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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르셔 꽤 Sep 22. 2020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되는 거예요?

될 수 있기는 한 거예요?

“선생님:) 저 아이디어스에 입점했어요♡ 늘 저에게 소중하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렇게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어요!”


미희다. 국어 교사를 꿈꾸던 아이. 여러 이유로 어려움이 많은 환경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꿋꿋하게 씩씩하게 바르게 살아온 내가 사랑하는 아이. 나를 자신의 선생님으로 기억해 주고, 나를 만난 것이 손에 꼽을 만한 행운이라고 말해 준 아이. 성실하고 반듯하고 따뜻한, 기회가 주어졌다면 틀림 없이 좋은 교사가 되었을 아이. 무엇보다 어려운 환경과 힘든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낸 경험으로, 학생들을 진심으로 안아주고 다독이며 일으켜 세워줬을 아이. 이제는 스물아홉이 된, 교사가 되어 동료로 만나고 싶었던 내 제자.


행복해지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니. 듣기만 해도 반갑고 메세지를 읽는 나까지 들뜨게 만드는, 이 희망적이고 반듯한 단어들. 단어 하나하나가 딱 그 아이답다. 축하 메세지를 보내고 나서 바로 보내준 링크를 따라 들어가 보았다.


“손편지를 좋아하고 감성 소통을 지향해요.

어릴 때부터 시를 좋아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국어교사를 꿈꿨고 교직이수를 했어요.

오직 그 길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해주시고 추천해주신 고마운 분 덕에 이렇게 여러분과 만나게 됐어요.”

프로필을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열여덟의 미희 그대로다. 그사이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수험생으로 이름이 달라진 만큼 그 이름에 걸맞은 무수한 일들을 겪었겠지. 그러면서 어른이 되었을까.


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스물이 되었을 때, 나는 충정로의 낡은 5층짜리 재수학원에 부지런히 등하교를 하는 고등학교 4학년일 뿐이었다. 아직 대학생이 아니라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 여전히 미숙하고, 실수하고, 흔들리고 불안해 하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스물세 살이 되면, 스물일곱이 되면, 서른이 되면 다를까 했지만 그 어떤 숫자도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서른 이후에는 더 이상 어른이 되는 나이 따위는 기다리지 않게 되었지만 사실 마흔을 앞에 두고는 또 다시 슬그머니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되었다. 불혹이라는 이름까지 붙은 데는 이유가 있겠지. 드디어 좀 평온하고 현명해질 수 있을까. 역시나 그런 일은 없었다. 불혹은 그저 ‘여전함 주의, 흔들리지 마세요’라는 의미였나 보다.


어른스럽지 않다고, 어른답지 못하다고 내가 어른이 아닌 것은 아닐 터. 아이를 둘이나 낳고, 남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니 어른이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예전의 나와는 어딘가 달라도 다르겠지. 뭔가 다르겠지. 달라졌겠지. 그러나 고백하자면 잘 모르겠다. 사는 게 마음 같지 않다거나, 내 자신조차도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거나,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게 인생이라거나, 포기하게 되는 일이 있는 반면 절대 포기해선 안 되는 일도 있어서, 산다는 건 그저 살아가는 것이고 살아내는 것일 뿐, 다른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거나, 그 하찮음에 실망하면서도, 그것 그대로 경건하고 숭고한 것임을 깨닫거나, 소소하고 지루한 일상이 다음 페이지에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간절한 무엇이 되기도 한다는 것 등등등을 알게 되었을 뿐. 이렇게 가만히 삶을 들여다 보며 스스로를 토닥이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고 숟가락을 드는 것. 이것도 어른의 모습일 테지. 이걸 깨닫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녀도 그랬겠지. 오랫동안 간절하게 꿈을 꾸고, 그것을 내려놓으면서 어른이 되었겠지. 미희야, 너의 모든 날을 응원해. 어쩌면 너는 나보다 먼저 더 빨리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어. 어려운 결정을 하고도, 저렇게나 너다운 긍정의 기운을 보여주는 걸 보니. 한없이 기쁘면서도 아프고, 다행스러우면서도 아쉬워. 너의 간절함과 오랜 노력을 알고 있었고, 믿었고, 바랐기 때문인가봐. 하지만 역시나 잘한 일 같아. 네 선택이잖아!




어느 날부터인가 상추가 맛있게 느껴지더라. 화려한 야경보다 초록에 마음을 더 주게 되고. 남들의 시선과 판단에 신경을 덜 쓰게 되고. 문제가 생기더라도 ‘괜찮아 이것 또한 배움의 기회가 될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게 되더라. 아무래도 나, 좀 느리긴 해도 분명히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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