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여!
누가복음 11장 1~13절 (1/30 묵상)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기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주기도)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를 배우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사도행전의 역사를 썼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기도를 배우고 기도에 힘쓸 때 제자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를 배우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서 능력 있는 제자의 삶을 살아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2)라고 기도하십니다. 첫 번째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우리가 문제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어떤 태도로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는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벗 됨’을 인하여는 주지 아니할지라도 ‘간청함’을 인하여 들어준다고(8) 하였는데 묵상과 설교(성서유니온 2025)를 찾아보았더니,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하 부분은 『묵상과 설교』에서 발췌하여 편집함)
【‘간청함’은 ‘후안무치, 뻔뻔함, 수치심’이란 뜻도 있습니다. ‘주인공이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그의 명예를 위해서’ 그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마을이 여행객에게 환대를 베푸는 것은 그 마을의 ‘명예를 위해서’ 입니다. 만일 이웃이 주인공의 요구를 거절했다면, 그는 친구의 명예뿐 아니라 마을의 명예를 더럽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이웃 친구에게 굽신거리며 ‘사정사정하지’ 않고 ‘당당하게’ ‘마땅함’으로 구합니다. 이웃 친구가 당연히 떡을 내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웃은 오히려 친구와 마을을 명예롭게 함으로 자신도 명예로워질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간청함’을 ‘끈질기게’로 이해하면 그다음에 이어지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역시 ‘지성이면 감천’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그다음에 이어지는 아들의 요구에 응답하시는 아버지의 ‘신실하심’입니다.
제자들은 ‘아버지여’(2) 하며 예수님처럼 ‘아들의 지위로’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버지의 지위로 제자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기도는 아들이 가진 특권이며 명예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명예, 더욱이 아버지 됨의 명예를 위해서 반드시 아들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따라서 본문의 초점은 기도하는 자의 ‘열심과 치성’에 있지 않고,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반드시 자녀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자녀 된 제자들은 모든 필요를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제자들이 구한 일상의 것들은 아버지 하나님께는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최고의 것은 아들(예수님)이며 당신의 영(성령)입니다. 아들은 이미 주셨으니, 하나님 나라 사역에 부름받은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충만)입니다.】
우리들은 신앙생활에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압니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 기도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기도를 하든 기도를 하지 않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신다’고 믿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런데 그것이 진실한 믿음일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시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갖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것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은 다릅니다. 자주 만나서 아버지의 뜻을 묻고 자녀로서 구할 때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더욱 친밀함을 유지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중국여행에서 만난 어떤 부부 이야기입니다. 대기업에 다녔고 부동산에 투자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강남의 펜트하우스에 산다고 하였습니다. 아들 딸을 모두 유학 보내고 결혼도 시켰답니다. 자녀들에게 좋은 아파트도 사주고 마냥 퍼 주어도 고마워하지 않아서 더이상 주지 않고 매달 해외여행을 다니기로 하였답니다. 우리도 기도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하지 않게 됩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죄입니다(롬 1:21).
1978년 아버지께서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는데 저는 육신의 아버지와 친밀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께 받은 상처가 많았습니다. 오래 전 아버지학교에서 또 2년 전 인생나눔교실(수필쓰기)에서 화해를 위한 글쓰기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아버지께 화해의 편지를 썼는데, 글을 쓰면서 아버지 ‘때문에’ 힘들었던 상처들을 다 적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까 아버지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육신의 아버지와 화해하자 하나님 아버지와도 한결 친밀해질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여’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닫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을 주셔서(성령의 임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자격없는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시고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 자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자녀인 우리의 기도를 기쁨으로 들어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26.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