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여행:제주편#13
좀 더 바람을 쐬고 방으로 들어오니 진우가 벌써 침대에 누워 있었다.
피곤하단다. 알았다고 하고 내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 눈을 떴는데 아침이었다. 빛처럼 빠른 속도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진우보다 내가 먼저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니 진우가 깨어 있었다. 아침식사가 준비되었을 시간이라 놀이방으로 올라가자고 했더니 진우가 아침식사를 거부한다. 빵 먹기 싫다는 게 그 이유였다. 집에서도 가끔 아침식사로 빵을 먹는 우린데 갑자기 빵을 먹기 싫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일단 나만 아침을 먹었다. 여행 중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많이 허기지고 여행도 망칠 수 있어서 왠만하면 강권했겠지만 오늘은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게 놔두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서 배가 고프면 그 때 알 수 있으리라 하고 말이다.
우린 다시 옷깃을 여미고 자전거에 올랐다. 어제와는 반대 방향으로 자전거를 탔다. 오늘의 목적지는 함덕서우봉해변이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진우가 배가 고프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다행인지 곧 편의점이 오아시스처럼 나타났다. 규모도 작지 않았다. 조그만 리조트의 안내데스크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거기서 진우는 삶은 계란과 우동을 집어 들었다. 아침 식사치고는 과했지만 배가 많이 고팠을 진우를 생각해 모두 사주었다. 그러면서 아침은 꼭 먹으라고 알려주었다.
헬멧도 벗지 않고 계란 먼저 까먹었다. 그 사이 나는 영상통화로 아내에게 진우의 아침식사 모습을 생중계 했다.사정을 모르는 연우는 자기도 우동을 사달라고 성화였다. 진우는 계란과 우동 모두 비운 다음에야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달렸다. 본격적인 두 번째 자전거여행이 시작되었다.
함덕서우봉해변은 에메랄드빛 바다로 유명한 곳이었다. 전국자전거종주 인증센터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우리와는 별 상관없었다. 해변 모래는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하얗고 깨끗했다.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들이 해변을 거닐고 있었고 어디서 왔는지 새하얀 진돗개 두 마리가 신나게 뛰어 다니고 있었다. 흰 모래 색과 비슷해서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데도 바닷물은 맑고 예뻤다.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을 이곳에서 진우와 단둘이 손 꼭 잡고 걸으니 참 좋았다. 진우가 언제까지 내 손을 이렇게 따뜻하고 단단하게 잡아줄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바람이 차서 진우 손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저 멀리 검은 물체를 발견하자마자 내 손을 팽개치고 진우는 뛰어 갔다. 뭔지 모를 물건을 갖고 바닷가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 놀았다. 진우는 진우대로 나는 나대로 해변을 즐겼다. 나는 모래사장에 “부자여행 최고”, “최진우 사랑해”라고 쓰면서 좀 유치한 짓을 했지만 진우는 좋아했다. 기념사진도 찍고 한참을 해변에서 어슬렁거렸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제주를 맘껏 보고 만지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