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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Sep 15. 2017

아빠! 춘천 안가면 안되요?

부자여행 : 춘천편 #02

여행 전에 미리 결정해야 할 것들에 대한 예약과 동시에 예매를 끝냈다. 


이제 여행 전날 가방만 꾸리고 떠나기만 하면 끝이다. 그런데 여행 이틀 전 잠자리에 든 진우가 어둠 속에서 갑자기 흐느끼며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 춘천 안가면 안돼요?


자려고 눈을 감고 있었고 진우는 이미 눈물마저 흘리고 있었던지라 울먹이는 진우 입에서 나온 말이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못알아들었다. 나는 재차 물었다. "진우야! 뭐라고?” 무슨 일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어둠에 적응한 눈으로 진우 쪽을 바라보고 물었다.


진우는 내 목소리를 듣고서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진우는 두 손으로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눈을 비비며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춘천 안가면 안돼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제서야 나와 아내는 진우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아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우리 둘은 할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가 먼저 진우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한참을 눈을 비비며 울먹이던 진우가 드디어 말을 이었다. 


“엄마 보고 싶을까봐 안갔으면 좋겠어요.” 


이유를 들은 난 어이없는 답변에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아이의 천진스럽고 사랑스런 이유를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번 전주에 갔을 때 진우는 엄마랑 연우를 놔두고 가는 것에 대해 가끔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나중엔 꼭 같이 오자고 몇번이고 다짐을 했었다. 자기만 이런 곳에 오는 것이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번 춘천여행을 앞두고는 갑자기 엄마생각이 많이 난 것이다. 엄마가 함께 가지 못하고 또 하룻밤을 엄마없이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미치니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친 모양이다. 아내는 이런 진우를 토닥이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진우가 가기 싫으면 안가도 좋다"고 말했다. 이 생각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러라고 했다. 아이가 원하지 않는 여행인데 떠난들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엄마의 말을 들은 진우는 춘천엔 가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잠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아내는 나에게 춘천여행을 어떻게 할건지 물었다. 난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진우가 가기 싫다고 하면 못가지 뭐.” 


진우를 위해 그리고 아빠를 위해 준비한 여행은 아쉽게도 출발도 못하고 막을 내렸다. 이제 겨우 한 번 갔다온 것뿐인데, 진우가 사랑하는 엄마와 연우를 놔두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인해 아빠가 야심차게 준비한 "부자여행"이 다소 싱겁게 끝이 난 것이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모른 상태로 이 여행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 난 무엇을 위해 이 여행길에 오르려는 것일까. 아빠와 단둘이 여행이라는 것을 하면 아이는 무조건 행복하고 즐겁고 흥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에겐 여행보다 일상 속에서 언제나 자기 옆을 지켜주는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아이에게 여행은 일상의 일탈이 아니었다. 어쩌면 아빠와 떠나는 부자여행은 진우에게는 엄마와 헤어지는 '이별여행'으로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첫 여행의 전날 밤처럼 난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다. 그때처럼 설레임때문에 뒤척인 게 아니라 이별여행에 대한 아이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뒤늦게 전해진 불편한 감정때문이었다. 아빠의 관점에서 여행을 준비하고 그 여행을 아이에게 강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선 안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끊임없는 고민의 실타래가 얽히는 장면까지 기억이 난다.


개운하지 못한 하룻밤을 지낸 아빠와 달리 진우는 벌써 일어나 내 옆에서 책을 뒤적거리고 있다. 여느날과 같이 나는 진우를 끌어안고 평상시처럼 아침인사를 나눴다. 애써 춘천여행에 대해서는 꺼내지 않았다. 환한 아침에 여행에 대해 거부하는 진우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기분을 제외하곤 여느때와 똑같이 행동했다. 그 사이 아침을 준비한 아내가 우리를 부른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아내는 진우에게 내일 어떻게 할건지 물었다. 진우가 타보고 싶어했던 2층 기차와 게스트하우스의 2층 침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행을 가지 않으면 탈 수 없고 누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밤과 어둠이 주는 감성에서 벗어난 진우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시 '여행자'로 돌아와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긴 하겠지만 춘천에 가겠다. 반드시 2층 기차는 타봐야겠다고 선언했다. 어젯밤 진우의 눈물소동이 한바탕 에피소드로 끝이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빠에겐 커다란 숙제하나가 주어졌다. 잠시나마 가족의 구성원과 떨어져 있는 것. 그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진우에게 그 슬픔을 보상해 줄 수 있는 여행. 여행은 이별의 '슬픔'이 아니라 가족과 추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행복한 과정이라는 '기쁨'을 아이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그것이 이번 두 번째 부자여행이 아빠에게 준 숙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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