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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May 13. 2023

나를 찾아  크로아티아까지 삼만리?

- 파어웨이 (2023)

화창한 오월 햇살? 인가 싶더니 어느새 덥다. 그래서인가 금요일 쯤되니 오르는 기온만큼 다들 감정의 온도가 올라가는 듯하다. 산만해진 아이들, 예민해진 어른들......  그렇게 한 주가 마무리되면 샤워로 찌뿌등한 몸을 씻듯이 머리 속도 씻고 싶다. 그럴 때면 책이고 뭐고, 리모컨을 들고 OTT 순례에 나서게 된다. 그렇게 만나게 된 <파어웨이(2023)>, 크로아티아의 바닷 풍경만으로 밝아지던 여주인공처럼 영화 속 풍광 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진다.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운 바다 풍광과 함께 이 영화에서 리모컨이 멈춰진 이유는 아마도 주인공이 내 또래로 보인다는 점이 아닐까싶다. 보정속옷에 자신의 몸을 맞추려 안간힘쓰는 군살 넘치는 여성(알고보니 주인공은 그래도 나보다 좀 젊었다;;)은 독일에 사는 터키계 가족의 안주인 체이네프 알틴(나오미 크라우스 분)이다. 



덜컥 크로아티아로 떠나버린 주부 


그녀의 하루가 어떤가 하면, 친정 아버지와, 세대가 다른 딸은 아침 식탁에서부터 대놓고 으르렁거린다. 남편은 도통 그녀에게 관심이 없고 바쁘다고만 한다. 그런데 오늘이 다른 날도 아닌 어머니 장례식 날이다. 장례식 준비를 위해 부모님의 집을 찾은 알틴 변호사로부터 서류 봉투를 받는다. 



그 안에 든 건 크로아티아 출신 어머니가 사 둔 집 한 채의 계약서이다. 아버지조차 모르던 일, 어머니는 어쩌자고 그 먼 곳에 집을 사신 것일까. 알틴에게 이 계약서는 그저 또 일 하나가 얹힌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 계약서가 그녀 삶의 치트키가 될 줄이야.



아버지 장례식 복장에서부터 손님 초대까지 어머니 장례식을 일일이 준비하는 알틴, 그런데도  막상 추도사를 남편에게 맡긴다. 사람들 앞에 나서 말을 하는 게 자신이 없단다. 그런데 그 '남편'이 정작 장례식에 등장하지 않았다. 제 아무리 식당 일이 바쁘다손치더라도 장모님 장례식인데, 참다못한 알틴이 식당으로 찾아나서는데.



남편이 웃고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한참이나 어리고 젊은 신입 쉐프가 있다.  그런데 남편이 저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게 도대체 얼마만이던가, 나한테 최근에 웃어준 적이 있던가! 번개맞은 듯 그 사실을 깨달은 알틴은 허겁지겁 당황해서 그녀를 붙잡고 변명을 늘어놓는 남편을 두고 그 자리를 떠난다. 어디로? 어머니의 집이 있다는 크로아티아로. 





이 영화를 보고나서, 찾아보았다. 독일에서 크로아티아가 얼마나 될까? 제 아무리 같은 유럽대륙이라지만 남의 나라 아닌가. 말 그대로 차를 타고 산 넘고, 그 차마저 냅둔 채 물 건너, 늦은 밤 핸드폰 네비가 가르쳐주는 어머니의 집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집이 어떤 곳인지 살펴볼 여력도 없이 지쳐 떨어져 잠이 든 그녀......



바네사 요프 감독의 <파어웨이>는 여주인공 나오미 크라우스와 전주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아버지의 길>의 고란 보그란이 남주인공인 '로코'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로코'라는 전형성과 환타지를 차치하고 보면, 제목 그대로 여주인공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된다. 



자고 일어나 옆에 잠든 고란 보그란이 분한 요시프을 보고 식겁한 것도 잠시, 문을 박차고 나와 마주한 바다에 반하고 만다. 창문조차 없는 창고같은 오두막이지만, 그 문을 열고 나서면 온전히 바다로 향하고 있는 집, 풍광에 반한 것도 잠시, 그녀는 그 집을 고쳐 '에어비엔비'로 한 몫을 벌어보려는 꿈을 가진다. 



즉, 지친 일상과 무관심한 남편을 견디다 못해 차를 몰고 크로아티아까지 왔지만, 여전히 그녀는 자신이 떠나온 그 집안의 안주인으로써의 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손님을 들이는데 어울릴 가전제품 등등을 들일 준비를 서두르는 그녀 앞에, 그녀와 밤을 보낸 남자가 태클을 건다. 에어비엔비 따위로 그 집이 가진 고유한 영혼과 역사를 무너뜨릴 수 없다나? 



그녀 집 앞에 텐트를 치고 자고 일어나면 염소 젓을 먹고, 고기잡이를 하고, 까페 알바에 점원까지, 이른바 섬의 '홍반장'같은 사내는 크로아티아 루치, 그곳의 전통을 어떻게든 지켜가려는 입장이다. 그런 그의 입장은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울려퍼지는 섬 사람들의 합창으로 대변된다. 



알틴을 그들의 합창을 들으며 눈물나게 감동하면서도 여전히 에어비엔비로 돈을 벌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영화는 그런 알틴의 딜레마를 '로코'의 해프닝으로 표현해 낸다. 그러나 알틴은 조금씩 변해간다. 섬의 시장에 들러 편한 원피스를 사고,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을 누빈다.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던 크로아티아 사람들과도 익숙해져 간다. 거침없이 바다에 뛰어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기엔 요시프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그 집은 부업일 뿐, 그래서일까 떠나온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의논한다. 그런데 남편 왈, 자기는 사랑에 빠졌으니, 당신도 이제 당신의 행복을 찾으라는데. 그말은 들은 후 그녀는 달라진다. 에어비엔비 따위, 답답하던 집의 벽을 부숴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창을 낸다. 그리고 겁박하던 보정 속옷에 걸려 버둥거리던 그녀를 요시프가 구해주던 날, 결혼 반지를 던져버린다. 



영화 포스터에는 여주인공 알틴이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있다. 영화를 보면 크로아티아 풍광만큼 시선을 끄는 것이 있다. 바로 여주인공의 변화이다. 삶에 찌들은 중년 여인이 크로아티아 섬 바람에 어떻게 저리 아름다워질 수가 있지 싶은 거다. 알틴이 아름다워지는 건, 그녀가 다이어트를 해서도 피부 관리를 받아서도 아니다. 



요시프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신' 그대로 자유롭게 아침 식사를 하던 중 딸이 찾아온다. 놀란 딸은 다그친다. 내가 떠나야 하는데 왜 엄마가 먼저 떠난 거냐고. 그런데 알틴이 웃는다. 딸이 '커밍아웃'을 하는데도 그러냔다. 늘 자신의 말이라면 엇나가기만해서 쩔쩔매던 알틴인데, 오두막의 공기가 그녀를 변하게 했다. 남편이 찾아왔다. 다시 잘 해보잔다. 요시프, 남편, 아버지, 그리고 딸까지 모두에게 말한다. 맛있는 저녁을 해줄테니, 다같이 먹고, 다같이 떠나라고. 



크로아티아의 바다와 함께 그녀를 변화시킨 건 돌아가신 엄마가 남긴 일기장이었다. 전장으로 떠난 남편, 딸과 함께 남은 어머니는 행복을 찾아 이 섬을 떠났다. 그리고, 독일로 가서 지금의 아버지를 만나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딸에게 말한다. 너는 너만의 행복을 찾으라고. <파어웨이> 속 모녀 삼대는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나선다. 행복과 안정을 찾아 섬을 떠난 알틴의 어머니, 이제 자신의 행복을 찾아 섬으로 온 알틴,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이탈리아로 떠나겠다는 딸, 영화는 행복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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