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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Mar 15. 2018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파티

부자여행:제주편#12

짐을 풀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2층 놀이방으로 올라갔다. 


치킨에 맥주를 마주한 테이블 하나와 과자와 맥주를 마주한 테이블 하나에 앉은 네 명의 여행객들은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놀이방의 한 가운데에 있는 테이블에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진우를 위한 과자와 나를 위한 회 한 접시 그리고 소주 한 병. 오늘은 우리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매번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어서 출발하는 날 밤이 첫 날 밤이면서 마지막 날 밤이었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 지 모르게 흘렀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다른 게스트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만두었다. 나는 나대로 진우와 함께였기 때문에 굳이 다른 사람이 필요하진 않았다. 지금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아마 가족이었을 것이다. 휴대전화의 영상통화를 켰다. 파주에 있는 아내와 연우를 연결했다. 아빠가 없어도, 형이 없어도 연우는 씩씩하게 엄마와 있었고 전화 연결 직후 연우의 첫 마디는 “나도 여행 가고 싶어요”였다. 나도 그러고 싶다. 연우가 조금만 더 크고 어디서나 밥을 잘 먹는 날이 오면 꼭 연우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고 싶다. 진우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연우에게도 해주고 싶다. 그리고 연우와 나만의 추억도 꼭 만들 것이다. 진우와 연우 그리고 내가 떠나는 여행도 하고 싶다. 아마도 그날은 아내에게 선물같은 날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잠깐은, 아주 잠깐 동안의 이별도 나쁘지 않다. 집안일과 육아에 힘들었을 아내를 위해서라도 아이 둘만 데리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이렇게 떠나는 여행이 아내만 빼놓고 즐겁게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아내도 좋아할 수 있는 여행을 다니고 싶다. 물론 아내와 함께 떠나는 가족여행도 간간이 다닐 것이다.


영상통화를 마치자 진우는 어제 읽던 책을 가져와 안락의자에 몸을 구겨 넣고 아주 편한 자세로 책에 집중했다. 덕분에 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책에 집중한 진우를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회 한 점과 소주 한 잔에 행복했다. 그리고 뿌듯했다.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여행을 처음으로 갔던 날부터 지금까지의 여행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때 호스트가 놀이방에 올라와 우리에게 귤을 나눠주었다. 그러고는 몇 가지 정리할 것들이 있었는지 주방에서 부산하게 일을 했다. 소주병의 소주가 거의 사라질 때쯤 호스트는 놀이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공지를 하나하고 내려갔다.


“내일 밤엔 조촐한 파티가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라 추억할만한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아주 적당량의 술과 안주를 준비할 예정이니까 꼭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더 드시고 싶으신 분들은 사오셔도 됩니다만 많이 드시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그 소리를 들은 진우는 무척이나 파티에 참석하고 싶어했다. 하루만 더 여기 있으면 안되냐고 성화였다. 사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예정된 날짜로는 불가능했고 집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남은 가족이 있었다. 그걸 상기시켜 주고 우리도 집에 가서 멋진 파티를 하자고 했다.


회접시와 빈병을 치우고 사용한 식기를 세척해 두고 바람이나 쐬려고 마당에 나갔다. 늦은 시간이었는데 자가용 한 대가 게스트하우스 앞에 주차하더니 사람들이 내렸다. 어른 두 명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두 명. 네 식구가 온 것 같았다. 아줌마와 아이들은 숙소로 휭하니 들어가고 아저씨만 남아 담배를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를 발견한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 묵으세요?”

“네. 지금 오시나봐요?”

“네. 늦게 출발했는데다 저녁 먹고 오느라 더 늦었네요”


아저씨는 매년 이맘때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호스트와 자기의 아내가 친구란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이곳에 올때마다 아이들과 한라산을 올라갔는데 이제는 정례코스가 되었다고 했다. 아까 휭하니 들어간 키 큰 학생들은 둘 다 중학생이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다녔는데 그 때는 힘들어하더니 지금은 아주 잘 다닌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주었다. 나도 우리 얘길 잠깐 했지만 술도 마셨고 피곤하기도 해서 말을 길게 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 아저씨도 내일 새벽에 출발해야 해서 오늘은 일찍 자야 한다고 들어갔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금방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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