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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Sep 12. 2017

전주 헌책방과 여행 기념품

부자여행 : 전주편 #19

이제 우리에게 남은 여행시간은 얼마남지 않았다. 


진우야말로 실컷 먹고 거하게 쌌으니 에너지도 충만하고 더 열심히 돌아다닐 수 있는 상태였지만 우리의 여행 시간은 얼마남지 않았다. 오전에 두 군데와 먹거리 탐방으로 시간은 훌쩍 지나있었다. 이제 마지막 코스만이 우리에게 남아있었다. 마지막 코스는 전주여행을 계획했을 때 넣어두었던 헌책방이었다. 사전에 검색했을 때 전주에는 헌책방이 조금 남아있었다. 고서점도 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고서점은 전국을 통틀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전주에 헌책방거리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 일정에 헌책방을 포함시킨 이유는 우선 책이 좋아서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책은 집에서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흔히 여행을 가면 더 넓은 이해심으로 마음이 너그럽게 되기도 하고 현실의 팽팽한 긴장감보다는 한결 부드럽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여행에서 만난 책은 책 자체로 즐겁게 읽히고 즐겁게 상상할 수 있는 것같아서 좋다. 그리고 헌책방이 주는 가격적인 이점도 작용했다. 우리처럼 엥겔계수 높은 집은 도서구입이나 문화활동에 제약이 많다. 그래서 책은 가급적 헌책방을 이용하는데 집으로 돌아갈 때 기차에서 읽기 위해서라도 한두 권씩 사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일정에 포함시켰다. 전통과 역사를 탐방하는 여행에서 헌책방도 좋은 여행코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옥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헌책방에 들른 우리는 각자 자기가 원하는 책을 골라 탐독했다. 진우나 나나 현재는 취향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진우는 학습만화고 나는 역사관련 서적이었다.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를 넘나드는 헌책방 사냥에 마음에 드는 책을 두어 권 골라 카운터로 오니 그 한편에 진우가 엉덩이 깔고 바닥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진우는 어디서건 책을 읽는다. 마음에 드는 책이 손이 잡히면 그곳이 어디든 바닥에 앉는다. 그래서 밖에서 그렇게 앉았다가 엄마한테 가끔 혼나기도 한다. 바닥에 앉는다고, 엉덩이 더럽혀진다고 말이다.


헌책방에 들어갔을 때는 분명 시간이 넉넉했었는데 책값을 치루고 나니 기차시간이 촉박해져 있었다. 추위를 피하기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어서 좁고 책먼지 가득한 헌책방에서 보낸 시간은 즐거웠다. 진우도 나도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더 좋았다. 그런데 중간중간 시간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깜박한 것이다. 서둘러 집어들고 밖으로 나왔는데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땅바닥에 닿자마자 녹아내리는 눈이었지만 겨울은 겨울이었다. 느닷없이 내린 눈이 반가웠다. 그렇지만 부족한 시간은 미웠다.


눈발이 크고 바람이 불어 똑바로 서서 걷기가 힘들었다. 갑자기 내리는 눈때문인지 도로에는 차가 많아진 기분이었다. 기차시간까지는 얼마남지 않았고 이곳에서 기차역까지 바로가는 버스가 몇 번인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버스를 탔다가 기차시간에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갑자기 마음이 불안했다. 여행지에서는 좀처럼 타지 않는 택시를 잡아탔다. 전주역이요. 택시기사분에게 목적지를 말씀드리고 시트에 몸을 젖혔다. 긴장이 다소 풀어졌다.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택시는 빠른 길을 골라 우리를 전주역에 내려주었다. 오히려 시간이 남게되었다. 남은 시간에 우리는 아내와 동생 연우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로 했다. 진우는 여행 중간에 뽑기를 했고 마음에 드는 책도 골랐기 때문에 연우선물만 고르라고 했다. 결론은 자기가 갖고 싶은 걸 고르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연우꺼라고 집으로 가는 기차에서도 껍데기만 만지작 했을 뿐 뜯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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