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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Dec 14. 2022

명품 드레스가 꿈이었던 청소부 아줌마가 변화시킨 건?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요즘 sns 세상에는 결혼을 앞둔 신부들이 종종 '명품' 가방을 올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결혼 신청을 할 때 반지와 함께 명품 가방을 선사하는 게 일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풍습이라나 뭐라나, 직장을 다닌 여성이 자신에게 준 첫 선물이 명품 가방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일부 계층의 모습이겠지만 그만큼 이른바 명품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일상화되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익선동 골목 맛집들 사이에 자리잡은 명품 매장, 맛집 앞에 줄 선 이들과 명품 매장 앞에 줄 선 이들이 달라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명품이 누구나 살 수 있는 품목이 된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1957년 해리스 아줌마가 청소부로 일하던 시절만 해도 명품은 '자작'이니, '후작'이니 하는 이들만의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옷)였다. 



       


▲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 유플러스 tv


 



꿈이 명품 드레스를 사는 것? 


영국의 청소부 아줌마가 명품 드레스를 사러 파리에 간다고? 하지만, 막상 영화의 속내는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때는 바야흐로 1957년 런던, 해리스 아줌마는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2차 대전이 끝난 지가 언젠데, '남편이 무뚝뚝해서 편지도 안쓴다'며 해리스 아줌마는 여전히 종무소식인 남편은 기다린다. 그리곤 생계를 위해 이 집 저 집 청소부 일을 하러 다닌다. 발 들여놓을 틈도 없는 집, 명품 드레스는 사들이면서 해리슨 아줌마의 급료는 밥먹듯이 떼먹는 집, 청소부 일은 만만치 않다.



오래 전 영화 <애수>가 떠오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가 여주인공이었던 영화이다. 그 영화에서 그녀는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전쟁 터로 간 남편(로버트 테일러 분)을 기다린다. 하지만 돌아온 건 그의 전사 소식, 낙담한 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녀는 거리의 여자가 되고 만다. 1940년대 대표적인 로맨틱 영화였던 <애수>, 하지만 거기에서 보여지듯이 그 당시 여성이 홀로 자신의 삶을 꾸리며 살아가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21세기 버전의 <애수>처럼,  해리스 아줌마도 무던함을 넘어 안쓰러울 정도로 오랜 시간 남편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건 그의 실종 소식과 함께 전사로 처리한다는 황망한 결과였다. '이젠 자유네요', 라고 초탈한 듯한 그녀, 사실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현실에서 달라질 건 없었다. 아니, 그런데 달라질 게 있었다. 오래 전 남편이 실종된 지도 모르고 살아온 그녀가 그 세월만큼 쌓인 '미망인 연금'을 수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돈을 들고 파리로 간다. 그녀의 꿈이었던 크리스찬 디올 드레스를 사기 위해서. 



       


▲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 유플러스 tv


 



급료도 제대로 안주는 부잣집 부인이 사서 의자 위에 걸쳐놓은 디올이라는 레테르(letter)가 붙은 오픈 숄더 드레스를 본 해리스 아줌마는 그만 한 눈에 반하고 만다. 늘 머리에 두건이나 같은 모양의 모자를 쓰고, 낮은 채도의 옷들을 입은 그녀, 동네 클럽 아저씨에게 애인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 자신이 기르는 개 좀 봐달라는 부탁이나 받는 그런 처지이다. 그런 그녀가 화려한 디올의 명품 드레스에 반하고 만다. 



그래서 드레스 값인 대망의 500파운드를 마련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급료조차도 제대로 받기 힘들던 당시에 500파운드의 고지는 요원했다. 죽은 남편이 도왔나 싶게 축구 복권에 당첨 100 파운드 넘게 모았나 싶더니, 집 수도를 고쳐야 했다. 모이는가 싶으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우연히 그레이 하운드 경주를 보러 간 그녀는 홀린 듯이 전재신이다시피한 100 파운드를 '오트 쿠튀르'라는 이름의 개에게 건다. 



운명의 계시는 개뿔, 당연히 그녀는 100파운드 전액을 잃고 만다. 그 오랜 시간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일구어오던 그녀, 비로소 크리스찬 디올 드레스를 꿈꾸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드러누워 버린다. 



사실 영국의 노동 계급 여성이 프랑스 파리에서도 귀족들만이 영유하는 고급 드레스를 꿈꾼다는 게 얼마나 허황된 꿈인가. 남편을 기다리며, 그리고 남편도 없이도 씩씩하게 살아왔던 그녀가 꿈꾼 사치, 영화는 그런 그녀가 자신의 사치를 직시한 후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는 세상의 꿈이 가지는 '마취?', '마법?'을 잘 보여준다. 



해리스 아줌마의 디올 드레스처럼, 꿈은 누군가를 들뜨게 하지만, 때론 그 꿈으로 인해 불가능한 도전을 하게 되고, 그래서 넘어져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차라리 꿈을 꾸지 말라고도 한다. 그런데 영화는, 그 말도 안되는 꿈이, 고단한 삶을 살던 해리스 아줌마에게 어떤 의미였는가를 흐트러진 아줌마를 통해 잘 보여준다. 



       


▲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 유플러스 tv


 



디올 드레스가 해리스를 변화시켰다?


물론 영화답게 수령되지 않은 미망인 연금 500파운드가 낙담한 그녀를 구한다. 그리고 해리스 아줌마는 단 하루의 휴가를 얻어 파리로 향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디올의  매장에 가서 드레스를 구하려 한다. 



하지만 어디 디올 매장이 녹록하게 런던의 청소부 아줌마에게 드레스를 판매하겠는가. 이자벨 위페르가 분한 매니저는 사람을 불러 그녀를 쫓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영화답게 그녀를 구해 준 멋진 파리의 신사 덕에 고객 전용 패션쇼도 구경하고, 드레스도 구입하게 된다. 그런데 '오트 쿠튀르' 방식의 드레스 주문 제작에는 시간이 필요하단다.  덕분에 해리스 아줌마의 환타스틱한 파리 여행이 시작된다. 



멋진 남자와의 데이트, 모든 직원들이 찬사를 보내는 가봉 작업, 잠시 꿈이 이루어지는가 싶었는데, 여전히 현실은 녹록치 않다. 드레스마저 날아가게 생겼다. 런던 노동자 계급 아줌마의 환타스틱한 로맨틱 영화인가 싶더니, 영화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 미시즈 해리스 , 파리에 가다 ⓒ 유플러스 tv


 



해리스 아줌마가 도착한 파리는 연일 청소 노동자들의 시위로 온통 쓰레기 투성이이다. 쓰레기 투성이의 거리는 역시나 청소 노동자인 해리스 아줌자의 존재론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그렇게 청소 노동자의 파업으로 마비된 도시, 그 속에서도 자신의 명성을 이어가려는 디올, 그런데 사실 그 처지도 만만치 않다. 시대가 바뀌고 더는 고급 고객들의 유치조차 쉽지 않은 상황, 그래서 런던 청소부 아줌마의 현금 500파운드조차 귀한 형편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 조차도 여의치 않자, 일부 직원들을 해고하려 한다. 마침 그 자리에 해리슨 아줌마가 있었고, 꿈을 찾아 런던행을 감행한 아줌마답게, 아줌마는 당당하게 직원들과 함께 디올 사장실로 쳐들어 간다. 



500파운드를 들고 디올을 사겠다고 파리까지 온 런던의 아줌마, 그런 해리스 아줌마 덕에 일부 극소수 귀족들 비위맞추기에만 전전긍긍했던 디올이 변하는 계기가 된다. 영화는 '오트쿠튀르'에서 '프레타 포르테(Ready-to-wear, 즉 사서 바로 입을 수 있는 기성복)로 변화하는 명품의 세대 교체를 절묘하게 해리스 아줌마의 이야기에 접목시켜낸다. 



그렇게 멋진 파리의 일주일을 마친 해리스 아줌마, 여기서 끝일까? 영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은 청소 노동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당당해진 아줌마의 모습에서 나온다. 런던에 돌아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해리스, 그런데 언제나처럼 부잣집 여성은 그녀의 급료를 미루려 한다. 늘 그럴 때마다 전전긍긍하던 해리스, 하지만 이제 파리에서 돌아온 해리스는 다른 결정을 한다. 꿈을 통해 해리스는 변화되었다. 그저 중년 여성의 환타지인 듯했던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여주인공 레슬리 멘빌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건 청소노동자 여성의 자각과 성장을 맛깔나게 만들어 낸 영화적 서사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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