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하는 일

by 농부사랑

즐겁게 하는 일


이번주 인생나눔교실 글쓰기 과제는 한 주 “어떻게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는지” 쓰는 것이다. 뭘 즐겁게 하였던가 한 주를 돌아보니 즐겁게 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월요일은 자전거 타는 동갑네기 네 명이 모처럼 난지도 노을공원에 갔었다. 언덕길을 오르다 한 친구가 바닥에 누웠다. 몇 년간 함께 전국을 라이딩하며 그랜드슬램 인증서도 받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당 쇼크가 온 것이란다.


화요일은 <인생나눔교실> 끝나고 곧바로 고속터미널로 달려가 밤 11시 다 되어서 시골집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마당에 풀약을 하고 진도 (먼 친척) 누님께 1박2일 다녀왔다. 수요일 오후에 의료복지 센터에서 치매 진단을 위해 면담을 하자 했는데, 쉽지 않았다. 누님은 자신이 치매 초기라서 청소도 식사도 다 할 수 있단다. 밤에 함께 있어 보니 5분 전 일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할 상태이지만 본인이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시니 난감했다.


진도에서 둘째날 오전에 누님의 친오빠(88세)를 찾아가 그 동안 있었던 상황을 설명하였더니, 혼자 둘 수 없으니 강제로라도 시설에 보내야겠단다. 주위에 누님을 챙기시는 두 분이 계시는데, 한 분은 같이 성당에 다니는 분이고 다른 한 분은 노인합창단에서 만난 동생이다. 그분들과 상의한 결과 지금 상황에서 주간보호센터(노인유치원?)가 최선이란다. 일단 요양 5등급을 받아야 해서, 병원에서 의사 소견서를 받아 공단에 제출하고 왔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누님 일을 상의해 처리하고 고향 집에 오니까 목요일 오후 6시다. 전날 마당에 풀약을 하고 갔지만 (시골 친구에게 들으니) 몇 시간 후에 소나기가 쏟아져 효과가 없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마당에 풀약을 하고 씻고 빨래하고 늦게 저녁을 먹었다. 글쓰기 숙제를 해야 하는데, 피곤이 몰려오고 마음도 내키지 않아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보통 금요일에 서울로 출발해야 토요일 아침 남성소그룹에 참석할 수 있는데, 미리 불참을 통보하였다. 그 외에도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모임이 토요일에 2개나 더 겹쳐 있었다. 남선교협의회 주관 연합기도회와 ROTC 동문 체육대회, 둘 다 참석이 어렵다고 미리 알렸다. 금요일 저녁에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나 함께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치매 누님 문제로 마음이 편치 않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한 주를 돌아보며 내가 경험한 사건들을 어떻게 해석하면 우울한 마음에서 회복될 수 있을까? 분주함이 문제일까? 할 일이 많아서 몸도 마음도 피곤하지만 그래도 할 일이 없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빈둥거리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하루 날잡아 100-150여 킬로미터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도, 진도까지 운전해서 다녀오는 것도 아직 건강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건강해서 감사했다.


또 격주로 시골에 다녀오는데, 120여 년이나 된 허름한 집이지만 고향집이 있어 누구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힐링여행(?)을 할 수 있어 좋다. 몇 안 되지만 고향 친구들을 만나 고향 소식도 듣고 허심탄회하게 살아가는 삶을 나눈다. 한 친구는 10여 년 전에 귀농해서 동네 이장으로 어르신들을 섬기며 보람을 느낀단다. 친구는 요즘 오전에만 일하고 오후에는 부부가 파크볼을 치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또 다른 친구는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데, 요즘 차는 고장도 거의 없고 도로여건이 좋아져서 사고도 별로 없단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원룸을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은 40개나 된다고 하였다. 친구는 지역 예술인 모임에 참석해서 대표를 맡아 가수로 활동 중이란다. 사업장 한쪽에 노래방 시설을 해놓고 이번 장날에 있을 버스킹을 준비하느라 저녁에 2시간씩 노래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나도 서울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인생나눔교실>에 참석하고 있다고 하였다. 특히 함께하는 80대 후반의 인생 선배님 두 분이 계시는데, 그 연세에도 한 분은 시(詩)를 줄줄 외우시고, 다른 한 분은 장편소설 <토지>를 13권째 읽고 계신단다. 나도 멘토(강사)님의 도움으로 8월에 브런치 작가로 등단해서 글쓰기 걸음마를 시작하였다. 글쓰기가 치매 예방과 살아온 삶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자랑(?)하였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공자의 《논어》에 자주 연결되어 전해지지만, 사실 원문에 그대로 나오지는 않고, 비슷한 구절이 있다. “지혜롭게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그러니까 이 표현은 고전을 현대적으로 풀어 변형한 것이다.


나는 즐겁게 뭘 하고 있는가? 우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 젊었을 때(신앙을 갖기 전)에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만나는 사람들의 장점을 보기보다 단점이 먼저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단하고 정죄하기를 잘 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인지 신앙의 연륜이 쌓여서인지 언젠가부터는 사람들의 단점보다 장점이 더 잘 보인다. 장점을 인정하고 격려해주면 상대방도 좋아한다. 단점이 보이면 그를 생각하며 중보기도하게 된다.


모임에 나갈 때 내가 준비하는 것은 소책자이다. 평소에 괜찮아 보이는 글들을 모아 두었다가 모임의 성격에 맞게 편집한다. 모임에서 소책자를 다 읽지는 않는다. 집에 가서 천천히 읽어보고 후배 세대에게 덕담할 기회가 있을 때 참고하라고 한다. 모임에서는 한 꼭지 글만 함께 읽고 주로 내가 나눔을 인도한다. 그래서 친구들이 모임을 하기 전에 나에게 먼저 언제 시간이 되는지 묻고 날짜를 잡기도 한다.

(2025.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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