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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우 Dec 05. 2023

비트닉으로 살아가기

구르는 돌처럼

앨런 긴즈버그와 잭 케루악

 나는 비트 세대에 빠져있다. 비트 세대가 뭔데? 비트 세대란 1940~50년대를 휩쓸었던 세대로, 잃어버린 세대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그들은 전체주의적인 관습에 저항하면서 과감한 행동을 보였다. 비록 히피 세대처럼 시위나 페스티벌을 열거나 화려한 옷을 입는 등을 지향하지는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 저항적인 태도를 지녔다. 그런 비트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엔 <울부짖음>을 지은 앨런 긴즈버그, <네이키드 런치>의 윌리엄. s. 버로스, 그리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작가인 <길 위에서>를 쓴 잭 케루악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뇌를 열고선 시대를 담습 했다. 그리고 그 시기 미국의 뒤틀린 부분들을 온갖 힘으로 거부했으며 고난과 역경에서 사랑을 찾았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들은 도스토옙스키의 정신적인 후계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아무리 지옥 같아도 그 사랑에서 사랑을 찾는다. 그게 비트라고 생각한다. 

 이런 비트닉(비트 족의 다른 말)들은 그 후세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일단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인 밥 딜런이 시인 앨런 긴즈버그와 같이 콘서트를 다니기도 했으며 그들의 가사 영향을 받아 음유시인적인 가사를 적었다. 또한 펑크의 시조새 격인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가사와 사운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작곡가 겸 작사가를 맡은 루 리드는 비트 세대의 과감한 표현들에게 영향을 받아 그 당시에 충격적인 가사와 음침한 사운드를 냈다. 비록 흥행은 실패했지만 그들의 유산은 현재의 대중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내가 비트 세대란 단어를 알게 된 것도 루 리드 덕분이었다. 

 약 한 달 전, 난 루 리드를 통해 비트 세대에 몰입하게 되어서 한 커뮤니티에 비트 세대가 되려면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하는 가에 대한 글을 올렸었다. 댓글에선 '밥 딜런을 들어라'라고 말했다. 또한 진정한 비트닉이 되려면 잭 케루악과 앨런 긴즈버그를 꼭 읽어야 한다고. 난 그래서 당장 서점에서 <길 위에서>와 <울부짖음>을 샀으며 밥 딜런의 음악을 청취하기 시작했다. 2집부터 6집까지. 난 밥 딜런에 완전 빠져들었다. 그의 무대에서 내뿜는 카리스마와 시적인 가사에 심취했다. 마치 밥 딜런에 빠져들었던 루 리드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읽게 되었다. 길 위에서는 말 그대로 미국의 길 위에서의 생활을 다룬 이야기다. 실제로 케루악이 겪었던 여행들을 바탕으로 글을 쓴 것인데, 그는 일반 타자기에 종이를 끼워 넣는 것이 아닌 긴 두루마리에 3주 동안 미친 듯이 글을 썼다고 한다. 초판은 그 내용이 너무 외설적이고 과격하다는 이유 때문에 많은 수정을 거쳐야 했고(당연히 두루마리에 썼으니 가독성도 개판이었다.) 1951년에 써진 글이 겨우야 1957년에 출판되었다. 수정되기 전의 글은 <코티의 환영>이라는 글로 판매되긴 했으나, 우리나라에선 종합판으로 민음사에서 출판한 길 위에서 밖에 없다. 언젠가 때가 되면 미국에서 그 글을 읽고 싶긴 하다. 아무튼 길 위에서는 내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케루악의 글은 그의 말을 빌리면 마치 천사가 쓴 것 같았고, 황량한 비트의 결말을 내준 듯했다. 어느 해외 문학이 다 그렇다지야 태평양을 건너 내게 찾아온 그의 성서는 마치 내게 길을 알려준 듯했다. 

 그리고 앨런 긴즈버그의 시집, <울부짖음>(Howl)을 읽었을 때는 처음엔 단순히 과격한 내용이라 생각했지만 두 번째로 읽었을 때는 지옥 같은 곳에서 말 그대로 사랑을 울부짖는 긴즈버그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글을 읽는 것이 아니다. 듣는 것이다.

 난 비트 세대를 더욱더 느끼고 싶다. 비트닉 그 자체가 되고 싶다. 찾을 수 없는 것을 계속 찾으며 복싱 선수 허리케인이 밥 딜런에게 물었던 것처럼 "아직도 찾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싶다. 난 계속 찾고 싶다. 그게 허상일지라도. 자유와 비자유 그 사이에서 저항하고 싶다.


 당연히 비트 세대의 그 시대와 우리나라는 그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인생이 아슬아슬함은 언제나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며 우리는 비트 정신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드족처럼 그들의 겉모습만 받는 것이 아닌 -모드족: 영국의 하류층으로, 60년대에 활동했다. 그들은 비트족처럼 비밥을 즐겨 들으면서 그들의 방황하는 겉모습만 받아들였다.- 그들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회도 많이 곪아간다. 떨어지는 출산율, 취직의 난관, n포 세대들. 그럼에도 우린 이런 시대정신에 저항하면서 자신만의 글을(꼭 글이 아니더라도) 찾아야 하고 그걸 들어야 한다 생각한다. 구르는 돌처럼 우린 살아간다. 그러다 집이 없어질 수도 있고 자신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찾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도 찾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이 음악을 써내려 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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