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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Jan 16. 2018

아빠가 똥마려!

부자여행:인천편#12

작은 책방을 나오니 한두 개의 책방이 문을 열고 아침 청소를 하는 중이었다. 


규모는 엄청 컸고 책도 다양했다. 진우도 나도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기 위해 떨어졌다. 각자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고 책값을 치루는 카운터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나도 한참을 책을 골랐다. 책의 가치를 알아보는 주인이라면 책값은 비싸고 그렇지 않은 주인은 그저 정가의 몇 분의 일 정도로 값을 매겨 버리기 때문에 나는 헌책방에 올 때면 책방 주인이 책의 가치를 몰라주는 주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행이 이번에 고른 책도 수 년이 지난 책이지만 주인이 책의 가치를 몰랐던지 이천원의 싼 값에 두어 권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우가 고른 학습만화는 내 책보다 두 배는 비쌌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른 탓인지 기분 좋게 책값을 지불하고 우리는 헌책방을 나섰다. 그러고 나서도 두 군데를 더 들어갔지만 신통치는 않았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달동네 박물관으로 향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까지는 1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곳이었다. 우리 발걸음이면 십오 분 정도면 될 것같아 또다시 걷기로 했다. 이른 시간에 숙소를 나섰지만 헌책방에서 시간을 보낸터라 시간은 오전을 거의 지나치고 있었다. 햇살은 또다시 뜨거워지고 있었다.


헌 책 몇 권에 무거워진 가방을 메고 아침도 먹은 탓이라 몸은 무거웠다. 아침에 큰 볼일도 보지 못하고 출발한지라 걷다보니 아랫배에서 신호가 왔다. 아직 박물관까지는 십 분 이상 더 걸어야 했다. 처음엔 미약하게 화장실을 가야겠다는 무의식이 의식에게 신호를 보내 왔지만 몇 분 간격으로 그 신호는 강력했고 거세게 아랫배를 공략했다. 적어도 오 분은 더 걸어야 했고 박물관은 그 이름처럼 달동네에 있었다.


달동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에 재건과 개발의 열풍이 몰아칠 때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들은 개발과 정비의 혜택을 보면서 이전보다 나은 환경을 찾아 갔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한 뼘의 땅도 없고 집도 없는 가난했던 사람들이 모였던 곳이 바로 달동네다. 가진 것없는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산이었다. 그래서 산으로 산으로 점점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늦으면 더 높이 올라가야 했다. 달동네는 높은 산에 위치한 동네로 달이 잘 보인다는 뜻이 있다. 1980년 텔레비전 일일연속극 ‘달동네’라는 방송이 나오고 나서 달동네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곳이 달동네였으니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도 그런 위치에 만들어졌다. 높이 올라갈수록 몸에 가해지는 중력은 커졌고 몸 안의 배설물은 중력에 거스르지 못하고 내려오려고 아우성이었다.


내 속사정을 알리없는 진우는 덥다, 힘들다, 업어달라, 천천히 가자를 고장난 라디오처럼 되풀이했다. 난 처음에는 진우의 말에 일일이 대꾸해 줬지만 한계에 다다르면서 대꾸는 커면 무한히 빨라지고 있는 내 다리를 느꼈다.


“진우야, 아빠 똥 마려. 빨리 가야되. 힘들어도 빨리 걷자. 응?”

“아유 힘들어요. 천천히 가요.”


지금 천천히가 나오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내겐 없었다. 처음 가는 길이었지만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본능적으로 박물관을 향해 뛰다시피 걷고 있었다. 본능은 원래 그런건가 보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섰을 때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땀은 삐질삐질 나와 몸은 서늘해진 기분이었다. 건물을 뛰어 들어가 화장실부터 들어갔다. 그 전에 진우에게 아빠 화장실 다녀올테니 절대로 어디가지 말고 화장실 앞에 있으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불과 일 분 사이에 지옥과 천국의 경계를 넘은 나는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며 화장실을 나왔다. 진우는 내 말대로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 중에 야외화장실을 이용하는 경우 아이들이 어디론가 가버릴까봐 걱정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는데 생리현상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아이가 어릴수록 이 문제는 작지 않을 것이지만 초등학교 2학년 정도 되니 큰 문제는 없어서 다행이었다. 별거 아닌 똥 얘기일수도 있지만 혼자몸이 아닌 경우에는 무척이나 신경쓰이는 문제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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