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는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
영화 <리바운드>는 2012년 단 6명의 선수단으로 협회장기 농구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부산중앙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당시 부산 중앙고의 선수단의 절반 이상이 농구를 막 시작했고, 경기 도중 한 명이 부상을 당하며 사실상 5명이 경기를 계속했다. 또한, 선수단을 이끌던 강양현 코치 역시 2부 리그 출신에 지도자 경력이 전무했기 때문에 준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이뤄낸 이 믿기지 않는 실화는 인기리에 연재 중인 웹툰 <가비지타임>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6년 만에 영화감독으로 돌아온 장항준 감독의 <리바운드>는 전작 <기억의 밤>과 상반된 분위기로, 통통 튀는 코미디 연출과 스포츠 경기의 긴장감, 그리고 실화가 주는 감동적인 울림까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중앙고 선수 역할을 한 배우들이 대부분 영화계에서 새로운 얼굴들인지라 보다 신선하게 느껴지는 점도 이 영화의 강점이다.
모두가 안될 거라 생각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기적을 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 <리바운드>는 지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정신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준 것의 연장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실에 좌절하고 회의감을 느끼는 청춘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단순히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면 할 수 있다'고 하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정말로 최선을 다했기에 해낼 수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희망을 말하는 이 영화는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앞서 말했든 부산중앙고 농구단은 어설픈 농구단이다. 고교농구 MVP 출신이지만 결국 별 볼 것 없이 선수 생활을 그만두었던 '강양현'(안재홍) 코치를 필두로, 한때는 천재 가드였으나 키가 크지 않아 포텐을 터뜨리지 못한 '천기범'(이신영), 발목 부상으로 농구를 포기했던 '배규혁'(정진운), 축구하다가 농구로 환승한 '정강호'(정건주), 길거리에서 농구하던 '홍순규'(김택),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를 했으나 출전 경험은 전혀 없는 '허재윤'(김민), 그저 농구를 향한 열정만 가득한 '정진욱'(안지호)까지. 농구를 제대로 해봤던 사람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한 팀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한다. 중학교 시절 경기 도중 농구를 포기하고 도망친 배규혁과 본인이 일단 잘하는 게 중요했던 천기범의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가고 그들의 사정을 잘 모르는 다른 선수들은 그저 뒤에서 눈치 보기만 한다. 그렇게 실책이 늘어나다 못해 결국 사고를 친 부산 중앙고의 농구단은 해체 위기에 다다르지만 농구를 향한 진심만큼은 서로가 같다는 것을 인지하고 다시 한데 모여 '농구 함 해 보까?'를 외쳐 본다.
부산 중앙고의 기적의 배경은 결국 '진심'이다. 선수 생활에 실패하고 지도자 생활까지 제대로 시작해보지 못한 채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허탈했던 강양현은 서랍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과거 자신의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된다. 고교 농구 우승 후 MVP까지 차지한 뒤의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고등학생 강양현은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리며 '모르겠다, 농구를 하는 게 그냥 좋다, 이렇게 좋아하는 농구를 평생 하고 싶다'는 순박한 답변을 한다. 농구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없지만 그저 농구가 좋은, 그야말로 순수하게 농구밖에 모르는 바보였다. 그렇게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모습과 과거 자신이 기록하던 농구 일지 속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져 있는 '리바운드'를 보고 강양현은 다시 일어선다.
리바운드 : 다시 튀어 오르다. 농구 경기에서 바스켓에 맞고 튕겨져 나온 공을 다시 잡는 행위. 이 행위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 공격권의 주체가 달라진다. 골인을 하지 못했음에도 다시 공격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종의 '기회'의 순간이다.
중앙고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좋아하는 농구를 잘 해내기 위해선 나만 잘해서 될 것이 아니라 친구들을 믿고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농구라면 지긋지긋했지만 옷장에도 농구 스티커를 붙일 정도로 농구가 좋다는 것을, 럭비공보다는 농구공이 더 낫다는 것을, 슛 하나 못 넣어 좌절할 법도 하지만 밤늦게까지 남아 홀로 농구 연습을 할 만큼 농구에 진심이라는 것을, 어깨가 골절되었지만 어떻게든 형들과 같이 뛰고 싶어 눈물이 날 정도로 농구가 좋다는 것을 깨닫고 '리바운드'를 쟁취하게 된다. 리바운드가 계속된 농구에서, 중앙고 학생들은 8강에, 4강에, 결승에 진출했다는 사실보다 그저 '내일도 농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렇기에 고작 6명의 어리숙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중에 한 명이 부상으로 빠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테이핑에 부상 선수의 이름을 쓰고 하나가 되어 큰 목소리를 내며 연승을 할 수 있었다. 교체 선수 없이 대회를 치르느라 서 있기도 힘들 만큼 체력이 바닥났지만, 결승전에서 전반부 16점 차로 뒤지던 중앙고는 이후 후반부에서 파울 누적으로 2명이 빠졌음에도 10점 차만 내면서 실책도 줄일 수 있었다. 서로의 진심을,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진심을 믿었기에 그들에게 '리바운드'가 계속해서 주어졌던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진심으로 좋아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꿈꾸는 것, 좋아하는 것은 대부분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실패를 거듭하면 어느 순간 나의 진심에 의심을 하게 되고 결국 진심을 외면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 나를 한 번 더 믿어보고 손을 뻗을 때 리바운드, 즉 다시 돌진할 기회는 주어진다. 영화에서 좋아하는 농구를 평생 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강양현은 지도자로서 농구를 다시 하게 되었을 때 지레 겁부터 먹었다고 고백한다. 잘해야 한다고, 인정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 두려움에 갇혀 순수한 진심을 미처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농구를 잘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 그래서 농구를 계속할 사람이라는 것을, 용기 내 다시 마주한 강양현은 비로소 중앙고 선수들에게 리바운드를 일깨우며 '앞으로 농구를 하든 다른 걸 하든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마라. 당장의 농구는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너, 나, 우리를 믿고 그리고 무엇보다 순수한 나의 진심을 믿은 중앙고 선수들이 그랬듯, 실패라고 생각이 든 순간 믿음을 잃지 않고 용기 내 손을 내밀 때 기회는 계속된다. 농구가 끝나도 인생이 계속되듯, 영화가 끝나도 우리의 인생은 계속된다. <리바운드>는 영화가 끝나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다양한 형태의 부족을 인정하는 것은 자책이 아니라 용기다" (<리바운드>의 장항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