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쫌 이상한 사람들> 그림책을 읽고

by 농부사랑

<쫌 이상한 사람들> 그림책을 읽고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지만 내가 학교에 근무하기에 동생들을 잘 키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동생들이 연이어 가출하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는 부조리와는 거리가 멀 것으로 알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80년대는 지금과 달리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몸담은 직장이라도 변화시켜 보려 몸부림쳐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가정과 직장에서 실망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 만나서 알콩달콩 살아보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 눈치를 보지 말고 산동네에 월세방 한 칸 얻고 최소한의 살림만 준비하여 결혼하자 했더니 ‘사랑한다고 다 결혼하는 것 아니다’라며 떠나갔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뜻대로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았다. 내 삶은 왜 이리도 꼬이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전에는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난은 삶을 불편하게 할 뿐 가난하기에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확신을 갖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실연을 당한 후 나는 가난하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닌 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심한 두통, 신경쇠약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괴로운 마음을 달래려 날마다 술을 마시다가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하였다. 나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혼하고자 하였다. 소개받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두 번 다시 보자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안색과 몰골이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주위 크리스천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두고 직장 신우회 모임에 초청하고 교회에 한번 가보자고 하였다. 어쩌다 신우회 모임에 참석하였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성경공부를 하는데 재미없어 졸다 오곤 하였다. 1986년 여름, 4박 5일 대학생선교회 수련회에 하루만 참석하기도 하고 따라갔다. 수련회 첫날 밤 대학생들이 자신이 만난 하나님, 하나님을 만나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간증하는데 충격을 받았다. 자기 생각이 분명한 지성인들이 어떻게 저렇게 가치관이 바뀌고 삶이 변화될 수 있었을까? 나도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하여 그들이 만난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다.


수련회 다녀와서 곧바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운영하는 오산리 금식기도원 ‘전국 청년 초청 금식 대성회’에 5박 6일 참석하였다. 가출했다가 돌아온 남동생이 수련회에 참석하여 마음을 잡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보통 2시간씩 예배를 드리고 1시간 정도 쉬었다. 하루에 4번씩(새벽, 오전, 오후, 저녁) 예배를 드렸다. 영적인 세계를 전혀 몰랐기에 설교를 들어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라고 생각했다. 집회 기간 내내 졸기 일쑤였다. 함께 간 동생은 3일 후에 집에 가버리고 나는 집에 가봐야 뾰족한 수가 없어 수련회 끝까지 남아 있었다.


집회 기간에 금식이 원칙이었지만 금식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대부분 참석자는 금식하였지만, 나는 금식하지 않고 아침저녁 하루 두 끼씩 먹었다. 그곳 기도원 예배는 항상 끝날 무렵에 통성기도를 하는데, 사람들이 울며불며 부르짖어 기도했다. 나는 설교시간에는 재미없어 졸다가 통성기도 시간에 정신이 번쩍 들곤 하였다. 도대체 무슨 죄를 그리도 많이 지어서 저토록 울며불며 기도할까 궁금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금식하는 사람들의 얼굴빛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갈수록 표정이 어두워지는 나와는 대조적이었다. 3일 지나서 나도 후반부 3일간은 금식하였다. 하지만 수련회 마지막 아침 집회 때까지 아무런 깨달음도 없었다. 이제 마지막 폐회 예배만 남겨놓고 있었는데, 나는 왜 하나님께서 만나주지 않으실까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교회에 나오지 않을 때 여러 번 전도하는 사람들을 만났었다. 논쟁하다가 귀찮고 짜증나면 “나를 포기해 달라!”고 하곤 했다. ‘나를 포기해 달라’고 말하였기에 하나님께서도 나를 포기하신 것이 아닐까 싶었다. 수련회 기간 하루 네 번씩 그 많은 설교를 들었지만 뭘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꼭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설교 중에 “감사하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죄”라고 하였다. 나는 뭘 감사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평소에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라는 말을 곧잘 하였다. 하지만 마음으로부터 감사한 것은 아니고 습관적으로 한 말이었다. 감사보다는 오히려 불평불만이 많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고자 몸부림쳤는데, 왜 내 인생은 이리도 풀리지 않고 꼬이기만 하느냐고 ….


마지막 폐회 예배가 한 시간 정도 남아 있어, 감사할 일을 찾아보았다. 지금이야 곧바로 10가지 감사 제목도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머리를 쥐어짜서 억지로 겨우 3가지 감사할 일을 찾았다.

⓵ 가출한 동생들이 있지만 착하게 잘 성장하는 동생들도 있다.

⓶ 학교가 문제가 많지만 순수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직을 선택했다.

⓷ 건강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죽을병에 걸리지는 않았다.


3가지 감사 제목을 겨우 찾고 마지막 예배시간이 되어가서 건물로 들어갔다. 벌써 앉을 자리가 없어 통로 계단에 신문지 하나 깔고 앉았다. 그런데 당시 유행하던 복음성가 ‘내일 일은 날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가끔씩 신우회 모임이나 예배시간에 생각 없이 따라 불렀던 노래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가사를 통해 깨달음이 왔다. 내일 일을 모르는데 내일 일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하는데,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지 않았던가. 마음 중심으로부터 회개하며 고백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신데, 내가 내 주인이라고 살아왔습니다.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하는데,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며 살아왔습니다. 내가 주인 되어 살아가려니 너무 힘듭니다. 이제 나를 내려놓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주인 되어 주십시오.”


그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기쁨이 넘쳐났다. 아직 예배가 시작되지 않았고 준비 찬송을 부르고 있었는데, 주체할 수 없이 눈물 콧물이 흘러 내렸다. 그 시간 이후 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고자 몸부림치지 않았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되,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겼다. 동생들 문제도, 직장 문제도, 결혼문제도. …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던 불면증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견딜 수 없던 두통이 사라졌다. 술만 보면 먹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해 갈등하다 술을 마시고 후회하였는데, 그런 술이 전혀 먹고 싶지 않았다. 술친구들은 좋아하던 술을 왜 마시지 않느냐며 옷에 붓기도 하였다. 예전에 크리스천들이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고 판단했던 것들을 내가 직접 체험하여 알게 되었다.


그림책 <쫌 이상한 사람들>을 보았다. 진지하고 멀쩡한 생김새로 수상쩍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자기편이 졌을 때도 상대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관객이 없어도 즐겁게 곡을 연주한다. 작은 자, 연약한 자, 자신과 다른 자들을 세심하게 챙기고 배려한다. 이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작고 약한 존재들의 행복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쫌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더 밝아지는 것 같다. 세상에 희망을 주는 ‘쫌 이상한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아내는 ‘쫌 이상한 사람’이었다. 신앙을 갖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지인을 통해 아내를 소개받았다. 첫 직장에서 2년 남짓 함께 근무했지만 각자 다른 데서 근무하고 있었다. 아내를 소개받은 날, 예전에 함께 근무할 때 괜찮아 보였다면 그건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고. 부족한 것을 감추고자 괜찮은 척했던 거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내는 부족한 건 문제가 되지 않고 신앙이 중요하다고 했다. 물론 가난 때문에 실연당한 것, 동생들 뒷바라지해야 하는 문제 등도 다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부족한 것 없는 아내는 나를 받아주고 결혼해 주었다. 방 한 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여 90년 전후 서울 전셋값이 치솟아 변두리로 이사하고 지하 셋방에서 살기도 했다.


25년간 함께 하며 행복이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준 아내는, 2011년 7월 암투병하다 하늘나라로 떠났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아직도 매년 7월 둘째 주 토요일에 아내의 유골이 있는 일산 청아공원에 가족, 친척들이 모인다. 1부 추도예배, 2부 근처 맛집에서 식사, 3부 카페로 옮겨 차를 마시며 아내와 함께했던 추억들을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처음에는 너무 일찍 떠난 아내로 인해 안타까워하고 슬퍼하였지만, 이제는 아내랑 함께했던 추억들로 인해 행복해한다.

(2024. 11. 9.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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