 표방하는 철학으로 작품 전체의 흐름을 보면서
독자 또는 감상자만의 해석을 가하는 것이다.


말레비치의 작품이 중세 시대나 인상파가 활개를 치던 시대에 나왔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이러한 그림을 그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미래파, 형이상학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파리파를 거치면서

시대의 흐름이 서서히 구성주의 또는 슈프레마티즘과 같은 철학의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흐름은 기존의 물결을 깨뜨리고 해체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싹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 흐름으로 인해 지금 현대에 말레비치의 그림을 본다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된다.


무언가 답답하고 단조롭고 꽉 막힌 듯한

그러면서

도형의 배치와 색채의 어울림이 무언가 우주로 나아가는 듯한 생명력을 주는 듯하고

도형과 부호와 색채로 인해 있을지도 모를 생명과 대화를 나누게 될 것 같다.


곧 말레비치의 그림이 현대 시대에는 주목이 된다는 말이다.

어떤 작은 흐름이 흘러가면 큰 흐름이 되듯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뜻이다.


마치 연어가 평소에는 강물의 흐름 속에서 노닐다가

생명을 탄생하는 시점에서는 그 흐름을 파괴하고 거슬러 올라가려는 욕망과 역동성을 보이는 것처럼


미술이든 역사든 무엇이든 기존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기존의 흐름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물결이 탄생해 온 것이다.


새로운 물결의 탄생은 기존의 물결을 깨뜨려야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와 연어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흐름`에 따라 나타난 현상을 바라보고

그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 보통 삶이라면

무언가 그 흐름을 깨뜨리고 해체하는 삶은 특수하고 특별한 삶이다.

그렇다고 특수하고 특별한 삶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이 말하는 메시지는 `선택하라`이다.








작가의 이전글[일요칼럼] [이재민 VS 보이는 치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