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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Jan 15. 2018

서울 촌놈의 시골살이

부자여행:인천편#11

어찌보면 추억이라는 것도 현재와 동의어라고 생각한다. 


추억은 행복한 기억일진대 행복한 현재가 없다면 먼 미래에 추억할 꺼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행복해야 나중에 추억할 것들이 많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난 언제부턴가 꿈이 생겼다. 아마 경주에 살다가 서울로 대학을 다니기 위해 상경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사실 대학을 다닐때는 친구들과 놀고 술 마시고 하루하루 살다보니 주변을 둘러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팍팍한 도시생활에 싫증이 난 나를 발견했다. 그런 마음은 결혼을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조금씩 커지다가 큰 애를 낳고 또 둘째를 낳아 키우면서 감출 수 없게 된 듯하다.


아이들은 너댓살이 넘어가면서 집에서보다는 밖에서 뛰어 노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동네는 진우와 연우와 같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거나 마음껏 흙을 만지면서 놀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자동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갔고 아이들이 놀만한 곳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 조차도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놀이공간에서 획일적으로 놀 수밖에 없다. 미끄럼틀에, 그네에, 시소에, 아이들은 그거 한번 타보겠다고 길게 줄까지 선다. 또 그걸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아이 남의 아이 할 것없이 똑같았다. 그 속에서 아이들 개개인의 개성과 창의적인 놀이를 찾아 보긴 어렵다.


나는 진우와 연우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새로운 놀이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당시 유행하던 캠핑이었다. 캠핑의 장점이야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고 그래서 요즘은 많은 가족들이 캠핑을 즐긴다. 하지만 나는 캠핑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술판과 거침없이 오고가는 자동차들을 접하면서 캠핑장의 모습에 실망한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꿈꿔오던 시골살이를 결행했다. 4월의 어느 한가한 일요일 오후, 집에서 뒹굴거리던 우리 가족은 경의선 기차를 타고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예쁜 시골집에 나와 아내는 마음을 홀라당 빼앗겨 버렸다. 우리는 돌아오는 경의선 전철 안에서 우리집을 내놓았고 단 세 시간만에 계약으로 이어졌다. 그 돈으로 우린 덜컥 시골집을 계약해 버렸다. 이 모든 일이 겨우 3일간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진우연우 그리고 아빠 엄마의 막무가내 시골살이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이 집을 처음 봤을 때는 내외부 단열공사가 한창이었다. 단독주택에서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 중 하나가 난방비일 것이다. 이곳은 아직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고 기름보일러나 엘피지 가스보일러를 쓰기 때문에 난방유지비가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집주인이 새로 난방공사를 해 주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이 집의 기본구조만 파악할뿐 어떤 집인지도 몰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실제로 주택에 살아보지 않고 한 무모한 도전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사를 한 후 아이들은 이 집을 너무나 좋아했다. 안으로 된 2층집에다가 마당은 어찌나 넓은지 아이들과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이사 가기 전 진우에게 이사간다는 사실을 알려줬을 때 진우는 어린이집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사실에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 부부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집이 진우에게 더 큰 선물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이사를 강행했다.


천만다행으로 이사갈 집을 보고 난 진우는 언제 울고불고 했는가 싶을 정도로 이 집을 좋아했다. 이사 후에는 새로운 어린이집에 잘 적응했고 2층집의 재미와 마당이 주는 놀잇감들을 즐겼다. 번갯불에 콩구워 먹듯 내린 결정이었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기로 한 이곳은 서울에서 벗어나 시 경계를 두 번이나 넘어야 하는 곳이다. 집 주변에는 그 흔한 편의점이나 슈퍼 하나 없다. 집 앞은 그냥 너른 논이다. 초봄에는 개구리 소리에 시끄럽고 모기며 진드기며 벌레들이 무단 동거하자고 덤비는 시골이다. 여름에는 모기가 많고 겨울에는 아파트보다 춥지만 그런 건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단점이 주는 잠깐의 불편함보다 일상이 주는 행복감에 더 큰 의미를 주고 싶다. 아직까지 완벽한 곳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조금 걸어나가거나 차로 가면 금방 도시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어서 아주 깡촌은 아니다. 어쨌건 시골로 이사하는 것은 지금까지 도시가 주던 편리함을 거의 대부분 포기해야 하는 일이다. 전세금이 싼 이유도 있지만 이렇게 외곽으로 나오지 않으면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없는 우리나라 주거문화도 한몫했다. 남들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입학 때가 되면 도시로 나온다고 하는 데 너는 거꾸로 시골로 가는 게 말이 되냐는 부모님의 핀잔도 들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려는 이러한 노력은 사실 행복한 나를 위한 노력이라는 점이다. 육아의 주체는 엄마와 아빠다. 엄마와 아빠가 행복해야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고 그래야만 행복한 아이로 키울 수 있다. 인위적이고 금전적인 방법으로 가능한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 시골살이도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 부부가 이런 생활을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아이들을 위해 주택살이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선택하는 주택살이는 어쩌면 부모자신들에게는 고통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부모 스스로가 주택살이를 즐길 수 있어야 모두가 행복한 주택살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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