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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Feb 13. 2018

제주도 북촌의 한적한 게스트하우스

부자여행:제주편#05

다시 렌트카에 올라 숙소로 방향을 잡았다. 


제주 시내를 빠져나오자 길은 한산했다. 관광시즌이 아니어서 그런지 주변의 렌트카들도 많이 보이지 않았다. 저녁도 먹었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오늘 저녁엔 뭘하고 놀까를 생각했다.


“진우야. 오늘 저녁에 아빠랑 둘이서 파티할까? 조촐하게”
“둘이서 무슨 재미로 파티해요. 파티는 사람들이 많아야 재밌죠.”


하긴 둘이서 하는 파티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그래도 나는 제주까지 왔으니 진우랑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제안한 건데 단칼에 거절을 당하니 조금은 민망했다. 파티가 아니라면 뭘하지. 유흥을 즐기지 않는 여행지에서의 밤은 생각보다 길다. 우리가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는 공식적인 파티도 없는데. 그냥 파티하는 곳으로 갈껄 그랬나 하는 회의가 들 무렵 네비가 안내를 종료했다.


게스트하우스 위치는 이미 인터넷지도를 통해 온라인답사를 했던지라 대충 짐작하고 있었지만 마을 입구에서 게스트하우스까지 통하는 길은 생각했던 것보다 좋았다. 제주의 낮은 돌담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그야말로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제주의 마을임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마을길은 자동차 하나정도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었지만 그렇게 구비구비 이어져 있는 골목길은 자동차의 불빛으로 보아도 정겨웠다. 어서 내려 걷고 싶은 골목이었다.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서 갑자기 커다란 공터가 펼져졌다. 그 공터의 한 편에 우리의 숙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른 차를 주차하고 밖으로 나와 근처에 있을 바다 냄새를 음미했다. 멀리서 파도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가로등 하나에 의지한 채 둘러본 마을 풍경은 아늑했다.


와 좋다. 진우야 정말 좋지. 여행자 특유의 흥분에 찬 웅성거림을 들었는지 호스트로 보이는 여성분이 뛰어나와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런데 그 여성분은 생각보다 젊었다. 아니 생각보다 젊은 게 아니라 그냥 젊은 여성이었다. 이런 시골 게스트하우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좀 의아했다. 사연 없는 사람 어디 있겠냐만은 어떻게 저렇게 젊은 사람이 이런 곳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곳 게스트하우스는 제주 시내와 많이 동떨어져 있었고 굽이굽이 옛 전통마을의 끝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젊은 호스트의 안내를 받아 방을 배정받았다. 4인실과 6인실이 있는 곳인데 오늘은 우리 부자를 위해 4인실을 내주셨다. 다른 게스트도 있었는데 함께 배정하지 않고 서로 다른 방을 배정해 준 것이다. 보통 게스트들이 소수일 경우엔 청소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한 군데로 몰아줄 때가 많은 데 이곳은 게스트 한 사람 한 사람 신경 써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방을 안내받고 물품보관함 사용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데 또 다른 여성분이 나타났다. 역시 호스트로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였다. 능숙한 말솜씨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아마 자전거 때문에 전화를 했던 분이 이 분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 분이 맞았다. 새로운 호스트의 등장으로 젊은 호스트의 정체가 이해되었다. 두 사람은 얼핏 보기에 모녀관계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둘의 대화를 들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이제 젊은 여성의 정체가 더 궁금해졌다.


호스트는 우리를 이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엔 너른 카페가 있었는데 바다쪽으로 전면 유리창이 있어 전망이 좋았다. 호스트는 이곳을 놀이방이라고 하였다. 아침식사뿐 아니라 하루종일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거나 쉴 수 있고 저녁에는 게스트들이 자유롭게 술과 음식을 가져와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듣고보니 이곳은 그냥 놀이터였다.


대강의 게스트하우스 이용 설명을 한 다음 마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전화로 얘기했던 자전거 때문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성인용 자전거는 진우가 탈 수 없을 만큼 컸다. 그리고 호스트가 우리 진우를 위해 마련해 준 자전거 역시 진우가 타기엔 커 보였다. 진우에게 타보라고 했다. 페달은 발에 닿았지만 땅에는 닿지 않았다. 너무 크지 않냐는 내 회의적인 질문에 진우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 아니라고 대답했다. 내게는 큰 문제로 보여진 것이 진우에겐 오히려 도전해 볼 만한 것으로 보인 모양이다. 오히려 진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자전거라며 꼭 타보고 싶다며 좋아했다. 밤이 어두우니 자전거는 내일 타기로 하고 진우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숙소에 가방을 풀어놓고 진우와 나는 맨먼저 바닷가로 가보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바다를 내려다 봤지만 가보진 않았으니 제주에서 첫 바다를 아직 접하기 전인 것이다.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진우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진우도 어서 바다를 보고 싶었는지 약간 흥분한 듯 팔을 들썩거렸다. 바람 많은 제주에서 맞는 겨울 바람이었지만 파주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어쩌면 약간의 온기마저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12월 말 가장 추운 계절의 한가운데서 온기를 느끼는 것이 어색했지만 제주에 대한 첫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진우와 손 꼭 맞잡고 걷고 있으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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