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여느 날처럼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장난을 치다가 은서의 가슴이 조금 도드라져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만져봤더니 한쪽은 말랑말랑한데, 봉긋해 보이는 쪽에서 작은 멍울 같은 게 만져졌다. 그래서 소아과 진료를 본 후 가까운 대학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 그리고 2주 후 반갑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성조숙증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조금 통통한 편인 아이에게서 발견되는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나 보다. 은서는 마른 편에 속해서 내 상식으로는 그런 류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 한 마디로 무지했다. 오히려 나는 평소에 은서의 몸매를 보며 매번 대리만족을 해오고 있었다. 키도 큰 편이고 날씬한 데다, 작은 얼굴에 완벽한 두상, 다리도 길고 예뻐서, 내게 없는, 내가 너무도 원하는 것들을 다 가지고 있는 은서를 보며 부지런히 감탄을 했다. 부모로서 그저 함함한 데다, 외적인 조건에 몹시 연연하는 부족하고 어리석은 인간인 나로서는 은서의 모든 면이 썩 마음에 들었다. 어디서 온 건지 모를 무쌍의 작은 눈과 돈을 부르는 치열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나는 은서의 작은 볼이 그리는 우아한 곡선까지 사랑했다.
뼈 사진을 보니 성장이 2년 반 정도 빠르단다. 또래와 비교하면 키가 큰 편이지만 뼈 나이를 기준으로 성장곡선을 추정해 보면 오히려 작은 편에 속한다고.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호르몬 주사를 맞게 됐다. 검사 비용이 40만원, 주사 비용은 월 7만원. 이런 내용을 남편에게 전해 듣고 옆자리 쌤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 사이 계산 빠른 오선생님이 “검사비와 주사비가 대략 300이네요.”했다. 나는 “괜찮아요. 한 달 월급이면 되네요.”라고 답했다.
나는 평소 어떤 것의 금액을 따질 때 커피값과 월급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핸드폰 보험은 월 4500원이니까 커피 한 잔 값, 괜찮군 가입. 유튜브 프리미엄은 월8,900원, 좋아 광고없이 보는 데 커피 두 잔이면 괜찮지, 가입. 뭐 이런 식. 덩치가 큰 것은 월급이 기준이라 300 안에서는 크게 상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편. 한살림과 자연드림, 코스트코와 빅마켓, 마켓컬리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온갖 곳에 유료 회원인 나를 보며 교무실 쌤들은 도대체 커피 한 잔으로 계산한 게 얼마나 되느냐고, 커피를 월 100잔쯤 마시고 있는 것 아니냐고 웃었지만.
진단을 듣던 그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남편이랑 이야기를 하는데 남편 역시 치료비 이야기를 했다. “무슨 주사 한 대가 7만원이야, 너무 비싸다.”
“다시는 그런 이야기 하지 마, 치료할 수 있으면 감사한 거지 뭐가 비싸. 혹시라도 은서 앞에서 그런 이야기 꺼내지 마. 은서한테 그런 몸을 준 것도 우리고, 이런 성장 환경을 준 것도 우리야. 다 우리가 줬다고. 그러니 애한테 그런 이야기 절대 하지마.”라고 했더니 이 인간은 지지 않고 명랑하게 대꾸했다.
“치료비도 내가 주잖아.”
와씨, 진짜. 순간 정강이를 차버리려다 겨우 참았네. 나의 고매한 인품과 지성 덕분에 무사한 줄 알아요.
벌써 석 달째 은서는 치료를 받고 있고, 두 번째 달부터는 주사를 맞을 때도 울지 않는단다. 기특해 기특해. 은서야 며칠 전에 보니 넌 쇄골도 예쁘더라. 쇄골까지 기특해. 그리고 엄마가 너의 멍울을 제때 발견할 수 있도록 사시사철 런닝에 팬티만 입고 지내는, 근본 없이 후리후리한 너의 옷차림도 칭찬해. 기상천외한 맞춤법과 종잡을 수 없는 눈물도 사랑해.
내 딸로 와줘서 고마워. 너를 위해서라면 줄담배를 피우듯 커피를 들이켤 수 있어. 줄커피값이 나간다고 해도 괜찮아, 아니, 커피 말고 월급으로 계산해도 돼. 그러려고 버는 거지. 암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