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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Sep 10. 2017

경기전에서 다시 만난 여행자

부자여행 : 전주편 #16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밤 사이 비가 내렸던 모양이다. 


길은 젖어있었고 여행객이 줄어든 이른 시간의 아침은 상쾌했다. 우리가 먼저 들른 곳은 숙소에서 5분 거리인 경기전이었다.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관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원래 경기전은 이 곳이 아니라 전주부성 쪽에 큰 규모로 자리잡고 있었다. 태조의 어진을 모실 정도로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었던 곳이다. 그런데 일제는 식민통치 기간에 우리의 정신을 훼손할 목적으로 경기전의 많은 땅을 빼앗고 부속 건물들을 철거해 버렸다. 지금의 경기전은 해방 후 지금의 자리에 일부를 복원한 것이다. 


진우와 나는 입장권을 사려고 매표소에 들렀다가 앗싸하며 환호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문화가 있는 날’이라며 무료입장이라는 안내를 본 것이다. 입장료는 천원에 불과하지만 천원이면 오뎅이 두 개라며 그 돈으로 어제 맛있게 먹었던 길거리음식이나 사먹자고 합의를 봤다. 어제의 갈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결코 떨어질 수 없는 한몸이었다. 


비가 오기도 했고 1년 중 마지막 날이기도 한 오늘 경기전의 아침은 엄숙했다. 여행을 온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과 외국에서 왔을 법한 금발의 외국인 몇몇이 조용조용 이동하며 엄숙함을 더했다. 게다가 “이곳은 조선 태조어진을 모신 신성한 공간입니다. 예를 다하여 경건하게 관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더욱 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진우에게 뛰지 말라고 주의를 준 다음 자유롭게 경기전을 거닐었다.


경기전이 볼 게 많다던가 오랫동안 머무를만한 곳은 아니어서 우리도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경기전의 주요 건물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섰다. 그 때 뒤에서 우리를 반갑게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야구모자를 뒤로 눌러쓴 친구와 그의 언니가 우리를 본 것이었다. 어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여행자들이었다. 


언니는 직장에 다니고 있고 여동생은 대학생이었다. 먼저 졸업한 언니는 쭉 직장을 다녔는데 힘도 들고 여름에 다들 가는 휴가를 일때문에 못갔기 때문에 이번에 동생이랑 같이 늦은 휴가를 왔다고 했다. 사실 동생은 여행가고 싶지 않았는데 언니가 강제로 데려왔다며 불평이었지만 그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셀카봉을 들고 크게 손을 흔들며 우리를 알아봐 준 그들이 더욱 반가웠다. 


“경기전이 첫 코스였어요?” 


다들 전주에 여행을 오면 들르는 곳이 정해져있다. 한옥마을, 경기전, 막걸리골목, 청년몰 등등. 그래서 어딜 가도 많은 여행자들을 만나지만 어제 우리는 한 지붕 아래에서 잠을 잤고 같이 아침식사를 하면서 더이상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그냥저냥 스쳐지나가는 또다른 여행자가 아니라 이제는 아는 사람으로 만난 것이다. 사실 좀 전에 헤어지긴 했지만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여행의 또다른 재미였고 게스트하우스가 가진 매력이 여기에 있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셀카봉 말고 둘 만의 사진을 남겨주고 이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우리는 다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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