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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Sep 16. 2017

itx 2층 기차, 두 배의 소란스러움

부자여행 : 춘천편 #03

행 전날 우리는 지난번 여행과 똑같은 구성으로 여행가방을 챙겼다. 


진우 가방에 들어가는 책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번엔 진우가 스스로 여행가방을 챙겼다. 물론 장난감도 하나 더 들어갔다. 하지만 지난번 여행에서 장난감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진 않았다. 그래서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경험이 참 중요하다.


11시 용산에서 출발하는 itx청춘열차에 몸을 싣기 위해 우리는 9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해외여행을 하는 것도 아닌데 기차 시간에 맞추려고 1시간 30분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출근시간대를 약간 빗나간 시간인데도 평일오전의 전철엔 적지않은 사람들로 붐볐다. 


용산으로 가는 전철에서 진우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바깥 풍경과 전철 안 풍경을 이러저리 살폈다. 한국철도공사에서 자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반복재생하는 철도영상도 진우에겐 재미있는 정보인가 보다.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기억나는대로 내게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용산역에 제대로 가고 있는건지, 다음 역은 무엇인지, 언제 내려야 하는지, 자주자주 내게 확인받는다. 아빠만 믿으라고 해도 알겠다고는 하지만 온전히 다 믿는 눈치는 아니다. 틀림없다. 전철은 50분을 달려 용산역에 도착했다. 꿈에 그리던 2층 기차를 타기까지 아직 30분의 시간이 남았지만 용산역 이곳저곳을 둘러보느라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전철 안에서 진우는 우리가 타야할 청춘열차의 출발시간과 탑승위치에 대해 몇번이고 물었다. 그 덕분에 아빠는 아예 자리를 외울 정도. 4번 객차 14열 c와 d. 열차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에 따라 우리는 청춘열차에 몸을 실었다. 평일인데도 2월 말, 겨울방학의 막바지라서 그런지 열차 안은 사람들로 이내 붐비기 시작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친구들은 엠티라도 가듯 라면박스 하나씩 어깨에 지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고 낭만도시 춘천으로 향하는 기차답게 커플도 제법 많았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등산복차림의 나이 지긋하신 중년의 부부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진우 덕분에 열차표를 꺼내 볼 필요도 없이 우리는 한번에 좌석을 찾아 짐을 부리고 자리를 잡았다. 진우가 2층 열차의 이모저모에 열광하고 있을 무렵, 일단의 무리가 만들어내는 소음이 2층에 먼저 올라왔다. 자유분방한 고음을 뿜어대는 유아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의 시끌벅적함이야 통제되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고 그 소리는 그리 귀에 거슬리는 주파수를 갖진 않았다. 


문제는 엄마들의 소음이었다. 대여섯 명 남짓한 이들은 2층 객차를 전세낸 듯 대여섯 명의 아이들을 통제한다는 명분으로 그들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소음을 발생시키고 있었다. 2층 기차라는 특이한 점때문에 진우같은 어린이들이 좋아하고 또 들떠서 놀다보면 좀 시끄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아이들이 새로움에 대해 열광하는 것 또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통제해야 할 어른들은 떠드는 아이들보다 더 큰 소리로 그런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떠드는 아이를 앞에 세워두고 충분히 조용히 얘기해도 아이는 알아들을 것이다. 그런데도 엄마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에게 큰 소리로 조용히하라고 떠드니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말을 들을 리없고 엄마의 목소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런 무통제의 소음을 한참을 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시간 10여 분 남짓한 짧다면 짧은 여정이 아니었다면 '정색한' 아저씨 얼굴을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우리 모두 여행자가 된 이 시점에 얼굴을 붉히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진우는 가는 내내 시끄럽다고 불만이었다. 진우는 자신이 가져온 책을 소리내서 읽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했다.


다행히 청춘열차는 이내 서울을 벗어나 이들 소음을 가평역에 시끌벅적하게 내려두고 다시 출발했다. 그제서야 청춘열차가 뿜어내는 덜컹거리는 기차소리를 접할 수 있었다. 기차여행이 시작되었음이 느껴졌다. 이번 여행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감은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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