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빈의 『우는 나와 우는 우는』을 읽고
사실은 나였구나
『우는 나와 우는 우는』을 펼쳤을 때 아름다운 문장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한정원의 『시와 산책』이 떠올랐다. 서정적인 문장에 연신 감탄을 하며 아껴 읽게 된다는 점에서 두 책은 같았다. 그러나 한정원의 글에 담긴 단정한 삶과 잔잔한 사색이 은빈의 글에는 없었다. 이 책에는 어린 연인이 부딪혀야 할 매일의 새로운 난관과 시종일관 가혹한 현실이 거듭 펼쳐질 뿐이었다.
우와 빈은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싶게, 은빈의 문장만큼이나 아름답게 반짝였지만, 어떻게 저렇게 살아낼 수 있을까 싶어 한없이 안타까웠다.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 아까울 만큼 글이 좋았지만, 한 페이지도 편하게 읽을 수 없었다. 그들은 ‘정말인 순간들’에 골몰하는 아름다운 연인이었지만. 세상은 그 ‘하찮고 조그만’ 것들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세상 모든 길의 끝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래서 우는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 빈은 그런 우를 업고 네 발로 기어 계단을 오르고 장애인 화장실에 함께 들어갔다. 기꺼이 우를 씻기고 옮기고 업고 일으키고 눕혔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우를 돌보는 일만을 하게 되었다. 세상이 ‘장애인 애인’ 말고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무고한 우를 두고 벌이는 이 ‘인질극’에서 빈은 종내 도망쳐 나왔다. 세상은 모질고 완강했다. 필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가을에서 겨울이 되듯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졌던 두 사람이 찬란하고 빤하고 좋고 싫고 웃고 우는 시간들을 지나 결국 헤어졌다는 이야기. 이 흔하고 흔한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가 왜 나에게는 길고 구불구불한 싸움으로 읽혔을까. 붉게 상기된 뺨과 서툰 시작을 사랑스럽게 바라본 잠깐을 제외하고는 많은 페이지에서 감탄과 연민과 탄식과 위무를 부지런히 쏟아냈다.
내 몸의 장애는 어쩌지 못하는 것이지만 연인의 장애는 그렇지 않잖아. 하나하나 따지고 재는 게 숨 쉬듯 당연한 세상에서 빈은 어쩌면 저렇게 계산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가져본 것 중 가장 좋은 것이 우라고 말하는 빈의 사랑이 오롯하고 무구하게 느껴져서 부지런히 감탄했다. 욕망과 질투와 미움과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며 비죽비죽 우는 빈이 안쓰러웠다. 사랑이 왜 이렇게 무겁고 힘이 드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빈을 보며 함께 울었다. 몸이 하나로는 모자라 어떤 바람도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에, 포기와 체념을 익히고 낙담과 비참에 유순하게 길드는 모습에 탄식했다. 그녀의 슬픔과 고통을 보며 자연스럽고 당연한 감정이라며 공감했다. 자책과 분열을 보며 그럴 필요 없다고, 이미 충분했다고 위무했다.
탄복과 탄식을 오가며 읽었지만, 사실은 내내 그녀가 이 싸움을 어서 그만두고 돌아 나오기를 바랐다. 그녀 역시 무고했고, 그녀 역시 인질일 것이었다. 세상은 우에게 말했을 것이다. 빈을 가지고 싶으면 그녀의 슬픔과 고통도 함께 가져야 한다고. 오래 울게 될 것이라고.
반쯤은 빈의 고통에 포개어진 채로, 반쯤은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는 현실 감각을 지닌 채로 이 책을 힘겹게 읽었다. 그녀의 사랑에 감탄했지만 응원하지는 못했다. 차별과 모욕과 폭력은 유구하고 견고해서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세상은 세상이고 너는 너라고. 세상이 잘못된 거지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그러니 그만두어도 된다고. 미안하지만 우는 우답게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갈 거라고, 원래 연인은 헤어지기도 하는 거라고.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지속하지 않을 방법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온전하게 빈의 편에 서 있는 걸까. 빈이 화자라서? 빈의 목소리로 들어서?
아니,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장애인의 정체성으로 이 글을 읽고 있었다.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인을 사랑한 비장애인의 이야기로만 읽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감탄했던 것도, 슬픔과 고통에 연민했던 것도, 비참한 삶에 탄식했던 것도, 헤어져도 된다고 자책하지 말라고 위무했던 것도, 그 모든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면서 그녀가 감내하게 된 것들을 높이 사는 나의 속된 마음이었다. 대개 사랑은 빠지는 것이지 결심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빈과 우 역시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지 않았나. 그러나 나는 이 사랑을 여느 사랑과 달리 빈이 베푸는 시혜쯤으로 여겼던 듯하다.
‘빈은 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빈은 계산 없이 그를 사랑했다. 장애를 스펙으로 가진 사람을 사랑하는 그녀는 얼마나 순수한 사람인가. 그녀의 사랑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다만 지쳤다면 여느 사랑이 그러하듯 그만 끝내도 좋다. 그녀는 이 풍진세상에서 보기 힘든 귀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이미 많은 것을 포기하며 충분히 사랑했다.’
남다른 선택을 했고, 희생을 감내했고, 그만하면 되었다니. 길고 구불구불한 ‘사랑 이야기’를 ‘비장애인의 수기’로 요약해 버린 나의 편협과 오만이 곧 우와 빈이 마주했을 세상임을 깨닫는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일상적인 무례와 모욕을 그들에게 주었으리라. 무고한 우를 붙들어 놓고 역시 무고한 빈과 인질극을 벌인 게 나였구나. 이 철저한 무감각이 그들에게 더욱 깊은 우울과 절망을 주었으리라. 우와 빈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어떤 것이 곧 나였구나.
나 요즘은 장바구니에 소고기 잘 안 담잖아. 연우가 180을 넘겼거든. 이제 괜찮아.
자식 키우는 거 너무 어려워. 나는 가끔 상상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아들이 “엄마, 사실은 저는 여자예요.”라고 하거나, 우리 딸이 “엄마, 저는 여자를 좋아해요.”라고 하는 걸. 내가 1남1녀를 둔 게 아닐 수도 있다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종종 각오해. “엄마 저 학교 다니는 거 너무 힘들어요. 자퇴할래요.”라고 말하면 펄쩍 뛰지 말아야지, 그만둘 수도 있지.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종종 각오해.
공부 잘하는 게 다가 아닌 거 알지. 하지만 열심히 살아도 겨우 이만큼이니 불안한 거지. 나만큼 사는 것도 어려워 보이니까 걱정이 될 수밖에. 맞아, 사실 건강하면 됐지. 그게 제일 중요하지. 감사한 일이지.
일상을 가득 채운 이토록 무수한 경계선이라니. 그은 줄도 모르고 있었으나 그래서 더욱 유구하고 견고했으리라. 은빈에게서 단정한 삶과 잔잔한 사색을 빼앗아 간 게 사실은 나였구나, 부지런히 선을 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