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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Sep 20. 2023

일요일 오후의 풍경

출출하다 싶어 토스트를 만들어 먹는데, 우유가 없다.

집 앞이 편의점이니 줄래 줄래 슬리퍼를 신고 우유를 사러 나섰다. 


햇빛이 내리쬐지만 그래도 잠깐이라도 적신 비 덕분인지 습기가 날아간 날,

이 정도면 견딜만하다 하는데 눈에 들어온 풍경, 

자신들의 것인지, 자신들의 건물에 누가 내다 버린 것인지 

건물 앞에 놓인 두꺼운 매트를 놓고 건물주인 듯한 노년의 부부가 실랑이를 벌인다. 


저걸 어쩌겠다는 것인지, 짐작 가는 바는 있으나, 설마 하면서  

우유를 사들고 돌아오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르신 차량'이라는 안내판을 차 앞에 둔 검은색 세단 뒤 트렁크를 열고 노년의 부부 두 사람이 그 커다란 매트를 쑤셔 넣느라 진땀을 흘리는 중이다. 


아까 우유 사러 갈 때 흘려들은 바로는, 저기 어디 버릴 만한 데가 있다는 거였는데, 

그걸 실행하시는 중인 듯하다. 보아하니 오층 건물에, 저 검은색 세단까지 지니셨는데 그 매트 분리수거하는데 들이는 돈이 아까운 거다.  


그렇게 낑낑대는 두 '어르신'을 두고 몇 걸음 걸어가니 이번엔 그 '어르신'연밸까, 아니면 그 '어르신'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드셨을까 버리려고 내놓은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빈 캔을 꺼내 발로 밟아대고 계신다. 

배낭을 메셨는데, 아마도 그 배낭 속엔 저런 캔 나부랭이들이 잔뜩 들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캔 나부랭이들은 아마도 저 '어르신'의 용돈인지 '호구지책'이 될 터. 


매트를 버리는 값, 그리고 캔을 밟아서 파는 값, 돈을 둘러싼 극과 극 노년의 풍경이다. 

호구지책을 위해 땡볕을 마다하지 않고 골목을 누벼야 하는 어르신의 가난도, 이미 가질 만큼 가졌음에도 그 몇 푼의 돈이 아까워 자신의 집 앞이 아닌 그 어느 곳에 자신의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자가용을 이용해서 가져다 버리는 어르신의 부도, 부의 양 극단이지만, 그 극단의 가지고 못 가짐이랑 무색하게 '자존'의 경계를 허문다. 


두 어르신들 모두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았는데 여전히 노년에도 거리를 훑어야 하는 가난도, 자기 집도 차 가졌으면서도 그 알량한 돈 몇 푼의 도덕을 거리에 내뱉어 버리는 마음의 가난도, 어르신 세대의 가난한 풍경이다. 


그리고 그 가난은 지금 저 광장 어느 곳에선가 분노에 찬 핏대선 목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을 것이다. 

가진 것으로 보상받지 못한 세대, 혹은 가졌으되 여전히 자신의 것만 움켜쥐고 있느라 마음이 가난해진 세대, 

그 가난이 눈을 들어 돌볼 수 있는 여유를 지니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가난한 세대의 자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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