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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Mar 02. 2018

제주도 지미오름, 처음 오름

부자여행:제주편#09

왔던 길을 되짚어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을 땐 호스트가 청소를 하고 있었고 게스트들은 없었다. 


진우와 나도 자전거를 세워두고 헬멧을 벗어둔 다음 렌트카에 올랐다. 자전거를 더 타고 싶다고 졸라댔지만 점심도 먹어야 했고 호스트가 알려준 오름에도 가보고 싶어 진우를 설득했다. 산에 가보자. 조금만 가면 오름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올라가서 제주도를 내려다 보자. 활동적이고 도전적인 걸 좋아하는 진우가 금방 그러자고 따라주었다.


지금 가려는 오름도 호스트가 알려준 곳이다. 제주에 몇 번 왔지만 오름에는 한 번도 올라가보지 못했다. 산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 덕분이기도 했지만 제주까지 와서 무슨 산이냐는 타박을 들을까봐 그 전에는 말도 못했었다. 이번에는 진우가 동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우와 나는 통하는 구석이 참 많다. 그래서 더 좋다. 원래 내가 호스트에게 물었던 것은 일출을 보기 좋은 장소였는데 그 때 호스트는 지미오름을 추천해 주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제주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가는 곳은 일출봉 근처의 동쪽 편이라고 했다. 이곳 지미오름은 일출도 좋지만 제주의 예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서 꼭 한 번 가보라고 했다. 얼마나 예쁘면 저렇게 말씀하실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즉흥적으로 결정한 방문지였다.


차로 이십 분 정도를 달리자 오름이 나타났다. 이 오름이 신기했던 것은 지면에서 오름 부분만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다는 것이다. 다른 오름에는 가보지 못해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지미오름은 신기하게 그렇게 생겼다. 높이도 낮지 않았다. 지미오름 입구에는 조그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차를 주차하고 올라갔다. 주차장과 입구가 바로 붙어 있는데다 입구부터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입구에는 ‘정상까지 400미터’라는 말뚝이 박혀 있었다. 사백 미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진우가 나를 앞서 먼저 오르기 시작했다.


400미터의 거리가 평지였다면 별 어려움없이 도달했겠지만 지미오름의 경사는 생각보다 가팔랐다. 두텁게 입은 외투 덕분에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앞서가던 진우도 지쳤는지 벤치에서 나를 기다렸다. 중간에 마련된 의자에서 외투를 벗고 물을 마신 다음 다시 걸었다. 중간에 나타난 이정표는 “정상까지”라는 부분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깨져서 떨여져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정상까지는 얼마나 남은 건가. 알 수 없으니 약간의 짜증도 났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부러져 사라진 이정푯말에서 잠시 쉬어가려고 몸을 틀었다. 그 순간 탁트인 하늘과 넓고 푸른 바다가 드러났다. “우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많이 올라 온 것은 아니었는데 그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세상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뒤따라오던 진우에게도 잠시 쉬면서 아래를 내려다 보라고 했다. 이런 맛에 산에 오르는 모양이다.


오름의 절반 이상을 올랐을 뿐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이 보인다면 저 정상에서는 어떨까하는 기대감이 커졌다. 하늘을 가렸던 아름드리 나무들도 사라지고 바람까지 불어와 그리 덥지도 않았다. 지칠줄 모르는 진우가 오늘은 왠일인지 나보다 먼저 지쳐서 뒤따라 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정상에 올라가 기다리기로 했다. 정상은 말그대로 ‘갑자기’ 나타났다. 나무들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진 가파른 경사로가 평지가 되는 순간 그곳이 정상이었다. 키 큰 나무도 없었고 작은 풀들만 정상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정상에 올라서면 내 머리가 가장 높은 정상이 되는 곳이었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다른 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다른 산들의 정상들이 원뿔처럼 펼쳐지지만 이곳 오름의 정상은 사방으로 평지를 볼 수 있다. 이런 정상을 오른 것도 처음이지만 내려다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제주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정확한 지명은 알 수 없지만 군데군데 모여있는 마을들의 지붕들은 주황색, 빨강색, 노란색, 파랑색 등등 색색의 조각들처럼 보였다. 12월 한겨울의 제주였지만 남쪽 끝이라 그런지 대지는 초록색으로 덮여 있었고 그 위에 얹혀 있는 주택들은 잘 조화되어 있으면서 예쁘기까지 했다. 호스트의 칭찬은 과찬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곧 해변이 나오고 그곳에서 조금 더 바다쪽으로 눈을 돌리면 우도가 보였다. 손을 뻗치면 닿을 것 같은 섬이었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일출봉이 위용을 뽐내고 바다 위에 앉아있다. 이처럼 다채로운 모양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처음으로 오름에 올랐지만 오름이 주는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사방으로 트여있는 멋진 풍광을 보면서 감탄도 하고 땀도 식혔다. 진우는 크게 볼 게 없었는지 내려갈 때는 먼저 가겠다며 사라졌다. 어디가지 말고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라고 소리쳤는데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도 없는 지미오름 정상에서 조금 더 바람을 맞고 진우를 따라 나도 내려갔다. 제주에서 한 새로운 경험에 가슴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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