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빚는 시간

생각을 담아내는 힘

by 누리달


최근 원데이 클래스로 도자기 물레질을 다녀왔다. 아이의 체험을 위해 갔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훨씬 그 시간을 더 즐기고 있었다.

다소 정제되지 않은 것들이 내 손을 지나며 달라지는 과정이 좋다. 나는 확실히 손을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얀 흙덩어리를 물레와 두 손으로만 보기 좋게 빚어내는 그 작업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뱅글뱅글 도는 물레 위에 올려진 흙은, 내 손의 힘 조절과 방향성만으로 형태를 갖춰갔다.


문득 ‘생각’을 다루는 부분을 고민하다 도자기 빚던 것이 떠올랐다.

생각도 누군가의 손의 온도를 타는 것 같다.

차갑게 굳어 있을 때는 아무 모양도 없이 그저 덩어리일 뿐이다. 하지만 조금만 따뜻하게 주무르고 빚다 보면, 어느 순간 제법 마음에 드는 무엇이 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건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먹을 저녁 메뉴나 조금 전 팀장님의 지시사항을 생각하며 가볍게 듣는 일이 아니다.

상대의 말을 내 안에 잠시 올려두고 그 생각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열심히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이해해 보려 애쓰고, 때로는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얹어보며 생각을 도자기 흙처럼 다시 주물주물 만져보는 시간.... 내게 진정한 대화란 아마 그런 과정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떤 주제의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 사람과 함께 흙을 빚을 수 있을지부터 가늠해보곤 했다.

나만 아는 그 느낌이 없으면 나는 도자기 흙덩어리처럼 단단한 톤앤매너만을 유지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결국 내 신념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처음 건네받은 찬 흙덩어리를 손으로 천천히 눌러보고 물레 위에 올리면 처음엔 투박한 형태만 드러난다.

여기에 따뜻한 물을 조금씩 덧바르면 흙은 서서히 부드러워지고, 비로소 형태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거친 면은 물 묻은 스펀지로 닦아내기도 하고 너무 두껍거나 얇은 부위는 어루만져 평평하게 만들다 보면 작은 변화들이 쌓여 어느새 하나의 그릇이 된다.





생각도 그렇다.

온 지도 모르게 수도 없이 스쳐 지나간 상념과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 후회로 덮인 고뇌

그 모두 마음 한켠에 놓인 형체 없는 흙덩이 같다.

그렇지만 흙을 꼭 예쁘게 빚어 완벽한 그릇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다만, 수많은 생각으로 빚어낸 그릇에 새로이 찾아오는 어떤 생각 하나라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으면 충분하다.


만약 그 흙을 함께 빚어볼 사람이 있다면 더 좋겠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저렇게는 어때. 서로의 생각을 조금씩 보태며 모양을 공유하다 보면 무형이던 생각은 꼭 손에 잡힐 것 같은 형태가 되어 조금씩 단단해지기도 하고, 나를 올곧게 세우는 힘도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공방에서 빚어온 그릇에는 담고 싶은 것들이 참 많다. 무엇을 담아도 그 의미는 더 또렷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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