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후회하는 삶
1998년 1월,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위해 수술을 받았다. “생각보다 크네.” “조금 더 찢어야겠네.” 부분 마취하고 의사들이 수술하면서 나누는 대화였다. 항생제에도 반응이 없었으니, 내 짧은 의학 지식으로는 암이 분명하다고 여겨졌다.
처음엔 쇄골 아래 움푹 들어간 곳에서 작은 혹이 만져졌다. 아는 의사는 피곤해서 림프샘이 부은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혹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커졌다. 항생제를 처방받아 복용하였지만 효과가 없어 결국 조직검사에 이르렀다.
‘암이라면….’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었다. 말기 암 환자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과연 평정심과 존엄을 지킬 수 있을까, 그것이 두려웠다. 당시 주위에 암으로 투병하는 이들이 있었다. 암 말기에는 모르핀 주사를 맞아도 고통이 잦아들지 않았다. 호스피스 세미나에서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디는지”를 물어본 적도 있었으나, 속 시원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조직검사하고 일주일 후에 검사 결과가 나왔다. 암이 아닌 림프샘 결핵이란다. 치료 가능하다는 사실에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 당시 13년 전, 삶이 너무 힘들어 스스로 생을 정리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동생들은 연이어 가출하고 직장은 구조적 부조리로 몸살을 앓고, 사귀던 사람은 떠나가고, 뜻하던 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대학생들 수련회에 참석하고 희망을 보게 되었다. 가출에서 돌아온 동생을 데리고 5박 6일 금식기도원에 갔었다. 그런데 동생은 3일 후 집에 가 버리고, 마지막 날까지 나는 아무런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집회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거짓말 같은 일을 직접 경험하였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던 알코올중독, 불면증, 두통에서 해방되었다.
나의 강한 의지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술을 끊을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아니었다. 일기를 쓰고 수없이 결심하며 술을 끊고자 노력하였지만 실패할 뿐이었다. 더 힘든 것은 불면증이었다. 거의 일 년을 불면증으로 고생하였다.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해 정신분열이 생길 정도였다. 버스를 타고 달리는 차에서 밖을 내다볼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있다가 정차하면 어디쯤 왔는지 눈을 뜨고 확인하였다. 또 힘든 것은 두통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신앙을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순간 그토록 나를 힘들게 하던 것들로부터 해방되었다. 술을 먹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불면증도 나았다. 머리를 대고 누우면 곧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두통도 깨끗이 사라져 맑은 정신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마음에 임한 평안과 기쁨으로 정말 하루하루 살맛이 났다.
이후 내가 경험한 신앙을 전하고자 정말 바쁘게 살았다. 새벽에 집을 나가면 매일 밤늦게야 돌아오곤 하였다. 젊었기에 건강만큼은 자신하여 밥 먹는 것을 소홀히 하였다. 진학반을 맡고 1년 동안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하다가 아침 금식은 습관이 되었다. 일주일에 이틀은 점심도 금식하였다. 직장에서 교사 모임, 학생 모임을 준비하고 인도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퇴근하면 곧바로 각종 모임에 참석하였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올 때는 차량정체가 심해 밤 10시가 넘곤 하였다. 어느 날은 잠자리에 누워서야 그날 한 끼도 먹지 않은 것을 알고, 라면 하나 끓여 먹고 잠들기도 하였다. 웬일인지 나는 온종일 굶어도 배가 고픈 줄 몰랐다. 결국, 영양실조로 림프샘 결핵에 걸리게 되었다.
치료는 가능했지만, 1년 넘게 약을 먹으며 몸과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때 깨달았다. “너무 열심히 살지 말자.” “아무리 바빠도 꼭 끼니는 챙겨 먹자.”
“삶을 소진하며 사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덤으로 주어진 인생 앞에서 나는 스스로 물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후회를 덜 하게 될까?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10여 년 전 우연히 독서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50대에서 80대까지, 초등학교 졸업에서 대학 졸업까지, 단순한 불면증에서 심한 우울증을 앓는 사람까지 다양한 분들이 모였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나 또한 여러 고통을 겪어보았기에, 그저 함께 고단한 삶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매주 얼굴을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삶을 이야기했다. 처음엔 서너 명, 많아야 열 명 남짓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가운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불면증이 사라지고, 깊은 우울증에서 벗어나 몇 년씩 복용하던 우울증 약을 끊는 분도 있었다. 지금도 모임은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는 가족보다 더 끈끈한 관계가 되었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도 살고, 남도 살리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외로운 사람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길은 열린다. 꼭 찾아가지 않더라도 관심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꾸준히 연락하며 소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자랑하지 않고 지적질하지 말고 잘 듣고 적극 공감하는 것 ….
(2025.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