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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Sep 04. 2017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게스트들

부자여행 : 전주편 #13

아까 잠시 들러 짐을 부리고 나온 게스트하우스는 아까와는 달리 몇몇의 게스트들이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분주히 씻거나 쉬고 있었다. 


우리도 짐을 내려두고 손을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진우는 집에서처럼 내복차림으로 변신했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거실에 나와 이것저것 살폈다. 이곳 게스트하우스는 주인장이 화가인 듯했다. 1층은 화방이었다.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는 2층에도 벽마다 멋진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림마다 똑같은 낙관들이 있는 걸로 봐서 모두 주인장이 직접 그린 작품인 듯했다. 거실 가운데에는 길쭉한 앉은뱅이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이곳에서 아침 조식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진우는 테이블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방명록을 들췄다.


“아빠. 이거 뭐예요?”

“방명록이라는 건데 이곳에 온 사람들이 자유롭게 쓰고 싶은 걸 써두는 거야”

“이걸 왜 써요?”

“음. 그냥 자기가 이곳에 왜 왔는지 뭘 봤는지 그리고 이곳 게스트하우스가 어땠는지 자기 생각을 써두는 거야. 나중에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다시 읽을 수도 있을거고. 왜? 너두 한 장 써볼래?”

“네!”

2014년 방명록이라고 쓰여 있는 줄 없는 스프링노트의 여백을 찾아 펼쳤다. 그러곤 턱을 괴고 앉아 한참을 궁리만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쓰고 싶은 거 써. 니 생각을 쓰면 되. 여기 와서 좋다거나 뭐가 재밌었다거나 같은거 말이야”

“너무 많아서 뭘 써야할지 모르겠어요”

“그럼 그 중에서 한 가지만 써봐. 아까 아빠랑 먹은 길거리아가 맛있었다 같은 거”

“그건 싫어요. 그거 말구. 음”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진우는 한참을 여백만 들여다 보았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그런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몇 분 뒤 드디어 진우가 연필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나서 진우는 다음과 같이 썼다. 

최 진 우

2014년 12월 30일

“푸하하하. 왜 이름만 썼어?”

“그냥 제 이름을 남겨두고 싶어서요”


그래 잘했다. 잘했어. 뭔가 심오한 생각을 했나보다. 참 독특한 녀석이다. 날 닮은 거 같진 않다. 그렇다고 애엄마를 닮은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저녀석은 누구인가.


나와 진우가 테이블 가운데를 차지하고 이것저것하는 동안 다른 게스트들도 우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 여행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주로 내일 어디로 갈 것인지 상의하는 모습이었다. 진우 오른쪽에 머리를 온통 노란색으로 염색을 한 젊은 여성분은 혼자였다. 스마트폰으로 무얼 검색하는지 말없이 작은 화면만 보고 있었다. 왜 혼자일까 궁금증이 생긴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내일 어디로 가세요?”

자신에게 한 질문인지 몰랐던지 고개만 들어 나를 쳐다볼 뿐 대답하진 않았다.

“내일 어디로 가시나해서요”

“아. 저요? 내일은 기차타고 여수 쪽으로 가보려구요”

“여수요? 좋은 데 가시네요. 여기보다 훨씬 따뜻하고 볼 거 많고. 근데 혼자세요?”

“네. 친구들은 다들 직장 다녀서 혼자왔어요. 사실 저도 직장 다녔는데 올해가 내일로 탈 수 있는 마지막이라 얼마전에 직장 그만두고 내일로 여행 중이거든요”

“와. 내일로요? 저 어렸을 땐 내일로 같은 거 없었는데 몇 년 전에 생겼더라구요. 가격도 싸고 기차도 마음대로 탈 수 있어서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정말 멋진 조건이죠. 부럽네요.”


내일로는 2007년 한국철도공사가 청년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패스형 철도여행 상품이다. 이용자격은 만 25세 이하의 대한민국 국민 또는 외국인등록번호를 발급받거나 여권을 소지한 외국인에게 주어진다. 이용시간은 시작일 0시부터 7일간으로 끝나는 날의 23시 59분 이전에 도착하는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열차는 itx-청춘, itx-새마을,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일반실, 누리로, 경북관광순환테마열차 일부, 통근열차를 횟수 제한없이 이용할 수 있다. 내일로 패스가 출시된 2007년에는 이용객이 8천 명에 불과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해마다 급격히 증가해 2010년에는 무려 5만 8천여 명이 이용하는 명실상부한 대표적인 철도여행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이용기간도 처음에는 여름에 해당하는 7월 11일부터 8월 31일까지였지만 꾸준히 확대되어 2014년에는 6월 1일부터 9월 6일까지의 여름과 12월 1일부터 2015년 2월 16일까지 그리고 설연휴가 끝나는 2월 23일부터 3월 6일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이처럼 내일로는 저렴한 가격에 편하고 빠른 철도를 이용해 전국을 여행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많은 청년들이 이용하고 있다. 나도 진작부터 내일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미 서른 중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어쨌든 노랑머리 친구는 내년이면 만 스물 다섯이 넘어가기 때문에 올해 직장까지 그만두면서 여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오늘로 3일째.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진우는 가방에서 큐브를 꺼내와서 내 옆에서 맞추고 있었다. 큐브의 여섯 면을 다 맞춘 진우가 그걸 형들에게 자랑하며 돌아다닐때 게하 주인분이 귤 한바구니를 들고 들어오셨다. 이미 거실에는 우리를 포함해 예닐곱 명의 청년들이 각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인 아저씨는 사람들을 테이블로 불러 모아 귤이나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라고 하셨다. 자기는 원래 화가인데 나이들고 활동을 그만두면서 몇 해 전부터 이 가게를 열어 생활하신다고 소개하셨다. 잠깐이지만 주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멋진 노후를 사시는구나하고 느꼈다. 주인아저씨가 내려간 후 다소 썰렁해진 분위기가 나자 내 제안으로 우리는 각자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내가 진우를 소개해 주었다. 진우야 니가 소개해봐. 머뭇머뭇 내 품으로만 파고 들던 진우는 결국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말았다. 대신 내가 진우에 대해 이야기했다. 진우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고 우리는 파주라는 곳에서 왔으며 아빠와 단 둘이 여행을 하는 데 이번이 첫 여행이고 이 곳이 첫 숙소라는 의미까지 덧붙였다. 썰렁했던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그 때 옆에 있는 청년이 우리 보고 “처음엔 호스트인줄 알았어요”라는 말에 모두들 크게 웃었다. 내 차림도 편한 차림이었지만 진우의 모습만 보면 영락없이 자기 집에서 사는 어린이로 보이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진우의 실내패션은 위아래 한 벌인 공룡무늬 내복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와 자기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인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20대 청춘 남녀들이었기 때문에 8살 진우와 40살 내가 낄 자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행이라는 주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늦게 숙소로 돌아온데다가 별 얘기 나누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늦어버렸다. 진우를 재우기도 해야했지만 젊은 사람들 사이에 늙수그레한 내가 끼어있으면 실례일 것같아 우리는 이만 들어가겠노라고 하고 우리방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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