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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Sep 11. 2017

어진박물관과 동학혁명기념관

부자여행 : 전주편 #17

경기전을 나와 다음 찾은 곳은 어진박물관이었다. 


경기전 뒤편 널따란 곳에 자리잡은 어진박물관은 왕의 초상화전문박물관으로 한옥풍의 건물이다. 어진은 왕의 초상화인데 그 중에서도 태조 어진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초상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명종실록에 따르면 태조어진은 모두 26축이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경기전에 있는 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5백 년 전 이성계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뜻이다. 어진박물관 초입에 걸려 있는 태조어진에 대한 설명문을 진우는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눈에 담았다. 그리고 여러 임금의 모습도 보았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동학혁명기념관에 가기로 했다. 어진박물관에서 경기전 쪽으로 나가려고 방향을 잡아 조금 걸어 올라가니 저 멀리 한옥지붕들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로마네스크양식의 둥근 첨탑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한옥집 담장을 따라 출구쪽으로 갈수록 전동성당이 크게 보였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초상을 모신 경기전과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어진박물관에서 바라본 전동성당의 모습에 기분이 묘했다. 조선은 유학을 중시하는 유교국가였다. 서양의 동양진출이 가속화되는 조선 말에 조선인 중에 천주교 신자가 급격히 늘어났던 것은 사실이다. 조선 후기 유교가 더이상 민본에 입각한 올바른 통치이념으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이들의 삶을 공감해주고 위로해 두는 새로운 종교가 조선에 유입된 것이다. 당연히 조선정부에서는 천주교 세력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물론 전동성당이 조선시대에 세워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천주교를 대변한다는 생각에 역사의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해주었다. 


조선의 집권자는 천주교인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으로 수많은 자국의 백성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이로 말미암아 프랑스와는 전쟁까지 벌이게 되었다. 결국 조선은 천주교의 포교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고 치욕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로부터 150여 년이 지난 지금 조선의 지배자를 모신 경기전과 천주교의 상징인 전동성당이 마주보고 한 곳에 서 있는 모습이 어떤 의미에서는 묘한 역사적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내 그런 생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우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내 눈 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곳 경기전은 흡사 미로와 같아서 드나들 수 있는 문도 많고 밖으로 연결되는 곳이 무수히 많은 곳으로 사람을 잃어버리면 찾기 쉬운 구조가 아니었다. 소리를 질러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더라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런 곳에서 순식간에 진우가 없어진 것이다. 간떨어지는 느낌에 뒤를 돌아 왔던 길을 되짚어 뛰어갔다. 다행히 오른쪽으로 난 문으로 들아가니 널찍한 공터 한가운데에 진우가 서 있었다.


일 분의 시간이 한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심장 떨리는 내 속마음과 달리 진우에게 아빠랑 떨어져서 걸으면 안된다는 주의를 다시 주고 손을 꼭 잡았다. 오늘 처음으로 잡은 진우 손은 차가웠다. 여행지에서 아이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시 한 번 진우에게 내 핸드폰 번호를 상기시켰다. 다행히 내 번호를 잘 외우고 있었다.

동학혁명기념관 건립문


차가워진 진우 손을 꼭 잡고 다시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학혁명기념관이 나타났다. 밤사이 내린 비로 기온이 많이 내려갔고 경기전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에 다소 춥게 느껴졌다. 그때 만난 기념관은 더 반갑게 느껴졌다. 1995년에 만들어진 이 기념관은 1894년에 일어난 동학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100년만에 건립된 곳이다. 서학에 반해 만들어진 동학이 피폐해져가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종교로서 자리잡은 지가 벌써 2백년이 다 되어 간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와 3.1운동의 민족대표 손병희에 이르기까지 동학의 창시와 활동상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곳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진우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줘야 알지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곳이 있고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는 보여주고 싶었다. 진우는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기념관 곳곳을 꼼꼼히 살폈고 안내문을 거의 다 읽은 다음에야 자리를 옮겼다. 난 어렸을 때 박물관에 가면 대충 스윽 지나쳤던 것 같은데 이 녀석은 여러모로 신기한 구석이 많은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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