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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Sep 11. 2017

잘 먹고 잘 싸기

부자여행 : 전주편 #18

아침을 먹고 한참을 걸은 터였다. 


오장육부의 활동이 정점을 찍었을 무렵 진우가 말했다. “아빠 똥마려” 난 이 얘길 듣고 이게 현실이 아니길 바랬다. 이런 쌩뚱맞은 곳에서 똥이라니. 우리는 기념관에서 나와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고 한참이나 걸었기 때문에 다시 기념관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일단 참을 수 있는지 없는지 물었다. 다행히 참을 수 있다는 강인한 의지를 들었다. 최대한 가까운 곳의 화장실을 찾으러 다녔다. 다행히 경기전 옆에 관광객을 위한 화장실이 열려 있었다. 진우를 변기칸으로 들여보내고 그 앞을 지켰다. 다 쌌어? 몇 번이고 물은 다음에야 다 쌌다는 답이 들려왔다. 나도 변기칸으로 들어가서 진우가 내민 엉덩이에 물수건을 갖다 댔다. 이것저것 묻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서둘러 옷을 입혀 주었다.


진우와 내가 물리적으로 연결된 유일한 것이 똥닦아 주는 일이다. 이것만 아니면 진우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어엿한 하나의 인간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똥닦아 주는 일이 지저분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해줄 생각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아빠나 엄마가 해줄 수는 없는 일이라 가끔 스스로 닦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라고 한다. 그럴때마다 팔이 짧다는 해괴한 대답이 돌아오긴 하지만 언젠가는 똥꼬가 가까워지기 바랄 뿐이다.


잘 쌌으니 또 배가 고픈 모양이다. 경기전 앞은 어제 갔던 한옥마을 초입에 있어 길거리음식 파는 곳에 가깝다. 진우가 어제 먹지 못한 새로운 먹거리에 도전하자고 나를 이끌었다. 나는 그것도 좋지만 전주에 왔으니 전주비빔밥도 먹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눈 앞의 먹거리 앞에서 나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사실 나도 비빔밥보다는 이것들을 먹고 싶었기 때문에 비빔밥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우선 먹고 보기로 했다. 아침시간이라 어제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줄을 섰다. 일단 진우와 나는 상대적으로 줄이 짧은 완자집에서 다섯 알짜리 완자를 샀다. 그리고 나서 어제 줄이 가장 길게 늘어서 있어서 먹어보지 못한 만두집에 줄을 섰다. 완자를 먹으면서 말이다. 다섯 알의 완자는 상식적으로 큰 사람이 세 개 작은 사람이 두 개로 나눠 먹어야 했지만 진우에게 이런 상식이 통할리 없다. 결국은 아빠 두 개 진우 세 개. 아들이 왠수다. 완자를 다 먹었는데도 줄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도 허기진 상태가 아니라서 기다릴 만 했다.


우리 차례가 돌아왔을 때야 겨우 실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좁은 가게에는 그래도 다양한 종류와 많은 양의 만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우만두, 고기만두, 김치만두 등등 네댓 가지 종류의 만두를 사서 밖으로 나왔다. 추웠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벤치에 앉아 먹었다. 좀 많이 샀다 싶었는데도 한 개 두 개씩 나눠먹으니 그것도 금방 없어졌다. 적당한 포만감에 추위도 덜했고 기분도 좋았다. 그 다음 찾은 곳은 고로케 집이었다. 경기전 입장료 천원 아낀 걸로 길거리 음식 먹기로 했지만 실제로 지출한 건 그 돈의 열 배가 넘는 돈이었다. 어쨌든 진우나 나나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지만 말이다.

잘 먹을 수 있는 건 잘 싸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진우가 잘 먹게 된 데에는 아내의 노력이 컸다. 진우가 태어나고 1년 넘게 모유수유만 고집했고 첫 돌이 지나도 억지로 모유를 중단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이유식으로 넘어갔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쌀을 먹기 시작하면서 진우의 음식 거부는 우리집의 가장 큰 문제였다. 밥상에 앉히기조차 힘이 들었다. 한 숟가락 억지로 떠 넣으면 매번 재채기 하느라 입밖으로 분출시켰다. 자연스럽게 밥 먹는 시간은 길어졌고 그 시간이 아내나 나에겐 고통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내는 하루 세 끼를 아이와 나를 위해서 밥을 준비했다. 아침은 항상 따뜻한 국을 내줬고 저녁엔 나물반찬 하나는 꼭 올리려고 노력했다. 이런 노력을 알 리 없는 진우의 식사는 언제나 제자리였다. 지금도 아내는 그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진우밥을 준비할 때면 진우가 또 잘 안 먹을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해.” 이 말에는 나도 공감한다. 애써 준비한 음식을 잘 먹지 않고 힘들게 할 때면 원망스럽기도 하고 밉기도 했었다. 나조차도 그런데 아내는 오죽했을까. 하지만 진우는 이런 엄마의 마음을 전혀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진우의 식사습관이 가히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시골로 이사한 지 얼마되지 않았었을 때니까 일곱살 쯤이었던 것같다. 어느날부터인지 정확하게 셈할 수는 없지만 그 때쯤 진우의 식사량은 폭발적으로 늘었고 키도 크고 몸도 커졌다. 밥을 잘 먹으니 애 하나 키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저 같이 먹고 놀고 즐기면 그만이었다. 이 여행을 떠날 때도 진우가 먹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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