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보영 Mar 22. 2018

아빠의 자전거여행 그리고 제주도

부자여행:제주편#14

사실 내게 제주는 관광지라기 보다 여행지로 처음 다가왔었다. 


풋풋했던 20대 중반 텐트하나 코펠하나 달랑 둘러매고 떠난 자전거여행의 마지막 코스가 제주도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대한민국이 들썩거렸던 그해 여름, 대한민국이 4강 진출이라는 기염을 토했던 그 짜릿한 경험을 뒤로하고 대학을 졸업하기 전 마지막으로 자전거여행을 떠났다. 남자동기 하나, 여자후배 하나. 그렇게 셋이서. 원래는 혼자 떠날 계획이었는데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껌딱지가 둘이나 붙어버렸다.


일정은 15박 16일. 광화문에서 출발해 해남까지 내려간 후 제주를 한바퀴 크게 돌고 다시 부산으로 나와서 부모님이 계시는 경주까지가 자전거여행의 코스였다. 여비는 하루 만원. 총 15만원으로 예산을 잡았다. 자전거여행은 그 특성상 큰 돈이 들지 않는다. 아침과 저녁은 직접 해먹고 이동중인 점심만 사먹으려고 했다. 당시 일반적인 기사식당의 한끼 식사가 4천원 내지 5천원이었으니 그리 무리한 예산은 아니었다. 잠은 4일 혹은 5일에 한번씩 모텔이나 여인숙에서 씻을 겸 잘 계획이었다. 당시 하루 숙박비가 1.5만원 2만원이었고 여인숙은 1인당 5천원 정도였다. 물론 지방의 작은 기차역 인근이 그랬다. 어차피 숙박은 2번만 계획했으니 전체 예산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리라. 나를 포함해 우리 셋 모두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썩 일어나는 주당들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절주하기로 했다.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여행 그 자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술은 꿈도 못꾸었다. 저녁밥만 해 먹고 눕기만 하면 아침이었으니 말이다.


여기서 다 풀어놓지 못할 만큼 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간신히 제주에 입도한 날은 여행 일주일째였다. 하루가 다르게 까맣게 변해가는 피부가 여행일수를 말해주듯 제주로가는 배에서 만난 자전거여행족들의 피부색은 다양했다. 우리보다 더 까만 선배여행자도 있었고 제주가는 배에서 여행을 시작하는 햇병아리여행자도 있었다. 대충 행색만 보아도 자전거여행자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린 이심전심으로 배에서 만나 각자 여행계획을 나눴다. 각자의 가방에서 여행지에서 얻은 다양한 먹거리 인심을 풀어놓고 함께 했다. 제주를 해안도로 한바퀴와 한라산 중반의 순환도로로 한바퀴, 이렇게 두바퀴를 예정한 여행자가 많았고 대부분 크게 한바퀴 돌거나 계획없이 그냥 원없이 다닐 거라는 여행자들도 있었다. 우린 해안도로로 크게 한바퀴 돌고 육지로 나가는 계획이었다. 배는 예정된 시간에 도착했고 우린 각자의 여행을 위해 길을 나섰다.


제주는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제주 해안도로를 바다를 끼고 돌려면 시계반대방향으로 도는 게 좋다. 차선 오른쪽으로 돌아야 바다를 계속 오른쪽으로 좀더 가까이 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린 우리나라 최고의 에메랄드빛 해변을 직접 목격하고 그곳에 몸을 담그고 사진을 남겼다. 시간은 멈춰있었고 멋진 풍광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맑고 깨끗했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이라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간혹 해안도로에서 만난 할머니로부터 제주산 하귤과 수박으로 배를 채웠다.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들이 그토록 싱그럽고 시원한 줄 처음 알았다. 수박 하나에 천 원이었으니 그 인심 또한 넉넉했었다. 때로는 그런 과일이 점심을 대신했다. 굳이 돈을 아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돈을 쓸만한 곳도 없었다. 주변의 관광지는 해안도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관광지를 가보고는 싶긴 했다. 하지만 그곳에 들르면 들어간 만큼 다시 나와야 한다. 관광지를 꼭 가보고 싶을 정도로 내 엉덩이는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여행 3일째 되던 날부터 아프기 시작한 엉덩이가 여행 일주일을 넘자 얼얼해 볼일도 잘 못볼 것만 같은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생리현상을 처리하는데 아무 영향을 주지 않은 게 신기했다. 어쨌든 우린 누구도 관광지를 들어가 보자고 제안하지 않았다. 묵묵히 페달만 굴렸다.


그렇게 제주에서 3일째면서 우리 여행이 열흘째가 되던 날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이 날은 우리가 중문관광지를 지나가는 코스가 있었고 제주에서 중문을 그냥 지나쳐 가는 건 뉴욕에 가서 자유의 여신상을 보지 않고 가는 것과 같은 일이니 한군데 만이라도 가자고 했던 날이다. 그런데 껌딱지 중 여자후배가 내리막길에서 굴러 떨어져 버리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후배는 오른쪽 안면의 대부분과 오른팔과 오른손 그리고 오른쪽 무릎 등에 큰 찰과상을 입었다. 급히 응급실로 달려갔다. 모래가 박힌 얼굴과 대부분의 상처부위를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후배의 외형은 처참했다.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랬는데 결국 일어났다. 여행을 계획했던 나로서는 너무나 미안했다. 동기와 후배가 여행 중에 나를 캡틴이라고 이름 붙여줬고 내 의견에 대부분 따라줬기 때문에 미안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다른건 몰라도 얼굴에 난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여자 아닌가. 그래서 더 걱정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친구를 치료했던 의사선생님 말씀이 가관이었다.


“세 분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남자동기를 가리키며) 이 친구는 동기고 얘는 후밴데요”

“음. 이 분 상태가 심각한데 두 분 중에 한 분이 책임지셔야겠는데요”

“네?”


젊은 의사는 뼈에는 이상이 없고 단순 다발성찰과상이라며 농담을 건넸다. 보통 자전거 타고 다쳐서 이곳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거의 대부분이 여자라는 알고 싶지 않은 사실도 함께 알려줬다. 난 그 때 이미 지금의 아내와 연애 중이었기 때문에 후배를 책임질 수도 없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은근히 동기에게 떠넘기려고 했지만 후배가 내 동기는 남자로 보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 후배는 지금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는 분을 만나 애기 낳고 잘 살고 있으니 자전거 여행의 사고가 그녀의 인생에 큰 악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 것 같다.


한 가지 악영향은 이 사고로 우리의 제주 여행이 끝이 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전거여행도 함께 끝이 났다. 짧게나마 이 때의 첫 번째 제주여행에서 내가 봤던 것은 찬란하게 펼쳐져있던 이국적인 해변이 주는 아름다움이었고 기암절벽이 주는 경외감이었으며 섬사람들의 가슴따뜻하고 넉넉한 인심이었다. 그 인상은 아직도 내 마음 깊은 곳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내 마음 한곳에 아름답게 남아있던 제주는 아이가 태어나고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던 때 다시 만났다. 그런데 그때는 아이가 어렸지만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유명한 관광지란 관광지는 꼭 가봐야 했고 맛집 블로그에 나왔던 곳은 가서 꼭 먹어야 했다. 여행이 아니라 경쟁이었다. 관광지 제주는 무엇을 느꼈냐가 아니라 몇 번을 가봤냐가 제주를 아는 척도가 되었고 어딜 가봤느냐가 제주관광의 자부심으로 비춰지게 되었다. 나도 한 때 그런 대열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제주를 이제 아들과 단둘이 왔다. 이번 여행은 무엇이 될까. 나 스스로도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어린 진우에게 관광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녀온 것을 알기나 할까. 내 생각은 회의적이었다. 관광지는 진우가 커서 친구나 애인과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은 아빠와 함께 제주 그 자체를 느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래서 무차별적인 관광을 최대한 배제한 채 진우와 둘만 할 수 있는 제주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편의점 아침식사 그리고 두 번째 자전거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