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 리뷰
사랑이 뭘까? '무지개?', 윌리엄 워스워즈는 그의 시 <무지개>에서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했다. 어린 시절에도, 다 자란 오늘에도, 그리고 내 나이 쉰 예순이 되어도 그럴 거라 했다. 나희도(김태리 분)는 그런 무지개가 백이진(남주혁 분)과 자신의 관계를 대변하는 단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백이진은 차마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놓지 못한 채 에둘러 '무지개'를 말하는 나희도에게 말한다. '무지개는 필요없어', '사랑이야, 널 사랑해.'라고 직진한다. '널 갖고싶어'라고 말했다가 당황한 백이진 덕분에 잠시 방황했던 나희도,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백이진과 나희도는 진솔한 청춘의 답을 찾는다.
'널 사랑해', 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스물 다섯 스물 하나>는 지난 9회의 시간이 필요했다. 러브 스토리로써는 꽤나 뜸을 들인 셈이다. 하지만, 백이진과 나희도의 사랑에는 그만큼의 '뜸'이 필요했었다. 아직은 고등학생과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인 백이진의 다른 '세대'때문이었을까? 아니 그것보다는 <스물 다섯 스물 하나>라는 드라마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사랑과 우정을 통해 독려를 하기 위해 공들인 시간이 아니었을까
이진과 희도가 사랑하기 까지
imf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하지만 imf는 백이진과 나희도에게 그저 '시대적 배경'만이 아니다. 꽤나 이름이 알려진 사업체를 운영하던 백이진의 아버지는 하루 아침에 망했다. 사업이 망한 바람에 가정도 풍비박산이 났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재벌집 아들로 빨간 스포츠카를 선물받기도 했던 잘 나가던 이진은 이제 홀로 단칸방에 살며 새벽에는 신문배달을 하고, 저녁에는 만화방에서 알바를 하며 호구지책을 하는 신세다.
당장 혼자 먹고 살기도 벅찬 신세인데, 아버지의 빚쟁이들이 들이닥쳐 이진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저 잘 나가던 도련님이 이제는 망한 집안을 책임져야 할 맏이의 무게에 허우적거린다. 그렇게 끝없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백이진의 눈 앞에 어른인 이진에게 당돌하게 말을 놓는 나희도가 등장한다. 그냥 <풀하우스> 신간에 목을 매는, 철자법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인줄 알았는데 공교롭게도 이진이 늪같은 수렁으로 한 발 한 발 빠져들어갈 때마다 희도가 그런 이진을 건져낸다.
아버지의 빚쟁이들 앞에서 이진이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약속은 '다시는 행복하지 않겠다'는 것 뿐이었다. 그런 이진의 약속을 들은 희도는 이진을 끌고 늦은 밤 학교의 수돗가로 향한다. 수도를 거꾸로 틀어 분수처럼 뿜게 만들고 그 순간의 행복을 누릴 것을 청한 희도, 희도는 그렇게 불행의 나락에 빠진 이진으로 하여금 지금 여기, 이 순간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의 기쁨을 나누어 준다.
그런 식이었다. 이진이 힘들 때마다 희도의 당돌함, 혹은 맹랑함, 그리고 대책없는 긍정이 꺽어지려는 이진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저 타고난 성정이 밝은가 했더니, 어느날인가 희도가 말한다. 너무 많이 실패해봐서 그렇다고. 실패가 익숙한 아이, 그 누구도 그 아이에게 펜싱을 하라고, 잘 한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펜싱이 하고 싶어서 포기하지 않으려던 시간을 겪어온 아이, 그 아이가 가진 대책없는 긍정의 사인 안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imf는 이진에게만 닥친 것이 아니었다. 희도가 속한 펜싱부도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한때는 펜싱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제는 너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는 잔인한 평가를 듣던 희도, 그래도 희도는 펜싱이 좋단다. 좋아서 하는 펜싱, 하지만 좋아도 스포츠이기에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처지, 그 시간동안 펜싱을 포기하지 않은 희도의 내공이 홀로 쓰러져가던 이진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이진과 희도의 사랑은 그렇게 다져왔다. 이진이 쓰러지려한 순간에는 희도가 있었고, 희도가 주저앉을 때 이진이 희도를 일으켜 세웠다. 그래서 이진은 말한다. '넌 나를 항상 옳은 곳으로 좋은 곳으로 이끈다'고. 두 사람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다. 그렇게 서로를 일으켜 세운 두 사람은 이제 기자와 펜싱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결국은 imf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젊은이들의 입지전적인 성공담이자, 사랑의 성취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난 9회의 시간을 함께 한 시청자들은 안다. 그들이 이제 함께 무지개를 보며 '널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기 까지 서로가 함께 견뎌내고 지켜낸 시간이 얼마나 지난했던가를.
2030 세대의 남성과 여성들에게 '다름'은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같은 젊은 세대이기보다는 다른 편이라는 말이 익숙한 시절이 되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imf 저리가라할 만큼 2030 세대에게는 각박한 시절의 파이를 두고 '경쟁'이라는 선상에서 서로 마주 봐야 할 처지가 낳은 결과일 것이다. 또한 연애가 사치가 되고, 결혼은 선택이 되는 여유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처지일 것이다.
<스물 다섯 스물 하나>는 그렇게 imf 보다 더 각박한 시절을 살아내는 이 시대의 청춘에게 '독려'의 말을 전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실패가 익숙한 희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지금 여기의 행복에 충실하려는 모습, 모든 것을 다 잃었다던 이진이 그래도 꺾이지 않고 다시 세상을 한 발자국 나서는 모습, 그리고 그런 시절을 함께 겪어가며 서로를 좋은 곳으로 이끌어 가는 두 사람,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이진이 되어, 희도가 되어주려는 게 <스물 다섯 스물 하나>의 욕심이 아닐까 싶다.
젊음의 시절이 아름답다고 하는 건, 젊음을 지나온 세대의 후일담이다, 기약할 수 없는 시절을 견뎌내며 자신을 일구어 가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늘 현실은 imf이다. 드라마 속에서 희도와 이진은 함께 터널을 지나 걷곤 한다. 드라마 속 터널은 아름답지만, 현실 속 젊은이들에 지나가는 터널은 그 끝을 알 길이 없다. <스물 다섯 스물 하나>는 그 터널 속 젊은이들에게 함께 걸어주는 이진이자, 희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