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데 스틸 VS 대각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가.

피트 몬드리안은

1872년 태생의 네덜란드의 근대 미술 화가이다.

직선과 직각, 삼원색과 무채색만을 사용하여

`질서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스틸(신조형주의)`를 창안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피트 몬드리안-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13%EF%BC%BF201620%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피트 몬드리안-



피트 몬드리안은 말레비치의 기하형 추상 회화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려

데 스틸(신조형주의)를 창안하게 된다.


몬드리안은 칼빈교 가정에서 태어나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초기 그림에는
고립된 시골집, 회색의 신비한 숲 등의 풍경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몬드리안은 <데 스틸>이라는 잡지를 창간하며
그림을 그릴 때 물체의 자연 형태를 벗어나 나날이 단순화된 형상을 그렸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고 한다.


구글 이미지 -피트 몬드리안, 초기 작품들-
구글 이미지 -피트 몬드리안, 초기 작품들-
구글 이미지 -피트 몬드리안, 초기 작품들-


엄격한 교육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조용하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있어
답답함을 느끼는 듯하다.


`데 스틸De Stijl`은 `신조형주의`를 말하는데 영어식으로 말하면 `The Style`이다.


데 스틸De Stijl은


완벽한 사상체계 곧 절제, 지성, 논리의 이성 전통과 신교의 반 우상숭배를 강조하면서
순수한 정신에는 보편적인 조화가 존재한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고 생각하고


생활환경을 추상화하는 것이 인간생활에 대한 진실이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라고 여겼다고 한다.


`데 스틸`의 그림의 조형 수단은


선, 공간과 색채 등 구성 요소만 남기면서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단순화시켰다고 한다.


또한 `데 스틸`의 화풍은


형태와 색상의 추상화
즉 곧은 선과 명료하게 정의된 원색을 통해 고유한 표현을 찾아야만 한다면서

건축과 회화에서 궁극적인 단순함과 추상성을 추구하였고
오직 수직선과 수평선, 사각형 형태 만을 사용했다고 한다.

한 빨강, 노랑, 파랑 같은 원색과 검정, 흰색, 회색의 세 가지 주요 명암으로
형태상의 표현 방식도 제한되었으나

데 스틸의 작품들은 대칭을 피하고 대조를 활용하여 미적인 균형을 달성했다.

[출처] 위키백과 -몬드리안, 데 스틸-


고 평하고 있다.


`데 스틸`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 `피트 몬드리안`이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13%EF%BC%BF210032%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피트 몬드리안, 빨강, 파랑, 노랑의 콤포지션-


위의 몬드리안의 작품 <빨강, 파랑, 노랑의 콤포지션>은


검은 선으로 분할된 화면에서 도약하는 빨간색은 시선을 사로잡고
시각적으로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굵고 두꺼운 검은색 선이 반듯하게 분할되어
밖으로 나오려는 빨강의 열정을 통제하고 있으며
왼쪽 모서리의 작은 파란색 조각 역시 빨강을 억제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의 작은 노란색 조각은 시각적인 단조로움을 보충하고 있다.

화면 전체적으로 배치된 세 가지 원색은
감상자에게 시각적으로 색깔 간 전후 운동의 심리적 반응을 생성시킨다.

이를 통해 색깔의 배치가 결코 아무렇게나 구성된 것이 아니라
조화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고 평하고 있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13%EF%BC%BF210710%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피트 몬드리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위의 작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결국에는 완벽하게 수평과 수직의 검은 선으로 화면을 분할하고
빨강, 노랑, 파랑의 세 가지 원색의 색면으로 하는 화면을 조직하고 질서를 묘사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칸은 길이가 서로 다른 선과 색상의 조합에서 음악성이 느껴진다.

[출처] 지도로 보는 세계 미술사 -바이임 엮음, 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 출판-


고 평가되고 있다.


몬드리안은 계속 추상화 탐구를 지속하던 중

`데 스틸` 과 멀어지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들에게 갈등을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대각선을 그림에 넣느냐는 문제였다고 한다.

수직과 수평만으로도 세상의 본질을 담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선 따위는 자연의 겉모습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며
몬드리안은 데 스틸에서 탈퇴하며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출처] 매일경제 2020.9.18 -"나는 자연을 혐오한다"…몬드리안이 사각형 그림을 이유-


고 한다.


왜냐하면 몬드리안은 세상을


도시는 무언가를 이루려는 수많은 사람의 욕망을 우걱우걱 먹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꿈틀거린다.
하지만 온갖 스토리로 뒤엉킨 도시도 멀리서 보면 결국 직선의 조합이라는 것이다.

대도시를 원경으로 촬영한 사진을 보면
우뚝 솟은 빌딩들은 수평선, 수직선 실루엣으로 뭉뚱그려진다.
꼭 멀리서 보지 않아도 된다. 수평과 수직 개념을 의식하고 주변을 보면 온통 직선이다.

또한 우리는 온종일 직사각형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본다.
회사에서는 네모난 모니터 앞에 앉아 자질구레한 일들과 씨름한다.

수직으로 치솟은 아파트 한 채를 꿈꾸며
오늘도 많은 직장인은 끝이 잘 보이지 않는 수평선 같은 삶을 버티고 있다.

[출처] 매일경제 2020.9.18 -"나는 자연을 혐오한다"…몬드리안이 사각형 그림을 이유-


라고 바라보고


수평과 수직이 세상의 전부라고

[출처] 매일경제 2020.9.18 -"나는 자연을 혐오한다"…몬드리안이 사각형 그림을 이유-


믿었다고 한다.


그런 몬드리안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을 탈출하여 미국으로 건너간다.
여기서 뉴욕의 재즈를 만나게 된다.
재즈 연주를 듣고, 음악가들과 어울리게 된다.

불확실성과 싸우며 직선에 매달렸던 화가가
불확실성 그 자체인 재즈에 빠진 것이다.

[출처] 매일경제 2020.9.18 -"나는 자연을 혐오한다"…몬드리안이 사각형 그림을 이유-


대각선 하나도 용납하지 않은 엄격한 몬드리안은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재즈를 만나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드디어 대각선을 조금씩 사용한 것이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813%EF%BC%BF210915%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피트 몬드리안, 구성-


물론 이 그림도 수직선과 수평선과 원색이 전부다.
하지만 전형적인 몬드리안 작품과는 다르다.
대각선 때문에 결별한 동료에게 보내는 화해의 제스처였을지도.

그는 캔버스 자체를 마름모꼴로 기울인 상태로 작품을 그린 것이다.

[출처] 매일경제 2020.9.18 -"나는 자연을 혐오한다"…몬드리안이 사각형 그림을 이유-


우회적으로 대각선을 허용한 것이다.


매일경제 2020.9.18 -"나는 자연을 혐오한다"…몬드리안이 사각형 그림을 이유-



위 사진은 세상을 바라보며 고뇌하는 몬드리안의 모습이다.


당시 네덜란드 지식인 사이에서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진리가 있다.`는 신지학이라는
철학이 유행했는데 이러한 신지학에 몬드리안이 심취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몬드리안은 눈에 보이는 현상들 뒤에 숨겨진 진리를 찾고자
1908년부터 1913년까지는 나무를 보이는 대로 그렸었다.

하지만 그다음 작품부터 몬드리안은 나무의 특성을 하나둘 소거하기 시작하여
마지막 작품에선 나무 형태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몬드리안은 버리고, 버리며 직선들이 거미줄처럼 뒤엉킨 이미지만을 남겨 놨다.
나무가 가진 어떤 리듬만을 뽑아낸 것이다.

[출처] 매일경제 2020.9.18 -"나는 자연을 혐오한다"…몬드리안이 사각형 그림을 이유-


눈에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기 위한 과정이 버리는 것이라면
그렇게 버리는 과정을 통해서 나타난 것은 무엇일는지.

혹여라도 마지막 남은 것은
참다움이 아니라 나만이 원하는 비뚤어진 것은 아닐는지.

몬드리안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이며 무엇을 취할 것인지를 우리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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