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용기낼 수 있는가?
용기를 내서 도전했던 적이 있었던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었기에 그저 환경에 순응해 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뭔가 해보고자 마음 먹었던 적이 있었다. 중학생 때 심훈의 <상록수>를 읽고 감동을 받아, 주인공처럼 새마을운동 지도자가 되어 시골 사람들을 계몽하고 낙후된 농촌을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꿈을 꾸었다. 당시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던 때라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못 먹고 너무 심한 노동을 하다가 건강에 문제가 생겨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새마을운동 지도자가 되려던 꿈을 이루지 못했다.
20-30대 때는 용기 내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자 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참된 용기였을까 싶다. 20대 중반 초급장교로 군복무하면서 상급장교가 계급과 폭력으로 지휘할 때 (당시에는 당연한 일) 동기생들은 그저 상급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병사들에게 분풀이하거나 술을 마시고 동기들에게 억울함을 토로하였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상급자와 치고 받고 싸울 수는 없었지만, 피하거나 상급자의 팔을 붙잡고 말로 싸웠다. 이런 식으로 지휘하면 실제 전쟁시에 어떻게 당신을 살리기 위해 내 몸을 희생하겠느냐, 오히려 총으로 당신을 쏠 수도 있다며 대들었다.
또 전역 후 직장에 근무할 때는 관리자가 신임 특히 연약한 여직원의 작은 실수를 너무 심하게 책망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관리자를 찾아가 주의를 줄 수 있지만 그렇게 심하게 나무랄 수 있느냐,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라며 격려해 줄 수는 없느냐, 경력이 많은 자들은 완벽하냐,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으냐며 따졌다.
이런 일들로 인해 군대나 직장에서 나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나중에 신앙을 갖고 보니, 내가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를 드러내고자 객기를 부린 것이었다. 신앙을 가진 후에는 사람들 앞에서 관리자를 망신 주거나,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개인적으로 조용히 찾아가 상대방의 체면도 세워주고 나의 입장을 조근조근 말하며 설득하였다. 그러자 대인관계도 많이 원만해졌다.
하지만 신앙을 갖고 작은 교통사고를 냈는데, 처리 과정에서 용기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되었다. 벌써 10여 년이 지난 일이다. 해질 무렵 귀가하던 길(이면 도로)에서 사고랄 것도 없는 사고가 있었다. 좌회전하려다 보니까 사각지대에 오토바이가 서 있었다. 차를 멈췄는데, 오토바이에 탄 사람이 넘어지는 것이었다.
차량 밖으로 나가서 왜 넘어졌느냐 물으니 충격이 아니라 다리가 꼬여서 넘어졌다고 하였다. 오토바이는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뒤에서 빵빵거려 내 차를 뒤로 빼자 오토바이가 넘어졌다. 오토바이를 거치대로 세우지 않고 내 차에 기대 서 있었던 거였다. 아무튼 경미한 사고여서 보험사를 불러 사진들을 찍고 사고처리가 끝난 줄 알았다.
한참 후에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다. 인사사고는 100만 원에 처리했다고 하였다. 다리가 꼬여서 넘어진 것이지만 아프다고 병원에 누워있으면 어쩔 수 없으니 합의해 달란다. 그런데 대물사고는 한 달이 지나도 처리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보험사에 왜 오토바이는 고치지 않느냐 물으니 내버려 두란다. 차량은 렌트 비용이나 교통비를 지급해야 하지만 오토바이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몇 달이 지나서 처리하든 상관이 없단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사고 현장 주위에 방범용 CCTV 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한 달 후에는 자료가 자동 삭제된단다. 의도적으로 CCTV 자료가 삭제된 후에 사고처리를 한 것이었다.
몇 달 후에 오토바이 처리 비용이라며 거의 새 오토바이값을 요구하였다. 겉으로 봐도 고물 오토바이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으니 출고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오토바이란다. 사고 당시 찍은 사진과 교체한 부품들을 일일이 찍은 사진 파일 30장 이상을 받았기에 증거가 분명하여 그렇게 합의해 줄 수 없다고 버텼다.
오토바이 등록증을 보내달라고 하였더니 정말로 등록날짜가 사고일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나는 위조한 등록증이라고 확신하였다. 아무리 보험처리지만 터무니 없는 비용에 합의해 줄 수 없다며 적정가격으로 처리하라고 큰소리쳤다. 그리고 경찰서 민원실(교통사고처리)로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사진들과 오토바이 등록증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등록증이 위조한 것이 아니란다. 엔진 번호가 맞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고물 오토바이가 등록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새 오토바이냐고 따졌더니, 오토바이 등록은 구청에서 한다며 구청에 가서 따지란다. 어이가 없었다. 선진국이라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이렇게 허점이 많다는 건가 정말 실망스러웠다. 나중에 결국 수리 비용을 조금 낮추기는 했지만 터무니 없는 수리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내가 끝까지 정의 편에 서서 싸우지 못한 이유 아니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피해 오토바이는 배달용이었고 피해자도 알바 청년이었다. 사고 처리하면서 서로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였다. 내 핸드폰 카톡에 가족 사진과 나의 이력이 모두 담겨있었다. 피해자가 마음먹은 대로 보상을 받지 못해 나를 해코자 하면 나의 신상을 이미 다 알았으므로, 딸들에게 얼마든지 무슨 짓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끝까지 정의 편에 설 용기가 없었다. 이후에 내 핸드폰에서 가족사진 등을 다 지워버렸다.
(2025.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