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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m Jan 30. 2023

<헌트>의 화려한 액션 속에서 들여다본 것.

이념 갈등 그 이상의 것

시작부터 매섭다. 워싱턴에서 한인 교민들의 시위대에 의해 당시 대통령 전두환의 사진이 불타오르고 대통령을 향한 테러를 막기 위해 안기부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 워싱턴 액션 시퀀스를 통해 영화 <헌트>는 기존 한국 액션 영화들과 달리 화려한 총기 액션을 영화 시작부터 선보이며, 영화의 장르적 색채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테러 집단의 인질이 된 안기부 해외팀 차장 '박평호'(이정재)를 구해 준 안기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의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끝에 들리는 '피나 닦으세요'라는 대사는 두 인물의 팽팽한 대립을 예고한다.


영화 <헌트>의 공식 로고 'HUNT'의 'N'은 뒤집어져 있는데, 영화를 연출한 이정재의 인터뷰에 따르면 박평호와 김정도를 기둥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가 점점 상승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뒤집어 본 것이라 한다. 박평호와 김정도가 대립하다가 점점 비슷한 모습이 되고, 결국은 똑같이 재를 뒤집어쓴 채 서로를 마주하게 된 영화의 전개를 생각해 보면, 뒤집어진 N은 점점 상승하는 구조 끝에 닿게 된 두 인물의 관계성을 잘 나타낸다.

영화 <헌트> 포스터

<헌트>는 오랜 세월 배우로 활동했던 이정재가 처음으로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영화다. 영화계에서 발 담그고 있던 시간은 오래됐고 경력 역시 화려하지만, 엄연히 연기와 연출은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도전하는 것도, 그리고 잘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8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가져오는 것 역시 까다로운 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정재는 첫 영화를, 그것도 한국 영화에선 흥행하기 어려운 총기 액션과 첩보물을 버무린 이 영화를 느슨해지는 부분 하나 없이 충분한 영화적 재미를 제공하며 대중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한국 현대사의 일부 사건들을 가져오고, 액션 영화이기도 하지만 첩보 영화이기도 한 장르적 특성상, 영화의 정보량은 상당하다. 이로 인해 한번에 영화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관객들도 더러 있었겠으나, 투톱 주인공을 내세우는 영화들 중 가장 두 주인공들의 비중이 동일하다고 봐도 될 정도로 서사 안배가 잘 되어 있고, 화려한 액션 시퀀스들의 향연 속에서 서로를 의심하고 몰아세우는 심리전의 완급 조절도 탁월하다.

영화 <헌트> 스틸

영화는 전반적으로 조직 내 침투한 간첩 '동림'을 찾는 과정을 다룬다. 안기부 내 '동림'을 찾기 위해 상대편을 파헤쳐보라는 동일한 지시를 받은 박평호와 김정도는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본인이 정말 간첩인지 그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내가 아닌 저 사람'이 동림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고, 동림으로서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의심은 어느 순간부터 동림 '만들기' 싸움으로 번진다. 이는 실제 역사에서 당시 군부 정권과 안기부가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권력 조직이 흔들릴 때마다 혹은 권력 행사를 방해하는 집단이 나타날 때마다 사상 검증을 하고 '간첩', 속된 말로 '빨갱이'라고 프레임 씌우며 몰아세웠고, 그 방식은 매우 폭력적이고 강압적이었다.


그 당시의 정서를 생각한다면 "난 네가 반드시 동림일 거라 생각해"는 김정도가 박평호를 동림이라고 의심해서라기보다는 박평호가 동림이어야만 하는 것에 가깝다. 동림을 찾는 것은 상대편보다 내가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상대를 불리하게 만들기 위해 프레임 씌우는 행태는 분단 이후부터 이어져서 80년대에 정점에 다다르긴 했으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북 갈등을 이용하던 것에서 동서로 나누어 지역 갈등을, 나이로 나누어 세대 갈등을, 성별로 나누어 남녀 갈등으로 세분화되며 지속되고 있다.

영화 <헌트> 스틸

이처럼, <헌트>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극 중에서 박평호가 딸처럼 거두고 있는 유정(고윤정)의 캐릭터를 통해 영화를 80년대에만 두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유정에게로 확장하고 있다. 유정이 극 중에서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멍청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2020년대를 살아가는 현재 세상은 80년대와 많이 변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시절의 갈등은 여전하다 못해 더 교묘하게 발달했다. 무수한 정보의 빠른 전파와 흡수 속에서 온갖 가짜 뉴스로 서로에게 프레임을 씌우며, 낙인을 찍고, 혐오를 한다. "독재자보다 더 나쁜 게 독재자의 하수인"이라던데, 독재는 사라지긴 했으나 여전히 기득권에 붙어 약자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자들은 만연하다. (기득권 세력보다도 기득권에 붙어 있는 자들이 더하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서로가 동림이라고 의심, 아니 믿으며 치열하게 대립하던 박평호와 김정도는 둘의 목표가 같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자 의심을 잠시 거두고 손을 잡기로 한다. 영화는 곳곳에 둘의 목표가 같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치가 있다. 대표적으로 서로 동림이라고 의심하는 과정에서 취조실의 특수 유리에 대고 서로를 향해 날이 선 대화를 하는 장면은 유리의 특성상 자신의 얼굴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에게 하는 말은 사실상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고, 서로의 얼굴은 같다는 연출로 볼 수 있다. 또한 영화에서 둘의 정장 색은 각각 갈색 계열과 푸른색 계열로 확연한 차이가 있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정장 색이 점점 유사해지고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방콕 액션 시퀀스 후 두 인물은 재를 뒤집어쓰며 마침내 똑같아진 얼굴을 마주 본다. (이는 실제로도 의도한 연출이라고 한다.) 앞서 뒤집어진 N이 영화의 기둥 역할을 하는 박평호와 김정도가 점점 상승하는 영화 구조 안에서 마침내 만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던 것처럼, 목표가 같았기에 잠시 손을 잡고 클라이맥스로 향한 뒤 하얀 재를 뒤집어쓴 채 그제야 또렷하게 서로를 마주한다.

영화 <헌트> 스틸

대통령을 제거한다는 목표는 같았지만, 그 목적은 달랐다. 이는 이름에서도 유추가 가능한데, 박평호는 '평화'를 위해, 김정도는 '독재 정권을 끊어내기 위해'였다. 두 이유 모두 정당해 보이고, 대의를 위한 것처럼 보인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대통령을 제거'한다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은 크게 보면 '수단이 목적을 앞설 수 있는가'의 고전적인 논쟁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박평호와 김정도 둘 다 목적을 위해 다소 극단적인 수단을 허용한 셈인데, (물론 상대가 전두환이라 그 수단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목적 달성에는 실패했다. 이는 같은 해 개봉했던 영화 <킹메이커>의 결말과도 유사하다. <킹메이커>는 6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보다 직접적으로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수단이 목적을 앞설 수 있는가'에 관해 논의한다. 킹이자 빛이었던 '김운범(설경구)'이 빛나는 것에 실패하고, 킹메이커이자 그림자인 '서창대(이선균)'가 그림자에서 벗어나 (상상이긴 하지만) 둘 다 동일하게 햇빛이 드는 곳에 앉아 마주 보는 장면은 대의를 위해 목적과 수단 중 어느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가의 끝없는 논쟁 속에서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린, 즉, 본질을 잃어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헌트>도 마찬가지다. 목표가 같으니 잠시 손을 잡았으나 궁극적인 목적은 달랐기에 그들은 대통령을 제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합이 맞지 않게 되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각각의 이념이 달라 끝까지 갈등했던 자들이 이념 갈등을 넘어서서 그 이념의 본질을 무의미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각자의 목적 달성을 위해 '대통령 제거'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택하고, 그 속에서 소수의 희생 정도는 눈감았던 것의 대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헌트>는 <킹메이커>와 달리, 80년대의 이야기를 현재의 이야기로 연결시켜 주는 '유정'의 캐릭터를 한 번 더 활용하여, 조금 더 희망적으로 마무리된다. 박평호는 유정을 지키고 자립할 수 있게 끝까지 노력하고 "너는 다르게 살 수 있어"라는 말을 건넨다. <헌트>가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동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이정재의 인터뷰를 생각하면, '너는 다르게 살 수 있어'라는 대사는 기성세대의 어른인 이정재가 현재를 그리고 앞으로를 살아갈 젊은 세대에게 남기는 메시지다. 과거 갈등의 잔흔은 여전하고, 새로운 갈등도 무수히 발생하고 있지만, 결국 그 갈등 끝에 대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선 그 갈등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영화 <헌트>는 강렬하게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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