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내다니

은유 작가의 글쓰기 수업 <메타포라 14기> 1차시 후기

by 지르셔 꽤

“은유님을 10주나 뵐 수 있고, 그 좋다는 학인과의 만남도 10번이나 있잖아? 당최 알 수 없는 것투성이인 세상에서 좋을 게 분명한 일이 열 번이나 일어날 예정인데 망설인다고?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랬잖아.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랬잖아. 질러버려, 어서!” 그렇게 수업을 신청했지만.


퇴근 후 바로 침대로 직행하는 루틴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평일 저녁의 외출은 엄청난 결심이 필요한 대업이었어요. 게다가 일주일마다 숙제까지 있잖아요? 더구나 저에게 3월은 1년 중 가장 울적하고 버거운 달이기 때문에 첫 수업이 마냥 설레기만 한 것은 아니었어요. 게으름뱅이 주제에 욕심을 내다니, 그럭저럭 잘 따라가야 할 텐데. 좋으면서도 좋지 않아서 더 좋았어요. 보통의 날과는 다른 마음, 다른 동선! 망설여지는 일을 감행해 버리는 건 그 자체로 신이 나고, 스스로가 기특하게 느껴지거든요. 핸드폰을 지하철역 벤치에 두고 제 몸만 데리고 승차를 하기 전까지는요.


‘아차, 비 오는 밤에는 나 운전 못 하지.’ ‘그래 택시 기사님 도움을 받자, 호출 호출!’ ‘역시나 안 잡히네, 하는 수 없지.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다시 마을버스 타고 조금만 걸으면 돼’ 하며 이미 지하 주차장에서 지하철까지 온갖 오두방정을 떨며 상당한 시간을 흘려보낸지라 핸드폰을 잃어버린 걸 깨달은 순간, 잠시 오늘 수업을 포기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핸드폰을 두고 온 곳으로 되돌아가고,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세 정류장 뒤의 역에서 핸드폰을 찾기까지 고백하건대, 첫 수업을 앞두고 뛰었던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장이 거세게 뛰었어요. 아, 오늘 참 쫄깃쫄깃하다. 아주 싱싱하게 살아 있는 느낌이야.


그렇게 산 넘고 물 건너 오는 동안 20분 지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서점에 들어서니 길게 이어 붙인 테이블의 양쪽에 학인들이 나란히 앉아 계셨고, 긴 테이블 끝의 중앙에 딱 한 자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은유님의 맞은 편 자리였죠. 덕분에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작가님이 아주 잘 보였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신은 어렵게 당도한 자에게 덕질이 용이한 상석을 예비해 두셨더군요. 그 자리 참 마음에 들었어요.


작가님은 수업에서 함께 읽게 될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하고 계셨어요. 그 이후에는 학인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필명을 소개하고, 수강 동기와 자신이 쓰고 싶은 글에 대해 들려주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자발적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중간중간 머뭇거림이 만들어 내는 잠깐의 공백이 참 좋았습니다. 수줍게 떨리는 순간이라니요! 비슷하면서도 다른 스무 명의 설렘과 욕망과 긴장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나날이 상승하는 코스피 지수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읽고 쓰겠다고 모인 자들이라니.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너그러움과 호의, 다정한 호기심과 기대만으로 이미 충분했는데 창밖에서는 사랑스러운 빗소리까지 들려왔습니다. 오길 잘했다!


왜 쓰고 싶은지, 어떻게 쓰고 싶은지, 무엇을 얻고 싶은지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쓴다는 것은 분명 좋은 것이고, 남는 것이고, 필요한 것이구나, 무엇보다 작은 구원에 가깝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이 파탄난 후의 고통과 복잡한 심경을 글로 풀어내고 싶다는 이야기도, 할머니가 돼서 멋진 일기를 쓰고 싶다는 이야기도, 생각을 단정히 옮기고 싶다는 이야기도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습니다. “저는 저랑 어색해서 왔어요.”라고 말하는 학인의 고백을 들었을 때 그 단어의 조합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나왔지만, 이내 안쓰러워졌습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이 인생과 독대하는 단독자의 결의처럼 느껴졌거든요. 슬며시 밀어두고, 덮어두고, 묻어두고서 괜찮다고 치거나 괜찮다고 믿고 싶은 질문 앞에 당당히 선 모습이라니. 그녀가 꼭 자신을 잘 알고 자신과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데 쓰면 남아 있는 것이 좋아서 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진지한 사유를 담아낸 글은 자신 없고, 다만 유쾌하고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쓰기로 작정하기에 앞서 상처의 깊이가 다르고, 간절함이 다르고, 원하는 바는 달랐지만 쓰는 삶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점은 같았습니다. 이 만남이 진행되는 동안 각자의 삶에 크고 작은 구원이 있을 것은 분명해 보였어요. 이전의 수업이 좋아서 다시 들은 분이 여럿 계신 걸 보니 틀림없는 사실 같아요.


함께 읽고 쓰면서 나에게 다가가고, 내가 원하는 삶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요. ‘맞춤한 타이밍’에, 꼭 필요한 ‘시행착오’를 위해 글쓰기 수업을 듣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고 배우겠습니다.


빗소리도 감사했는데 눈이라니요. 이 겨울의 (아마도) 마지막 눈을 첫 수업, 귀갓길에 보내주시다니요. 핸드폰도 찾게 해주시고 오늘 두루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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