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작가의 글쓰기 수업, <메타포라> 참여기 1주차
1주차 과제 <글쓰기의 최전선>
책을 읽으며 마음에 와닿았거나 좋았던 문장, 마음에 걸린 문장 등을 밑줄 그은 문장 중 10개를 골라서 게시판에 올립니다. 그 문장이 나에게 다가왔던 이유나 감상을 적어주세요. 분량은 자유예요.
마감은 수요일 자정까지. 17분 전에 과제 제출을 완료했다.
(미리미리 하고 싶었지만 어림 없었고) 퇴근 후 기절하듯 자고 일어나, (숙제란 게 원래 시작조차 하기 힘든 거니까 평소에 안 먹는 아이스크림도 하나 먹고) 겨우 책상 앞에 앉았다.
멋진 10문장을 고르고, 더 멋진 말도 덧붙이고 싶었으나 그러려면 크리스마스 즈음에나 과제를 완료할 수 있을 터. (가진 것 없으면서 딴에) 멋져 보이고 싶은 (가소로운) 마음은 접어 두고 '마감'을 지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내가 일평생 못하는 것이 바로 이 '마감'이지만 오늘은 제때 완료.
고민고민해서 인상적인 과제를 제출하고 싶었던 욕망이 저어기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건 부지런한 자들이나 이룰 수 있는 과업이다.
나는 수강생이고, 자고로 수강생이란 배우고 싶은 갸륵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할 뿐, 실력따위는 크게 중한 것이 아니라고 우기며, 내일의 첫수업을 기대해 본다.
이 글은 이 귀한 기회를 흐지부지 흘려 보내지 않기 위한 기록.
메타포라 1주차 과제 『글쓰기의 최전선』 10문장
1.
(9)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 막힌 삶을 글로 뚫으려고 애썼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외적 원인에 휘말리고 동요할 때, 글을 쓰고 있으면 물살이 잔잔해졌고 사고가 말랑해졌다. 글을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불행한 상황이 뚝딱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줄 한 줄 풀어내면서 내 생각이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후련했다. 낱말 하나, 문장 한 줄 붙들고 씨름할수록 생각이 선명해지고 다른 생각으로 확장되는 즐거움이 컸다. 또한 크고 작은 일상의 사건들을 글로 푹푹 삶아내면서 삶의 일부로 감쌀 수 있었다.
▷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 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짧은 글을 쓴다. 글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몇 줄의 메모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끄적인 말은 곧 내가 듣고 싶은 말이고 믿고 싶은 말이라서, 나중에 다시 펼쳐볼 때도 또 다른 위안과 희망이 되었다. 이것이 쓰기가 가진 힘이다. 안 쓰면 손해!
2.
(19) 글쓰기는 글 보는 눈을 길러주며, 글 보는 안목은 곧 세상을 보는 관점을 길러준다. 아울러 남의 말을 알아듣는 만큼 타인의 삶에 구체적 감각이 생긴다. 이 감각, 이 마음 쏠림이 또 다른 글쓰기를 자극한다.
▷ 깨어 있는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글에 담아내는 ‘경지’가 궁금하다. 나태이즘에 함몰되어 있는 프로 게으르니스트로서 일기조차 쓰지 않는 내가 또 감히 이런 말에 크게 감명을 받아 마음이 뛴다. 은유님은 감동이 아니라 ‘감응’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그건... 쉬운 게 아니다.
3.
(21) 좋은 글은 울림을 갖는다. 한 편의 글이 메아리처럼 또 다른 글을 불러온다. 글을 매개로 남의 의견을 듣고 삶을 관찰하다 보면 세상에는 나와 무관한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균형 감각이 발달한다. 이는 삶에 이롭다. 인간은 아는 만큼 덜 예속된다. 예를 들면 동성애자나 철도 노동자의 삶을 이해했을 때와 그 이전은 분명 다르다.
▷ (내가)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어렵지만, 다른 사람이 써준 좋은 글은 많고 많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난 읽기만 하면 되는데 쇼츠와 쇼핑 따위에 져서 그걸 못하다니. 분하다, 알고리즘!) 부지런히 읽자. 읽을수록 글은 나아진다고.
4.
(23)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 저도 믿습니다! 다만 별 시답잖은 내용을 끄적이더라도 그 또한 좋다고 제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본성을 억압하고, 약한 것을 무시하고, 진실한 가치를 낳지 못하는 글이 아니라면) 그저 끄적거리기만 해도 쓰지 않는 것보다 쓰는 편이 두루 더 낫다고요.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데 쓰면 남아있더군요. 그게 좋아요.
5.
(35) … 못 써도 쓰려고 노력하는 동안 나를 붙들고 늘어진 시간은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고, 자기 한계와 욕망을 마주하는 계기이자 내 삶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인과 인사하는 시간이라고, 이제는 나부터 안달과 자책을 내려놓고 빈말이 아닌 채로 학인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세상에 어떤 글도 무의미하지 않다고, 우리 어서 쓰자고.
▷ 글을 쓰는 동안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어서 좋아요. 나를 더 잘 알게 되거든요. 대상으로, 등장인물로 누군가를 글에 담는 순간 역시 이전의 어떤 순간보다 그 사람을 진지하게 떠올리게 됩니다. 글이 가진 사유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쓰지 않으면 닿지 않았을 곳에 닿게 됩니다. (그러니 좀 쓰자고!)
6.
(55)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다.
▷ 이 문장에서 빵 터졌다. 분명히 B급 유머인데, 크게 웃다니 괜히 손해 본 느낌이 들었다. 살아생전에 고작 몸 길이 1cm의 절지동물과 내가 나란히 놓이는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나의 시부모님께서 ‘아무렴 쥐며느리보다야 큰며느리지. 에이 그래도 큰며느리가 좀 더 낫지.’라고 생각하는 일이 없기만 바랄 뿐. 나와 쥐며느리가 다른 차원으로 인식이 되어야 할 텐데. 달갑지도 살갑지도 않다는 점에서 같은 걸로 퉁쳐지면 어쩌지.
7.
(57) 아무리 보잘것없고 초라하게 느껴져도 자기 능력에서 출발하기. … 내가 쓴 글이 곧 나다. 부족해(보여)도 지금 자기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실패하면서 조금씩 나아진다는 점에서 나는 글쓰기가 좋다. 쓰면서 실망하고 그래도 다시 쓰는 그 부단한 과정은 사는 것과 꼭 닮았다. 김수영의 시 「애정지둔(愛情遲鈍)」에 나오는 대로 “생활무한(生活無限)”이고 글쓰기도 무한이다.
▷ 내 삶도, 내 글도 실패하면서 조금씩 나아진다! (사는 건 하고 있는데, 글은 언제 쓰지?)
8.
(63) 삶에 관대해질 것, 상황에 솔직해질 것, 묘사에 구체적일 것
▷ 네, 기억하겠습니다!
9.
(100) 소박하고 거칠더라도 자기 느낌과 생각으로 시를 읽어내고 해설하느라 낑낑대는 것이 공부다. 독서의 참맛이다. (학자의) 권위에 복종하지 말고 (나만의) 느낌에 집중하기. 시의 본령은 지식의 확장이 아니라 삶의 결을 무한히 펼치는 데 있다.
▷ 삶의 결을 무한히 펼치는 독서! (삶이 달라지고 싶다면 나님아, 쇼츠와 쇼핑창을 꺼, 롸잇나우!)
10.
(175) 나는 글이 삶을 ‘크게’ 벗어나긴 힘들다는 걸 새삼 느꼈다. 글을 보면 삶이 보인다. 글에도 인격이 있다. 지식인의 인격이 있고 공무원의 인격이 있고 운동가의 인격이 있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건조한 글을 쓸 것 같은 공무원, 딱딱한 논리만 전개할 것 같은 지식인, 거친 문장을 구사할 것 같은 운동가가 누구보다 섬세한 어조로 글을 쓰는 경우도 있다. …
직업과 역할의 통념에 눌려 있던 예술가적 본성을 회복할 때 누구나 좋은 필자가 될 수 있다. 좋은 글은 그 자체로 다른 생각의 자리, 다른 인격의 결을 보여준다. 글은 삶의 거울이다. 글은 삶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것이 글 쓰는 사람에게는 좌절의 지점이기도 하고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 내가 쓴 글은 나를 그대로 비춰줄 뿐 나를 뛰어넘지 못한다. 그럴듯해 보이고 싶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이렇게 저렇게 글을 꾸며보아도 글 속의 나는 결국 글 밖의 나일 뿐이다. 정말 깊고 바른 생각을 담은 글을 만나거나, 아름답고 인상적인 문장을 만났을 때 뜻밖에 좌절의 지점에 놓이곤 했었다. ‘이런 글은 훌륭한 삶을 사는 사람만 쓸 수 있겠지. 타고난 자질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한 거겠지.’ 그러나 다행히 좌절은 짧고 감동은 길어서 이내 작은 맹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옳은 생각을 해야지.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자꾸 읽고 쓰다 보면 늘겠지...’
아쉽게도 게으른 자가 하는 맹세는 매번 금세 힘을 잃어서 삶이 크게 달라진 적 없고 덕분에 글도 크게 달라지지는 못했지만, 좋은 글을 읽으면서 한 번, 앙증맞은 맹세를 하면서 또 한 번 잠시 더 높은 것을 꿈꾸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남는 장사다. 두 번이나 행복했잖아.
-----------------------
게으른 제가 알람을 몇 개나 맞춰두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기하여, 드디어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실 글쓰기 수업보다.... 작가님에게 더 관심이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