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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우 Nov 29. 2023

담배

1년 간의 담배에 관한 여정

 난 담배를 피운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첫 담배는 입시가 한창 진행 중이던 친구들과 같이 식사 후 한 편의점에 들러 생전 너바나란 밴드의 보컬이었던 커트 코베인이 피웠던 담배인 카멜을 샀다. 카멜 필터스. 말 그대로 낙타가 빨간색으로 그러져 있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독한 타르 8밀리그램이 담겨 있었다. 난 타르 수치가 그때 무엇이었는 지도 몰랐으니깐 홧김에 샀고 피웠다. 그리고 집에서 드러누웠다. 무기력한 채로 내 코에 남은 지독한 담배 냄새를 느끼면서 다시는 안 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내 뇌는 니코틴의 맛을 잊지 못했다.

 곧 난 친구의 권유로 에쎄 히말라야를 사서 피웠다. 타르 1밀리그램에 냄새도 별로 안 배겨 입문자용으로 제격이었다. 그 이후로 난 보헴 카리브란 담배에 꽂히게 되어 그것만 줄창 피워댔다. 한 2월 달부터 4월 달이었나. 그간 재수생활을 하느라 공부하다 지루해지면 담배를 꽂고 독서실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는 게 습관이 되었다. 알싸한 망고의 맛. 그 후엔 보햄 시리즈만 계속 찾아 피워댔다. 리브레, no.6, 미니 no.1, 쿠바나 샷, 더블 등등... 보햄이 내게 가장 잘 맞는 담배였다.

 그러다 7월, 부모님께 들키고 말았다. 냄새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내게 그다지 뭐라 하지 않았지만 계속 끊어라고 눈치를 주셨다. 난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연신 피워댔다. 장난 삼아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현대인의 3대 영양소가 뭔지 알아?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이야." 지극히 한심한 말이었지만 그때는 재밌어서 낄낄 웃었다. 내 주변엔 흡연자들이 많았고 나도 성인이어서 담배를 피는 게 그닥 양심에 찔리는 일은 아니었으니깐.

 난 그런 아이디어가 있었다. 왜 위스키 바는 있는데 담배 바는 없냐고. 하나하나 4,500원씩 소비해 가면서 20개의 담배를 내 몸속에 집어넣는 것보다 한 개비씩 맡다가 담배를 소비하는 게 더 낮지 않겠냐라는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었는 데, 그게 곧 바라는 발상과 이어졌다. 로봇 웨이터가 담배를 가져다주고 그걸 피우고 맘에 들면 그걸 통째로 사버리는 것이다. 왠지 해외에 있을 법한 아이디어였고 난 이를 굉장히 비상한 아이디어라 여겼다. 물론 법적으로도 그렇고, 환경적으로 전혀 실행하지 못할 아이디어였지만.


 난 이틀에 한 갑씩 피워댔다. 좀 심하다 싶을 때는 하루에 한 갑 피던 시절도 있었다. 담배란 내 삶을 지탱해 주는 하나의 하얗고 시뻘건 기둥이었다. 내가 우울증에 와서 자살충동에 휘말리던 시절 날 버티게 해 준 건 담배였다. 그래서 난 담배에 대한 애착이 좀 있었다. 동시에 혐오감도 동시에 들었다.


 흡연자들도 피워대다 보면 담배에 질릴 때가 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담배를 찾게 된다. 왜냐면 마땅한 대체제가 없기 때문이다. 맛과 향기, 그리고 니코틴. 수많은 담배가 있고 그것에 매달려 살고 중독된다. 난 이런 중독된 내가 한심하게 여겨졌다. 난 언제나 아랑곳하지 않고 피워댔지만 담배를 끊으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담배를 버린 것들을 총 합하면 가히 열 갑은 될 것이다. 하지만 담배에 중독되 그거에 매달려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는 순간 난 나에게 배신당하는 동시에 니코틴이 주는 희열감에 담배 다시는 안 끊어야지라고 다짐하게 된다. 그 다짐은 다시 깨지고 만다. 또 금연을 바라기에. 그런 순환이 일 년에 수백 번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담배와의 1년 가까이 된 여정을 버리려고 한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분을 주셨다. 담배를 1달 동안 끊으면 용돈을 올려 주겠다고. 다만 그건 내게 충분한 명분은 아니었다. 난 일주일 용돈이 충분했고 그 이상을 바라는 야심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이거는 부가적인 이유로 치워두겠다. 내가 담배와의 여정을 끊으려는 이유는 순전히 맛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담배가 내 삶의 기둥으로 느껴지지 않고 단순히 잎으로만 보인다. 그리고 그 잎의 맛들을 앵간해서는 다 맛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굶을 때 간절히 음식을 먹고 싶을 정도로 욕구가 치솟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내가 한심해지기는 싫다. 담배를 질려하면서 끊으려고 했다가 다시 하는 등의 행동도 이제 질렸다. 그냥 다 질려버렸다. 담배에 관한 모든 것이. 그래서 여정이 끝났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창하게 금연이라고 하기는 싫다. 우리가 짜장면이 맛있지만 질려버려서 안 먹는다고 해서, 혹은 편식을 한다고 해서 금식이라고는 하지는 않지 않는가? 그래서 그냥 담배와 거리가 생겼다고만 말하고 싶다. 거창하게 말하면 오히려 실패하기 마련이다.

 또한 대체제를 찾았는데, 바로 책이다. 난 책을 읽을 때 담배와는 비교 안 될 정도로 도파민이 형성된다. 그걸 청소년 때는 몰랐는데, 현재에 와서 담배를 피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난 앞으로 종이로 말린 잎이 아닌 종이로 말린 글자들을 피울 것이다. 그게 내 작은 다짐이다.

 

 이 다짐이 잘 갈지는 미지수다. 난 지금 이 글을 카페에 와서 쓰고 있는 데, 이 앞 편의점에서 또 카멜을 살지도 모른다. 그래도 브런치에 굳이 이 글을 투고하는 것은 일기장이라기보다는 그저 날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 내 한심한 과거를 청산하려는 - 물론 담배를 피는 일은 한심한 일이 아니지만 금연을 누누이 말하면서 담배를 피는 건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그럴 거면 아예 피우지 말 것이지.- 목적도 있다. 글은 과거를 이어주는 한편 깊은 골짜기를 만들 수도 있다. 이 글이 내게 좋은 영향을 끼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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