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보영 Mar 22. 2018

제주도 몸국-이제 안먹을래요

부자여행:제주편#마지막편

숙소로 향하는 길에 어느새 비가 후둑후둑 떨어졌다. 


지난번 경주여행에서 빗 속의 자전거를 타본 적이 있어서 크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옷이 많이 젖으면 곤란했다. 속도를 내서 숙소로 향했다. 올 때 봤던 풍광을 반대로 보면서 달리니 아까 보지 못한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내리는 비 때문에 느긋할 수 없었다. 비가 오는데다 목적지를 정하고 가는 길이라 너무 속도를 냈는지 진우는 한번 넘어졌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속도를 줄인 상태에서 넘어진 것이었다. 비도 많이 오고 잠시 쉬어갈 겸 아까 아침을 먹은 편의점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비가 오면서 온도가 더 내려가 진우와 나는 따뜻한 벌꿀차를 한 병씩 마셨다. 벌꿀차의 따뜻함이 몸을 뎁혀 주었다.


우리가 쉬는 동안 아까 내리던 비는 다행히 그쳐 있었다. 휴식으로 기운도 차렸고 진우에게 이제 타는 자전거가 제주에서 타는 마지막 자전거임을 알려주었다.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나도 참 아쉬웠다. 오늘 저녁에 있을 파티 때문이 아니라 하루만 더 이곳에 있고 싶었다. 그리고 새해의 첫날을 이곳에서 맞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와 연우가 없었다.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아쉬움을 마지막 자전거에 싣고 달리면서 조금씩 조금씩 흘려 보냈다.


자전거를 숙소에 반납하고 렌트카로 갈아탔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제주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였다. 제주에 오면 항상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제주몸국. 15년 전 제주여행 때 어디선가 먹은 몸국은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이름도 생소했고 모양도 생소했지만 그 맛만은 최고였다. 그래서 제주에 올 때마다 기억을 더듬어 옛날 그 몸국집을 찾았지만 늘 허사였다. 그래서 그 이후로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기도 했다.

이번엔 진우를 데리고 그 몸국을 먹으러 갔다. 그 옛날 그 집은 아니었지만 검색으로 찾은 유명한 맛집 중 하나를 골랐다. 공항에서 가까워 안성마춤이었다. 식사 때를 갓 넘긴 식당은 맛집답게 사람들로 가득했다. 진우와 나는 안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몸국 두 개를 주문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내 주문을 듣고는 진우를 가리키며 아이가 몸국을 먹을 수 있겠냐고 내게 반문했다. 난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몸국을 애들은 못먹냐고 내가 물었더니 아주머니는 조금 매워서 애들은 못먹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보통 아이들은 다른 걸로 주문한다고 했다. 진우에게 매운 거 잘 먹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난 진우를 믿었으므로 그냥 몸국 두 개 달라고 했다. 우리의 요구대로 주문이 주방에 전달되었다. 그런데 다른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주문을 재차 확인했다. 애가 몸국 먹어봤냐고 물었고 난 처음이라고 했다. 매운데 괜찮겠냐고 물었고 난 괜찮을 거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사라졌다. 식당은 일하시는 분들이 서너 명은 되어 보였다. 다들 우리를 보는 것같았다. 왜 그런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그쯤되자 몸국이 얼마나 맵길래 저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해초 몸이 가득 든 뚝배기가 펄펄 끓고 있었다. 한 숟가락 떠 먹어보니 생각만큼 맵지 않았다. 아니 거의 맵지 않았다. 진우도 맵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맛은 없다고 했다. 다 먹어야 하냐고 물을 정도였다. 나도 맛을 봤지만 예전의 그 맛이 전혀 아니었다. 그래도 뭐든 잘 먹는 우리였으므로 밥까지 말아 열심히 먹었다. 해초 특유의 상쾌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향도 좋았고 국물도 진해서 나쁘진 않았다. 진우가 가끔 해초를 나보고 더 가져가라고 하는 것 외에는 우리 말없이 몸국을 먹었다.식당 벽에는 몸국의 효능과 포장가능을 알리는 안내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몸국을 사가는 모양이었다. 택배도 가능하다고 하니 좋아하는 사람은 편하게 이용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여기가 끝이었다. 다음에 다시 제주를 오더라도 굳이 찾아 먹지는 않을 것이다.


진우와 나는 국밥 그릇을 국물까지 다 비우고서 일어났다. 먹는 걸로만 보면 진우는 성인임에 틀림없다. 잘 먹었습니다 하고 계산을 하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아까 두 번째로 우리에게 다녀간 아주머니 한 분이 진우를 꼭 껴안았다.


“몸국 이렇게 잘 먹는 애기는 첨 봤어. 아이구 이뻐라~”


깜짝 놀랐다. 갑자기 진우를 껴안아서 정말 깜짝 놀랐다. 우리 진우는 정말 먹는 거 하나는 끝내주는 아이임에는 틀림없다. 인사 잘하는 것과 잘 먹는 것. 가진 재주 하나 없어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비법이지 않을까 싶다. 아주머니의 말씀에 나도 곧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이곳 몸국은 애들은 안 먹나 보다.


그런데 정녕 진우의 반응이 웃겼다. 아주머니가 안아주실 때는 가만히 있던 진우는 차에 타자마자 내게 이랬다.


“아빠. 저 이제 몸국 안 먹을래요. 맛없어요”


푸하핫. 나도 사실 그 생각이었다. 아쉽게도 마지막 식사는 생각보다 훌륭하지 않았다. 옛 추억의 맛도 아니어서 실망이 되었지만 배가 부르니 용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진우는 그것마저 용서할 수 없는 맛이었나 보다.


“알았어. 이제 먹으라고 안 할거야. 아빠도 별로 맛은 없었어”


내 대답에 안심이 되었는지 진우는 더이상 안 먹겠다는 얘긴 없었다. 한참이 지난 뒤에 그 때 먹은 몸국에 대해 물었더니 이랬다.


“밥은 맛있었어요. 밥이랑 국은 맛있었는데 해초가 너무 많았어요. 해초가 한 삼 분의 이 정도만 줄었어도 괜찮았을 거 같아요”란다.

당시보다는 평가가 후해졌다.


“그래서 다시 먹을거야?”

“해초만 줄여 준다면요”


지금의 나도 다시 먹을 수 있다. 왜냐하면 옛날 자전거여행 때 먹은 몸국의 맛은 아니었지만 이제 몸국은 진우와 함께 제주를 여행했을 때 먹은 추억의 맛이 되었기 때문이다. 먼 훗날 진우와 다시 그곳을 찾고 싶다. 그러고보니 마지막 식사는 결국 훌륭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 셈이다. 그것마저 훌륭한 추억이 되었으니 말이다.


렌트카를 반납하고 공항에 들어가 집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탑승구는 멀지 않았다. 올 때와 비슷한 시간을 비행해 도착한 서울은 몹시 추웠다. 아내와 연우가 공항에서 우릴 반겨주었다. 

진우와 함께 한 다섯 번의 여행이 그렇게 끝이 났다. 여행은 끝이 났지만 우리만의 추억은 시작되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우리는 각자가 성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의 여행이 진우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빠와 아들 사이를 연결해 주는 강한 끈 같은 것이 만들어졌음을 느낀다. 진우는 나를 믿을 것이고 나도 진우를 믿는다. 그건 아빠와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나와 진우이기 때문에 가진 무언가이다. 그래서 난 이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의 자전거여행 그리고 제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