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의 메시지

by 농부사랑

경고의 메시지


누가복음 19장 41~48절

본문에서 예상치 못한 예수님의 반응 2가지를 보게 됩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우시는 것(누가복음에만 기록됨)이고, 두 번째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는 장면입니다. 본문 바로 이전 상황을 보면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환영합니다.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38).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예수께서 로마의 압제를 물리치고 예루살렘에 새로운 메시아 왕국을 세우실 거라는 기대로 잔뜩 흥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진정한 평화를 누리길 원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예수님의 눈에는 회개치 않는 예루살렘 성의 파멸과 재난이 예견될 뿐이었습니다. AD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증언에 의하면 먹을 것이 없어 아이를 잡아 먹을 정도로 처참했다고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는 장면입니다. 성전 뜰에서 제사 드릴 짐승을 사고팔고 하는 일은 늘 있어왔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다 엎고 내쫓으십니다. 예수님은 거룩해 보이는 지도자들의 겉모습과 달리 내면의 부패상을 보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성전 안에서 장사하도록 허가해 주며 이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을 찾는 이들에게 영적 성숙과 예배를 가르치기보다 제사하러 오는 자들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제사가 원활하게 잘 드려지도록 돕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뒤에서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불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탐욕과 위선을 보시고 ‘성전을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이번 주에 시골에 갔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밤에 읍에 나가서 저녁거리를 사오다가 차가 도로 아래 밭으로 빠졌습니다. 차 유리에 성애가 끼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비가 오고 있어 창문을 열 수 없었고 또 집에도 거의 다 와 가기에 에어컨을 켜지 않고 운행하였습니다. 잘 아는 길이어서 갈림길에서 좌회전으로 핸들을 꺾었는데 차가 그만 도로를 벗어났습니다.


순간 차가 뒤집혀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차가 뒤집히지는 않아서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주위를 살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미터 앞에 깊게 푹 파인 배수로가 있어 그곳에 빠졌더라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보험사에 연락해서 긴급출동 써비스를 받고 가까스로 차를 꺼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죽을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오라’ 하시면 언제든지 이 땅을 떠날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입니다.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라고 경고하신 것일까? 부족한 종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분들의 중보기도를 들어주신 것일까? 아직 할 일이 있어서 기회를 주신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틈새사역(소책자, 소그룹, 큐티사역)은 내가 아니라도 누가 하면 되니까, 경고를 주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언제 떠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누구도 떠나게 됩니다. 그때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옷깃을 여미고 깨어 기도하며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헛된 자부심을 버리고, 소그룹 한 팀, 소책자 하나에도 진심을 드려 섬기고, 가르치기보다 나 자신부터 행하는 자 되길 기도합니다. (2026.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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