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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Mar 03. 2018

제주도 세화시장 국밥과 성산일출봉

부자여행:제주편#10

내려갈 때는 올라오는 몇몇 사람들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여행자의 열린 마음과 내려가는 자의 여유를 한껏 부리며 천천히 내려갔다. 올라오는 사람들도 웃으며 내 인사에 응대해 주었다. 주차장에서 놀고 있던 진우는 나를 보자 물을 달란다. 차에서 초코릿과 물을 꺼내 주고 잠시 쉬었다. 우리가 주차장에서 쉬는 잠깐 동안에 차는 두어 대 정도 더 들어왔다. 배고프다는 진우를 차에 태우고 세화시장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세화시장 장날이라고 했다. 점심은 언제나 현지 시장에서 먹었기 때문에 진우는 점심으로 뭘 먹을건지 묻지 않았다. 대신 몇 시냐고 시간을 물었다. 점심 시간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진우는 내 대답을 듣더니


“친구들은 방학식 했겠다”


학교에 있는 친구들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 시간이 아마도 수업이 끝나고 방학식을 마쳤을 시간이라는 것이다.


“학교 가고 싶었어?”

“아뇨. 뭐 꼭 그렇다기 보다 방학식을 못가서 아쉬워요”

“방학식 별거 없어. 그냥 방학숙제 나눠주고 땡이야”

“그래도요. 방학식을 안하면 전 방학이 아니잖아요”


하긴 방학을 정식으로 시작하는 방학식을 하지 않았으니 진우의 방학은 요원했다. 원칙과 규칙을 중시하는 진우여서 아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세화시장에 도달했다. 커다란 가건물처럼 생긴 지붕 아래 많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구석에 국밥집이 있었다. 열대여섯 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는 큰 규모의 식당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식당 문 앞에는 너댓 사람이 빈자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먹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주도 사람들처럼 일상적인 복장이었고 간간히 관광객 차림의 사람들이 끼어 있었다.


자리는 금방 났다. 빽빽한 식당 맨 안쪽의 구석진 두 자리에 몸을 구겨 넣었다. 국밥 두 개 주세요. 메뉴는 다양했지만 우린 그냥 국밥을 시켰다. 이 식당의 대표적인 음식이었을텐데도 음식은 시간이 걸려서야 나왔다. 자전거도 탔고 오름도 올라 허기진 우리는 정말 맛있게 국밥 한 그릇을 비웠다. 늘 같은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이 집 국밥도 정말 맛있었다.


배를 채우고서 우린 천천히 시장을 둘러보았다. 진우나 나나 딱히 살 건 없었지만 그냥 시장구경이 재미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건 한겨울에 채소 모종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꽃 피고 새 지저귀는 춘사월이나 되어야 육지에서는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데 제주에선 12월 말에 모종이라니. 그 외에도 각종 농기구들이 좌판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역시 해산물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고 흙 가득 묻은 싱싱한 채소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계절을 의심하게 하는 품목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시장을 나와 우린 성산일출봉을 향해 차를 몰았다. 일출봉에 가까울수록 차가 많아지더니 주차장 인근엔 체증까지 생겼다. 주차를 하고 일출봉 입구에 다다르니 한창 축제공연이 준비되고 있었다. 내일이 올해의 마지막날이라 연말연시 축제가 오늘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일출봉 왼쪽의 너른 잔디밭에 커다란 무대가 만들어져 있었고 리허설인지 실제 공연인지 모를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무대를 중심으로 크게 디귿자 모양으로 천막이 세워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어묵 같은 간식류를 팔고 있었다.


성산일출봉은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답게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진우와 나도 사람들 틈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우린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바다도 구경하면서 천천히 쉬엄쉬엄 걸었다. 내가 천천히 걷자 제주도 천천히 움직였다. 내가 제주를 보자 제주가 나에게 제주를 보여주었다. 구름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과 그 햇살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연두빛 풀들이 아름다웠다. 예전 일출봉을 오를 때 기억나는 거라곤 바닥과 계단 그리고 정상에서 내려다 본 제주의 일부였는데 오늘은 달랐다. 일출봉엔 오르지 않았지만 일출봉의 곳곳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하루 사이에 제주를 대하는 내 생각은 크게 변하고 있었다.


일출봉에서 내려와 간식 사달라고 조르는 진우의 입에 회오리감자를 물려 주고 차를 몰았다. 최근에 생긴 어느 잡화점에 들렀다. 딱히 살 건 없었지만 관광지에서 다소 떨어진 마을의 민가를 얻어 아주 조그만 잡화점을 낸 젊은이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어서 찾아간 것이다. 대여섯 평 정도 돼 보이는 잡화점은 천정도 낮아 더욱 좁게 느껴졌다. 각종 기념품과 악세사리를 팔고 있는 이 곳은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가게임에는 틀림없었다. 도시 어느 곳에서나 잡화점은 있지만 이런 잡화점을 만날 수는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부분의 물건들이 수제품이거나 해외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희소한 것들이었고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조막만한 캐릭터 상품들이 즐비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젊은이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만들어 낸 잡화점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이런 상상력이 좋다. 마음에 든다. 내가 잡화점 이곳저곳을 천천히 누비며 다니는 동안 진우는 한 쪽 귀퉁이에 마련된 옛 오락기에 엉덩이 깔고 앉아 비디오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별거 아니었지만 우리 둘 모두 만족할 만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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