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틱...붐!> 결국 말보다 강한 건 행동이니까.
영화 <틱,틱...붐!>의 주인공 조너선 라슨(앤드류 가필드)은 서른 살 생일을 앞두고, 여태까지 아무것도 이뤄낸 것 없이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생각에 조급해한다. 아직 서른 살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자책을 하나 싶지만, 실제로 조너선 라슨이 35살, 자신의 뮤지컬 히트작 <렌트>의 공식적인 브로드웨이 개막 전날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업계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공연이 걸리는 것에 조급해하는 영화 속 조너선의 모습이 왠지 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참고로 이 영화의 원작은 뮤지컬 작가 조너선 라슨이 <슈퍼비아>의 최종 제작 실패 후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틱틱붐>이다.)
서른 살에 괜한 의미를 부여하는 조너선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김광석의 명곡 중 하나인 "서른 즈음에"엔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라는 가사가 있다. 이 노래 가사를 들여다 보면, 방황마저도 자유분방한 청춘의 모습이라고 포장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은 다 갔는데 정작 남아 있는 건 없어 좌절하는 조너선이 겹쳐 보인다. 이 노래뿐만이 아니다. 가수 다비치의 강민경과 가수 아이유는 각각 자신의 '스물아홉'을 노래하는 "스물 끝에"와 "라일락"을 발매했다. 서른 즈음에, 스물 끝에, 라일락 그리고 조너선 라슨의 "30/90"까지 들어보면, 사람들은 시대와 국적 그리고 성별을 막론하고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시기를 굉장한 터닝포인트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서른을 훌쩍 넘은 어른들에게 '서른 살'에 관해 물어보면 그때 왜 그렇게 서른 살 되는 거에 큰 의미를 두었나 생각한다고 답한다는데도 말이다.
이십 대 후반, 서른 즈음의 시기에 대부분의 '청춘'들은 꿈을 이뤄내기보단 사회 현실에 적절히 타협하며 자리를 잡아가는 것으로 방향을 튼다. 조너선 주변만 봐도 그렇다. 함께 뮤지컬을 꿈꿨지만 이를 포기한 뒤 광고 회사에 취직하여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친구 '마이클'(로빈 데 헤수스)과 현대 무용수를 꿈꿨지만 부상 이후 강사로 전향한 연인 '수잔'(알렉산드라 쉽)을 보며 조너선은 머리로는 그들이 옳다고 생각한다. (Johnny Can't Decide). 주변 인물들에 비해 조너선은 전기도 끊길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꿈을 좇았지만, 정작 남은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만 허비했다는 생각에 곡은 더 써지지 않고, 조급한 마음만 앞서 '틱틱틱' 소리만 커져가는 와중에 에이즈로 이미 일찍 떠난 친구들, 현재 아픈 친구를 생각하면 인생은 더 짧게 느껴지기만 한다.
조너선처럼 예술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 목표한 지점을 이루고 자신만의 자리를 잡는데 조급함을 가지는 이유는 스스로 자신감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주변과의 시차로 인해 위축되는 것이 더 크다. 남이 이룬 성과가 더 크게 느껴지고, 빨리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사실 조금만 떨어져서 넓게 보면, '로자'(주디스 라이트)가 말한 대로 그냥 계속 하다 보면, (영화 대사 그대로를 빌리자면, '써재낀다면') 언젠가 빵 터지는 날이 오는 거지만,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나이에 그게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8년 동안 준비해 온 <슈퍼비아>가 브로드웨이에 걸리는 꿈이 좌절되고, 조너선은 이제 다음 작품을 만들라는 말을 듣는다. 이때 영화 <소울>의 '조 가드너'가 꿈의 무대에서 현란한 연주를 마친 뒤 알 수 없는 허탈함에 마주했을 때 젊은 물고기 이야기 (물이 아닌 바다를 찾는 젊은 물고기에게 나이 든 물고기가 여기가 바다라고 말하는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어찌 됐건 꿈을 한 번쯤은 이룬 <소울>의 조와 꿈꾸던 무대를 아예 만들지도 못한 이 영화의 <조너선>이 마주한 상황은 조금 다르다. 하지만 둘은 모두 꿈을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과 강박에 시달렸지만, 인생에선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 가드너는 일상의 소중함을, 조너선은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때 조너선이 들었던 "네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써보라"는 로자의 말과 "너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라"는 롤모델 '손드하임'(브래들리 휘트포드)의 음성 메시지가 <틱,틱...붐!>의 핵심이다. <틱,틱...붐!>은 조급해하는 어린 청춘들에게 "조급해하지 마세요, 인생은 깁니다"와 같은 어른의 시선에서의 상투적인 조언을 건네지 않고, 현재 조급해하는 모습 자체를 존중해준다. 조급해할 필요 없지만 그럼에도 빨리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진다면, 적어도 자신의 모습이 주변과 달리 멈춰있다는 생각에 주눅 들지는 말라고, 너 자신에게 집중하여 그냥 계속해보라는 용기를 준다.
조너선은 예술적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수영을 한다'(!). 이 귀여운 루틴 이후에 조너선은 "마음에 귀 기울이라"는 노래를 만든다. (Come to Your Senses). 워크숍에서 이 노래가 울려 퍼질 때, 조너선은 자신에게로부터 등 돌렸던 애인 수잔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워크숍에 온 사람들이 이 노래에 찬사를 보냈음에도 브로드웨이 진출은 실패했을 때, 조너선은 존경하던 손드하임으로부터 격려의 메시지를 받았다. 노래의 결과는 실패였지만, 그 노래는 수많은 의문의 메모를 적을 땐 알 수 없는 표정과 공허한 눈빛을 보였던 조너선이, 영원히 스물아홉일 순 없는 걸까 바라던 조너선이, '다음 작품 써봐야지'라고 웃으면서 말하고, 끝내 서른 살 생일 케이크를 받아들 수 있게 했다. 자신의 조급함의 이유가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든, 꿈을 향한 사랑이든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가보자고 다짐한다. (Louder Than Words). 비록 조너선은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삶을 살아보기 직전 생을 마감하는 너무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적어도 <틱틱붐>을 완성하고 공연하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본인의 모습에 집중하여 자신과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나아갔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그러니, 조급해하는 청춘들이여, 그런 본인에게 자책의 '말'을 하는 대신 '마음에 귀 기울여 하루하루 행동'해 보기를. (이라고 나 자신에게 괜히 말해 본다.)
위 글은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9177 글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