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만 …
2001년 무렵 상담 세미나에 가면 자주 듣던 말이 있었습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당시에 많이 회자되었던 ‘신혼부부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서울 출신 신랑은 ‘국수’라 하고 경상도 출신 신부는 ‘국시’라고, 또 신랑은 국수를 설탕에 비벼 먹고 신부는 간장에 비벼 먹는다며 싸웠습니다. 싸우다 싸우다 신혼부부는 동네 할아버지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다 하였습니다. 밀가루와 밀가리는 어떻게 다른가 묻자, 밀가루는 봉투에 넣고 밀가리는 봉지에 담는다고 합니다. 하나 더 소개하자면 냉면을 먹을 때 계란을 ‘언제’ 먹느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중간에, 마지막에 ….
결론적으로 국수를 설탕에 비벼 먹든, 간장에 비벼 먹든 취향대로 먹으면 됩니다. 냉면에 있는 계란을 먼저 먹든 중간에 먹든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됩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만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고 우기니 갈등이 됩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다다 다른 별 학교”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쿠! 너희들 대체 어디서 왔니?”
“우리요? 다 다른 별에서 왔죠.”
아이들은 돌아가며 자기가 온 별을 말했어요.
‘작아도 별’에서 온 땅꼬마,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는 ‘생각대로 별’에서, 모범생 아이는 ‘반듯반듯 별’에서, 호기심 많은 아이는 ‘물음표 별’에서 왔습니다. 울보쟁이는 ‘눈물나 별’에서, 되고 싶은 게 많은 아이는 ‘물음표 별’에서, 부끄럼쟁이는 ‘숨바꼭질 별’에서 왔습니다. 투덜투덜 화 잘 내는 아이는 ‘짜증나 별’에서, 청개구리 아이는 ‘거꾸로 별’에서, 개구쟁이는 ‘장난처 별’에서, 치우기 싫어하는 아이는 ‘뒤죽박죽 별’에서 왔고, 걱정이 많은 아이는 ‘두근두근 별’에서, 뚱뚱보는 ‘아맛나 별’에서, 선생님은 모든 걸 알고 있는 ‘다알지 별’에서 왔습니다. 그러니 다 다를 수밖에 없지요.
나는 어느 별에서 온 아이와 비슷할까? ‘두근두근 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는 아이였습니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 탓도 있었지만, 가정환경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아래 여동생이 어려서 동네 공동우물에 빠져 죽다가 살아났는데, 그 충격으로 발작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 동생으로 인해 집안 분위기는 늘 어두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동생을 치료하고자 백방으로 힘 썼지만 효과가 없자 늘 술로 사시다가 결국 49세에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청소년 시절 친구들은 (당시 시골에는 TV 없었음) 라디오를 듣고 몸을 흔들며 흥겹게 노래를 따라 부르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래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아픈 동생으로 인해 얘늙은이(?)가 되어서 늘 고뇌하며 살았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또래 친구들처럼 청소년 시기를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상담을 공부하며 내면이 건강하지 못한 “성인 아이”로 성장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되어서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였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오리엔테이션에서 연애하고 열심히 놀라는 선배들의 충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학교를 다닐까 말까 고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청년 문화였던 당구를 배우지 못하고, 돈(담배값)이 없어 담배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장교로 군 복무를 하였지만 동기생들과 어울려 자유롭게 술을 마실 수도 없었습니다. 군대 선배들은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여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아무튼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고자 몸부림쳤지만 삶은 꼬이기만 했습니다. 전역 후 가장 순수하고 보람을 느낄 거라 생각했던 직장(80년대 학교는 지금과는 너무 달랐음)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청소년기에 동생들은 연이어 가출하기도 하였습니다. 혼자서 온갖 세상 근심 걱정을 하며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술을 의지하게 되었고 알코올중독자로 전락하였습니다. 늘 장래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는 ‘두근두근 별’에서 온 자와 같았습니다.
1986년 신앙을 갖게 되었고, 믿는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아내는 많은 것이 나와 달랐습니다. MBTI, 나는 ISTJ, 아내는 ENFP, 성격만 다른 것이 아니라 아내는 서울토박이, 나는 시골출신, 전공도 아내는 국어, 나는 수학이었습니다. 결혼할 때 사람들이 우리 부부를 부러워하였습니다. 국어 전공이니 주제 파악을 잘하고 수학 전공이니 분수를 알 것이라며. 우리 부부는 주제 파악하고 분수를 알며 살고자 나름 노력하였습니다.
아무튼 달라도 너무 다른 아내랑 살면서 많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음료수, 아이스크림을 저는 꼭 먹어보았던 것만 샀고, 아내는 새로 출시된 것을 사왔습니다. 여행을 가게 되면 저는 교통편, 경비, 시간 스케줄 등 철저하게 준비를 하였지만, 아내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배낭에 겨우 자신의 옷가지 몇 개 챙겨 나왔습니다. 여행지에 가서도 아내는 마음에 들면 계속 그곳에 머물렀고, 아니면 곧바로 옮기자고 하였습니다. 계획을 철저히 세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저도 계획을 대충 세웠습니다. 그러니 스트레스도 줄고 좋았습니다.
아내는 암투병하다 201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다른 아내랑 25년을 살면서 제가 많이 변했습니다. 내 고집, 내 주장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변화입니다. 물론 아내도 제 입장을 많이 고려해 주었습니다.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을 바꾸고자 하기보다 자신부터 변하고 상대를 배려한다면, 서로 성장하고 성숙하여 더 멋진 가정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느냐에 따라, 또 성격에 따라 기질적으로 다르게 행동하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니어 세대들이 자신의 경험과 확신에 갇혀 자신도 남도 힘들게 하기 쉽습니다. 60세 이상만 참석하는 우리 ‘인생나눔교실’에서 진솔한 삶을 나누고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게 되면 갈등(스트레스)은 줄어들고 삶의 질은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의도로 우리 (인생나눔교실) 프로그램이 준비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2025.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