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는 말한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제71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어느 가족>을 비롯하여 <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세계적으로 명작으로 인정받은 다수의 영화를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한국 영화' <브로커>로 돌아왔다 <브로커> 역시 제75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여,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일본 감독이 한국 영화를 연출한다는 특이성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거장 감독의 영화에 국내외로 인정받고 있는 배우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를 비롯하여 탑 아티스트 아이유(이지은)와 독립영화계의 아이돌로 불리던 배우 이주영의 출연 확정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영화 얘기로 들어가자면, 이 영화는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는 브로커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 아이를 버리려고 했던 '소영'(이지은)이 함께 새로운 입양자를 찾아가고, 그런 그들을 추적하는 '수진'(배두나)과 '이 형사' (이주영; 배역 이름이 없다.)의 일종의 로드 무비다. 영화에서 상현은 자신과 동수의 역할이 버려진 아이를 새로운 부모와 연결해 주는 '큐피드'라고 포장하지만, 사실상 사람을 값을 매겨 파는 불법 브로커에 불과하다. 비록, 동수가 과거 자신이 엄마로부터 버려졌던 경험으로 인해 다른 아이들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행위 자체는 불법이다.
나쁜 짓을 하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게 만드는 이 캐릭터 설정 방식은 낯설지가 않다. '고레에다식 연출'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불법 행위를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려내며 밉지 않게 느껴지게 하지만 또 완전히 옹호하지만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브로커 여정"에 합류했던 상현, 동수, 소영, 그리고 보육원 시설에서 생활하던 해진이가 훈훈한 대안 가족을 이루는 듯하다가도 끝내 해체되었고, 이들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을 흔들리는 사진으로 암시했다. 실제로 감독에 의하면, 해피엔딩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혈연관계가 아닌 자들이 어우러져 가족의 형태를 띠게 되는 전반적인 구성을 보면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어느 가족>의 중간 지점 혹은 연장선처럼 보이기도 하다. 이 두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하면 '가족 영화'가 떠오르게 만든 대표작들인 만큼 <브로커> 역시 대안 가족의 여정을 그리는 가족 영화라고 볼 수도 있으나, <브로커>는 가족 영화에서 더 나아가, 대안 가족이었던 시간 속에서 '개인'이 각자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고 있다.
브로커 여정에 합류했던 인물들은 모두 '존재를 부정당했었던' 인물들이었다. 상현은 자신의 빚으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했고, 동수는 엄마로부터 버려졌으며, 소영 역시 온전한 가정에서 성장하지 못했고, 자신이 엄마가 되었다는 점까지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흔히 모성은 타고난 것이라고들 하지만, 소영이라는 인물은 모성을 느끼지 못한다. 중간에 합류한 '해진'(임승수) 역시 부모로부터 버려져 보육원에서 지내는 인물이다. 존재를 부정당했기 때문에 이들이 함께 존재하는 모습은 다소 서툴다. 소영의 아이인 우성이가 아플 때 병원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주민번호를 묻는 간호사에게 아이가 1개월이라고 거짓말하는 모습, 경찰에게 관람차를 타러 (관람차가 없는) 롯데월드를 간다고 거짓말하는 모습 등을 보면 그들의 '브로커' 여정은 마치 그들이 타고 다니는, 뒷문이 고장 난 봉고차처럼 엉성하다.
그럼에도 함께 존재함으로써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있었기에 함께의 가치를 느낀다. 꼭 모든 것을 혼자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더 일찍 함께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미 늦어버린 희망을 품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한데 모여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태어나서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당했었던 인물들이 저마다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세차장에서 모든 걸 씻어내고,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좌절된 시점에서 이 모든 여정 이전의 인생을, 빗물에 씻겨내려 보내고 싶었던 그 인생을 받아들이고 각자의 인물들은 그에 맞춰 살아간다.
동수는 평생을 엄마를 기다리며 원망했지만, 소영을 보며 그래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부정당했던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마치 훗날 큰 우성이 소영을 용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에서 동수의 이야기를 듣는 소영 역시 자신 혹은 사회가 부정했던 그동안의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입양자가 단번에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을 보며, 모성이 없어 한 번도 젖을 물려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소영은 자신이 아이 엄마라는 점을 천천히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현은 불법적인 일을 했던 그동안의 자신의 업보를 되받으며 대안 가족에서 가장 먼저 퇴장한다. '브로커'의 거래를 현장에서 체포한 수진은 아이를 받아 안고 '어쩌면 아이를 가장 팔고 싶어 했던 건 나 자신이었을지도'라며 자신의 수사 목적의 아이러니를 깨닫는다.
물론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주고받는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이 직설적인 대사는 작위적이고 어색하게 느껴져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레에다 감독이 이 대사를 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고레에다 감독은 <브로커>가 시설에서 자라 '과연 나는 태어나길 잘한 것일까'라는 생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명확한 답을 갖지 못한 아이들에게, 너 같은 건, 나 같은 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안팎의 목소리에 맞서서 강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아이들에게 제시하고 싶은 작품이었다고 한다.
엄마를 용서하고 자신의 삶을 인정하게 되는 동수의 모습이 가장 이 영화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즉, 이 영화는 결국 존재를 부정당한 자들이 저마다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그래도 우리 모두의 삶은 제각기 이유가 있으며, 보잘것없어 보여도 나름대로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작은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