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by 농부사랑

하나님 앞에서

누가복음 18장 9~17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세리를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바리새인은 일주일에 이틀씩 그러니까 52*2=104, 일 년에 100일 이상을 금식기도한 것입니다. 그는 소득의 십일조도 꼬박꼬박 드렸습니다. 바리새인은 죄인으로 낙인찍힌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을 위선의 아이콘으로 알고 있기에 놀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편견을 내려놓고 보면 바리새인의 삶은 자타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세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바리새인과 대조적으로 누구나 그가 죄인임을 압니다. 그래서 세리는 앞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멀찍이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그는 가슴을 치며 죄인인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기도를 들으십니까?


의롭다고 하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죄인인 세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 서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의를 자랑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지 않으면 자신의 죄를 볼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겉모습을 보지 않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많이 기도하고 거액을 헌금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싫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높이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 낮추는 자를 받으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데려오는 자들을 꾸짖는 제자들을 보시고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해야 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부모를 의존하듯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요즘 ‘나태주의 행복수업’(김지수 인터뷰) 책을 읽고 있는데, 80세가 넘은 나태주 시인의 모습이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합니다.


저는 처음 신앙생활할 때는 예수님께 자주 책망 듣는 바리새인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성경을 많이 연구하면서 하나님을 모르고, 사람들 앞에서 외식할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신앙 연륜이 쌓이면서 바리새인이 너무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나 자신이 바로 바리새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순간순간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 살지 않고 여전히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는 나를 보고 있습니다.


작년 8월 브런치 작가로 글쓰기 걸음마를 시작해서 부족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내가 쓴 묵상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좋아요’ 몇 명이 올렸나 확인하곤 합니다. 며칠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우울하고, ‘좋아요’ 숫자가 올라가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여전히 목을 빼고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고 있는 내 모습을 봅니다.


진도에 먼 친척이지만 혼자 사시는 치매 걸린 누님이 계십니다. 아내가 투병할 때 그곳에 머문 적이 있어 빚진 마음으로 시골에 갈 때마다 진도에 들러 1박 2일 누님을 돌봐드리고 옵니다. 올겨울에는 장작을 친구에게 부탁해서 몇 번이나 트렁크에 가득 실어 가져가고, 김치 등 먹을 것을 가져다 드렸지만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누님을 통해 사람 앞에서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살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옥한흠 목사님과 하용조 목사님을 좋아하는데, 두 분은 다 너무 일찍 떠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살아 생전에도 투병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셔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연약했기에 교만하지 않으시고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셨을 것 같습니다. 육신의 가시로 인해 받은 은혜에 더욱 감사하며 …. 나 또한 연약함, 사람들 앞에 내세울 것 없음에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2026.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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