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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Jan 17. 2018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부자여행:인천편#마지막

맑고 가벼운 정신에 들어선 박물관 내부는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다. 


아니 조금 추울 정도였다. 땀에 젖은 몸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박물관에는 이미 마을 주민들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시원해서기도 하겠지만 박물관 내부가 아기자기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박물관이 근처에 있다면 자주 오고 싶을 정도였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에서 수도국산이란 원래 만수산 혹은 송림산이었는데 소나무가 송현동과 송림동이 여기에 유래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물이 부족했던 인천지역의 물확보를 위해 1906년 통감부는 탁지부 산하에 수도국을 신설하고 공사에 착수하였다. 수도국산이라는 명칭은 1909년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를 벌인 뒤에 산꼭대기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자가 생기면서 산 이름이 아예 수도국산으로 바뀌게 되었다. 아름다운 만수산과 송림산이라는 이름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이름은 빼앗겼지만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잘 재현되어 있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솜틀집, 연탄집, 이발관, 잡화점이 실제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골목골목 이어지는 재미난 풍광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무척이나 시원하기까지 하니 금상첨화였다. 골목에 서 있는 전신주에는 ‘반공방첩’의 붉은 글씨가 찍혀 있고 무시무시한 반공포스터와 문구들이 붙어있었다. 달동네 주민들이 함께 먹었을 법한 마을 우물도 있었고 물통을 둘러멜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진우도 물통을 메봤지만 너무 무거워 물통은 빼놓고 물지게만 지고 사진을 찍었다. 이뿐만 아니라 무시무시한 빨간 전구를 끼워놓은 푸세식 화장실이 공포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 먼 옛날도 아닌데 어찌 저렇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지금과 많이 차이가 났다. 아빠인 나는 조금 경험해 보았고 아들 진우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옛 모습이었다.


이 시절만 하더라도 닥지닥지 붙어 있는 주택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처럼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길 줄도 몰랐고 또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주택형태가 될지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옛 주택가의 골목은 차도 다니지 못할 정도로 좁아서 아이들은 사고 걱정없이 마음껏 뛰어 놀고 추억할 거리들을 만들었다. 놀이로만 보면 우리 어릴 때가 요즘 아이들 보다 훨씬 다양하고 즐겁게 놀았던 게 확실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노인네같은 소리라고 할지 몰라도 지금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어쩐지 획일화된 모습뿐이다. 아파트가 병풍처럼 놓여있고 그 가운데 덩그러니 만들어진 놀이터에는 놀이터가 생긴 모습대로 뛰노는 아이들만 있다. 미끄럼틀과 시소, 그네에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줄을 서있고 놀이터 바닥에 모래가 사라진지 오래다. 아이들 스스로 창의적인 놀이를 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주위에 화단이 잘 정비되어 있지만 그 앞에는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쓰여져 있다. 아이들은 꽃을 보기만 하지 만지거나 냄새 맡거나 맛 볼 수 없다. 들어갈 수 없으니까. 하지만 옛날엔 꽃들이 지천으로 폈고 누구나 꺽거나 먹거나 자유롭게 꽃을 접하고 이름을 접하고 또 손톱에 물도 들이고 놀았다. 획일화된 주거문화가 바꾸어 놓은 우리네 풍경이다. 문화와 전통의 변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러한 변화 자체가 너무 인위적이고 재화의 가치를 높이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점에서 나는 조금의 반감을 갖고 있을 뿐이다.


박물관 구경의 끝은 기념품 가게로 이어졌다. 달동네 박물관인 만큼 기념품들의 면면도 참으로 다양하고 각양각색이었다. 못난이 인형부터 옛날에 쓰던 크레파스며 불량식품, 주판, 옛날 전화기, 옛날 인형 등등 작은 소품들이 귀엽게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진우에게 지난번 여행처럼 집에 있을 연우와 엄마를 위한 선물을 고르라고 했다. 진우는 자기가 갖고 싶은 팽이를 선물로 골랐다. 플라스틱 팽이에 플라스틱 톱니가 난 줄을 끼워 당기면 원심력과 구심력 때문에 넘어지지 않는 팽이였다. 손가락 위에서도 잘 돌고 줄 위에서도 잘 도는 신기한 팽이였다. 자기가 갖고 싶어 고른 선물을 하나만 사면 집에가서 진우가 서운할 것같아서 오늘은 특별히 두 개를 사기로 했다. 대신 집에 가서 연우랑 같이 뜯어보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특별히 엄마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엄마 어린 시절에 유행했던 불량식품이었다. 진우는 그게 무슨 맛인지 상상도 못하겠지만 내 조언으로 엄마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샀다.


기념품 가게를 지나 2층의 전시장으로 이동했다. 2층에는 옛날 기계와 각종 상점들이 재현되어 있었다. 사진관에서는 옛 고교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옛날 어머니들이 모여 김치 담그는 모습을 재현한 인형들도 있었다. 그리고 배다리 헌책방 거리처럼 조그마한 헌책이 진열된 곳도 있었다. 박경리책방이라는 간판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잠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작은 서가와 함께 마련되어 있었다. 또 우리 문학사에서 의미있는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 있었는데 진우가 그걸 보더니 나를 불렀다.


“아빠. 잠깐만요. 가방 좀 열어보세요”

“왜”

“잠깐만요”


그러더니 내 가방에서 책 한권을 꺼냈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읽을 요량으로 가져온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였다.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진우가 책을 들고 따라오란다. 진우가 안내한 전시장 안에는 내가 가져온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가 전시되어 있던 것이었다. 우와! 신기하다. 우리는 서로 웃었다. 여기에는 이 외에도 봉순이언니, 상실의 시대, 태백산맥 등 몇 권이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무그늘도서관이라고 명명된 박물관 내 도서관에서 몇 권의 그림책을 읽은 진우와 다시 길을 나서기 위해 내려왔다.

시원한 박물관의 끝에서 뜨거운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우리 몸은 여전히 땀으로 젖은 상태였다. 그냥 나가기 아쉬워 박물관 입구에 마련된 벤치에서 조금 쉬다가기로 했다. 주민으로 보이는 할머니도 쉬러 오신 모양으로 벤치에 먼저 앉아계셨다. 우리가 박물관 입구에서 쉬고 있을 때 박물관 안내사로 보이는 여자분이 진우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박물관 다 봤어?”

“네”

“어이구 옷이 다 젖었네. 밖에서 놀았어?”

“아뇨. 걸어왔어요.”

“그래? 아빠랑 여행왔어?”

“네, 아빠랑 둘이서 여행 중이에요”

“와. 좋다. 아침 일찍 출발했나보네 이렇게 젖은 걸 보니”

“네, 어제 아침 일찍 출발했어요.”

“멋지다.”


박물관 직원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하는 진우를 대견하게 내려다 보았다. 진우의 뉘앙스는 우리는 여행자고 오늘 아침 일찍이 아니라 어제 아침 일찍부터 여행을 하고 있노라고 자랑하는 것이었다. 여행이 진우에게 알 수 없는 뿌듯함과 자신감을 주고 있는 인상이었다.


오전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우리는 다시 동인천역으로 향했다. 동인천역도 인천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규모였고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전철 안도 마찬가지였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은 진우는 책부터 꺼내 펴들었다. 아까 헌책방에서 구입한 만화책이다. 나도 덩달이 책을 꺼냈다. 오늘은 어제 우리가 온 길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서울에 있는 할머니댁에 가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가는 내내 우리는 말없이 책만 읽었다.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몇 차례 여행이 계속되었다. 진우는 2학년이 되었고 겨울이었던 계절은 봄을 지나 뜨거운 여름햇살에 늘어지고 있었다. 무심코 떠난 여행은 계절이 변하듯 장소를 바꿔 세 번째로 이어졌다. 가능할까하는 의구심에 두렵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던 여행이 세 번까지 이어지면서 우리는 여행에 대한 두려움보다 여행 그 자체의 즐거움과 여행이 주는 자신감으로 성장하고 단단해지고 있었다.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도 진우는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진우와 나는 아빠와 아들만의 쫀쫀한 우정과 의리 그리고 힘을 합쳐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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