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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르셔 꽤 Sep 15. 2020

선생님, 다른 우유도 드셔 보세요.

생기부를 쓰는 교사에게 단축키란.

        

쌤, 알트탭 몰라요? 윈도우디는? 어떻게 알트탭을 몰라요? 얼마나 많이 쓰는 기능인데요?

그럼 컬트롤H는요?      

몰라, 그게 뭔데요?     

찾아바꾸기요, 생기부 수정하려면 찾아바꾸기 해야 되잖아요. 이거 안 쓰고 어떻게 생기부를 수정해. 하나하나 다 바꾸려면 너무 힘들잖아요.      

고생인 줄도 몰랐지. 그냥 원래 그렇게 하는 줄 알았지요.      

그럼 설마 컬트롤S는요? 저장하기예요.     

저장하기는 플로피디스크 가서 눌러야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데?      


급식을 먹을 수가 없어서 잠깐 밖에 나가 식사를 하고 오는 동안 우연히 꺼낸 단축키 이야기에 우리는 서로서로 문화 충격을 받으며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컴퓨터 사용이 어렵지 않다는 스마트한 오선생(이분은 이렇게 부르고 싶다. 귀한 분이니까.)과 적당히 단축키를 사용하고 있는 꽤선생과 그런 게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소문으로 들은 것 같다는 박선생님과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는 송선생님. 오선생은 이런 단축키들을 모르고 어떻게 일을 하냐며 놀랐고, 꽤선생은 뭐 이 정도는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컬트롤S를 모르는 건 사실 조금 놀랍다고 했고, 다른 두 선생님은 이걸 모르는 게 놀라운 사실이라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그 상황이 웃겨서 얼마나 왁자하게 서로 사실확인을 했던지 조금 전에 먹은 밥의 칼로리가 순식간에 소모되는 느낌이었다.      


교무실로 돌아와서 다른 선생님들께 몇 개의 대표적인 단축키 사용여부를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웬걸 모두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 특히 생기부 점검 기간 중이었던 터라 컬트롤H, 컬트롤F2의 존재를 듣고는 거의 도떼기시장이 되었다. 다시 말해봐라, 이리 와서 한번 보여줘봐라, 세상에 이런 게 있느냐, 이걸 어떻게 아느냐 이런 분위기. 그 반응이 재미있어서 또 한참을 웃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고 교무실에 남겨진 박선생님과 꽤선생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또 다시 단축키의 늪에 빠져들었다. 박선생님이 말했다. “쌤, 이런 단축키를 모르는 게 얼마만큼 충격적인지 한 번 비유를 해봐. 그게 어느 정도로 놀랍다는 거야.”

“글쎄요. '컬트롤+A, C, V, X, Z, S'는 그냥 세트 같은 거예요. C랑 V는 쌤도 쓰잖아요? S도 그만큼 흔해서 그냥 놀라워요. 비유할 필요도 없이 그냥 놀랍다?”

“아니, 어느 정도로 놀라운지 비유를 해줘. 어느 정도야?”     

“음, 오늘 오선생의 마음은

‘어머, 쌤 흰우유 말고 다른 우유도 있는 거 몰랐어요?’ 정도?

그리고 저는 ‘선생님, 흰우유, 딸기우유, 초코우유, 바나나우유 드시죠? 그런데 그거 말고 커피우유도 있어요. 커피우유 있는 거 몰라요?’ 정도의 느낌이요.”

“어머, 그래? 그 정도야?”     


결국 그날 저녁, 교직과 동료를 사랑하고, 유달리 스마트하여 답답한 꼬라지를 두고 보지 못 하는 오선생은 당장에 단축키 특훈 자료를 만들어 단톡에 배포했다. 하지만 오선생 큰 기대는 말아요. 우리의 귀여운 동료가 말했잖아요. “알아도 안 쓸 것 같은데요? 그냥 가서 누르면 되잖아, 디스크모양.”이라고.

아, 오늘도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요,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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