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을 읽고

by 농부사랑

<긴긴밤>을 읽고


<긴긴밤>은 코뿔소 노든과 이름도 없는 펭귄의 이야기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삶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노든이 코끼리 고아원을 떠날 때 코끼리들이 긴 코를 흔들며 말했다.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 그래.”(p. 16)


코끼리들은 자신들과 너무도 다른 코뿔소가 외롭지 않도록, 아니 코끼리처럼 살아가도록 부족한 부분을 서로서로 채워 주었다. 등치로 보나 힘으로 보나 월등하게 우위에 있었지만 그들은 코뿔소를 무시하지 않았고, 코뿔소가 외롭거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코뿔소가 자신은 코끼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코끼리들과 어울려 살아갈까 바깥세상으로 나갈까 망설일 때가 있었다. 그때 코끼리들은 코뿔소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바깥세상으로 나가도록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늙은 코뿔소 노든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받은 사랑을 어린 펭귄에게 쏟아붓는다. 어린 펭귄을 넓은 바다로 떠나보내며 코뿔소 노든은 말한다. “너는 이제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p. 114) 어린 펭귄이 코뿔소와 함께 잘 지내왔지만 이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넓은 바다, 펭귄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살라고 권한다. 노든은 바다를 찾아 끝없이 험한 길을 어린 펭귄과 함께 걷고 또 걸으며 ‘긴긴밤’을 함께 있어 주었다.


결론적으로 <긴긴밤>의 주인공 코뿔소 노든과 어린 펭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맞닿아 있어 가슴 따뜻한 감동을 받았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좌절하며,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예상치 못한 이웃들의 사랑과 도움으로 노든과 펭귄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갔듯이, 우리 역시 그런 삶을 살아 오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는 선배세대로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자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아름답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삶을 돌아보니, 짧게만 느껴졌던 ‘깊은 밤’도 있었고, 길게만 느껴졌던 ‘긴긴밤’도 있었다. 짧지 않은 생을 살아왔기에 크고 작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예기치 않은 도움의 손길들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느날 밤을 기억한다. 아버지께서 평소와 달리 아주 다정다감하게 ‘누가 괴롭히는지?’ 물으셨다. 동네 형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면도칼로 얼굴을 그어버리겠다는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께서 꼬빡 밤을 새며 누구인지 물으셨기에 잠 못 자는 ‘긴긴밤’이 힘들어 결국 동네 형의 이름을 밝혔다. 그 형을 따라 산으로 바다로 읍내로 쏘다니느라 학교에 제대로 가지 못해 3학년이 되었지만 한글도 제대로 깨치지 못했다.


아무튼 괴롭히던 동네 형 문제가 해결된 후 학교에 정상적으로 등교하며 겨우 한글을 깨치고 다음 학년에 진급했다. 그런데 4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집중적으로 나에게 발표를 시키고 모르면 매를 드셨다. 선생님께서 나만 미워하신다고 생각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선생님께서 나를 편애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의 어머님이 나와 성씨가 같아서(종씨) 어찌든지 나를 공부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아무튼 선생님께 매를 맞지 않으려고 잠을 줄이고 거의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 덕분에 공부하는 재미를 조금 알게 되었고, 공부를 포기한 중학교 1학년 2학기까지 열심히 공부하였는데, 그때의 밤은 짧게만 느껴지는 ‘깊은 밤’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와서 길음동 산동네에서 살았는데, 새벽에 신문을 배달하며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미아리고개, 삼선교, 혜화동로터리, 비원을 지나서, 학원가가 몰려있던 종로, 광화문까지 걸어다녔다(왕복 20km 내외). 학원비가 없어 매달 15일이 지나서 하는 공개강의를 주로 들었다. 새벽 신문배달부터 종로 광화문까지 다니느라 매일 5시간 이상씩 걸었기에 몸이 피곤하여 ‘깊은 밤’이었다.


늘 피곤에 지쳐 살았기에 밤은 짧게만 느꼈는데, 30살에 거의 일년간 불면증으로 고생했던 적이 있다. 삶의 모든 것이 꼬이고 뒤틀렸다.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1978년 겨울에 돌아가심) 동생들이 연이어 가출하고 직장은 부조리로 엉망진창이고 자매에게 실연당하자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다. 고통스런 삶에서 벗어나고자 마냥 술을 마시다 알코올중독자가 되었다. 뉴스를 보면 온 세상이 악(惡)한 쪽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홀로 끌어 안고 근심에 쌓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당시 불면의 밤은 정말 ‘긴긴밤’이었다.


잠을 자지 못하니까 몸은 마냥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버스를 타고 밖을 내다보면 어지러워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차가 움직이면 눈을 감고 차가 멈추면 눈을 뜨고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였다. 자신과 세상에 완전히 절망하고 죽지 못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을 때, 주위 크리스천들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밝게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양 이 꼴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평안히 노래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였지만 제정신이 있는 사람들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86년 8월, 신앙을 갖게 되었다. 내 의지로 믿은 것이 아니라 믿어지게 되었다. 내 생각과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받아들이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알코올중독에서 해방되었다. 술을 마실까 말까 갈등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토록 고통스럽던 불면증과 두통이 사라졌다. 장래에 대한 두려움, 근심 걱정에서도 자유로워졌다. 언제 어디서든 곧바로 곯아 떨어지는 ‘깊은 밤’이었기에 정말 행복했다. 살맛이 났다.


신앙을 갖고 아내를 소개받아 1986년 말에 결혼하였다. 딸들을 낳고 아내랑 딸들과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40대 초반에 죽음에 맞닥뜨렸다. 어깨 쇠골 아래 움푹 들어간 곳에 뭔가 잡히는 것이 있었다. 주위에 아는 의사들이 있어(개인병원 운영) 상담했더니 피곤해서 임파선이 부은 거라며 약을 주었다. (당시는 의약분업이 되지 않았음) 아마 항생제를 준 것 같다. 그런데 그 약들을 다 먹은 후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다. 조직검사를 받아보자며 대학병원에 의뢰서를 써 주었다. 일부만 떼어내어 조직검사를 하는 줄 알았는데, 덩어리를 통째로 떼어내야 한단다.


부분 마취를 하고 절제 수술을 하면서 의사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어, 의외로 크네. 더 찢어야겠네. … ”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 생각했다. ‘항생제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암이겠지’ 당시 주위에 암투병하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고, 특히 일 년 투병하다 떠난 고등학생도 있었기에 내 짧은 의학 상식으로 암이라고 단정 지었다. 조직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오는데, 암 투병,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밤에 평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 나 자신이 생각해도 놀라웠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앙의 힘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다행히 암은 아니고 임파선결핵이었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영양실조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2011년 암투병하던 아내가 떠나가고 잠 못 이루는 ‘긴긴밤’이 계속되었다. 자다가 일어나 천장만 바라보며 혼자서 어떻게 살아갈까 답을 찾지 못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행히 그때 교회에서 주어진 역할이 소그룹 사역이었다. 일주일에도 3~4개 소그룹에 참석해서 아내의 빈자리로 인해 힘들다며 울먹이곤 하였다. 그런데 몇 개월 후에 나의 내면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소그룹원들의 적극적인 공감과 진심어린 기도에 힘입어 내면의 상처가 그토록 빨리 치유되고 회복되어 갔던 것이다.


소그룹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험적으로 깨달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그룹을 통한 치유와 회복 사역은 나의 사명이 되었다. 신앙서적을 활용한 소그룹은 매주 일정 부분의 책을 3번 이상 읽고(정독, 精讀) 와서 자신의 삶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소그룹에서 불면증이 치유되는 것은 여러 번 경험하였고, 알코올중독, 우울증까지도 치유되고 회복되는 일이 있었다. 소그룹에서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되어 자신의 몫을 감당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얼마나 뿌뜻한지 모른다.

(2024.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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